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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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인류는 오랜 역사를 통해 다양한 용도를 지닌 수많은 형태의 마스크, 즉 가면을 만들어왔다. 이는 고대 주술적 성격의 가면에서부터 오늘날 프로레슬러의 위협적인 가면에 이르기까지, 또 아시아에서부터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전인류역사와 세계 전지역에 걸친 보편적 현상이다. 탄생이나 죽음과 관련된 의식에서도, 통과의례인 성인식과 할례식에서도, 치료과정과 해가 바뀌거나 계절이 바뀌는 것을 기념하는 의식에서도 가면이 등장한다. 가톨릭이 지배적인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에서조차 종교적인 연례행사 때 가면을 쓴다. 이때 등장하는 가면은 위험한 힘이 깃들어 있는 것에서부터 외설스럽거나 우스꽝스러운 것까지 아주 다양하며, 각기 저마다 독특한 행동양식을 보인다. '가면'이라는 말에는 모습을 바꾼다거나 감춘다고 하는 인간의 행위가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는데, 가면을 쓰는 행위는 가면을 쓰는 사람의 '변신' 또는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즉, 가면을 씀으로써 신과 같은 존재로 격상되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과는 무관한 인물로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가면을 쓰는 행위 자체가 변화를 위한 매개물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가면의 세계는 현실의 직접적인 반영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또다른 형태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가면은 '얼굴에 대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인문지리적 향취 그윽한 가면 이야기
전세계 유산의 보고인 대영박물관의 방대한 자료와 풍부한 사진으로 엮은 이 책은 이집트, 일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메소아메리카, 서북아메리카, 그리스로마, 유럽 등 세계 8개 지역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가면의 용도와 의미, 가면전통을 사회문화사적인 시각에서 살펴보고 있다. 나아가 보다 광범위한 문화 유형, 가면의식, 가면을 씀으로써 일어나는 개인적·사회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의 집필에는 사회인류학자와 예술사가, 고대 그리스·로마 연구자와 이집트 연구자 등이 참여했으며, 필자들 역시 대영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서 일한 적이 있거나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마스크, 투탄카멘에서 할로윈까지』에는 전세계의 가면이 올 컬러판으로 실려 있는데, 130여 컷에 이르는 가면 사진은 세계의 가면풍습과 함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신의 모습/존 H. 테일러: 고대 이집트의 가면
고대 이집트의 가면은 대부분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이집트에서는 가면이 얼굴을 바꾸거나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면 쓴 사람을 신과 같은 존재로 격상시키기 위한 매개물이었다. 미라의 머리 위에 놓인 가면은 이를 잘 보여주는데, 사후에도 영혼의 영원한 삶을 원했던 이집트인들의 염원을 반영하듯 미라가면은 거의 인간의 얼굴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즉 가면은 신적인 존재를 나타내는 청색 머리카락과 깃, 황금빛 살결뿐만 아니라 신이 갖고 있는 특정한 물리적 속성에 이르기까지 죽은 사람이 안전하게 내세로 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주었다.
액면 그대로의 가면/이안 젠킨스: 그리스·로마의 가면
후대 가면극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로마의 합창가무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배우의 기본 페르소나(persona)는 가면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배우는 몸짓과 대사를 통해 이를 확장시켜나갔다. 가면은 모든 연극 공연에서 비극의 우울한 상과 희극의 분방한 상을 나타냈는데, 아리스토파네스의 풍자극에서부터 디오니소스 신을 따르는 반인반수의 사티로스극까지 그리스·로마의 가면은 대체로 특정한 개성보다는 연기할 인물의 유형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정형화된 인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로마의 가면은 그리스의 가면보다 훨씬 사실주의적인데, 후기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순전히 세속적인 목적으로 가면의 장식적 효과를 이용한 경향도 나타났다.
허구와 풍자/앤서니 셸턴: 멕시코와 남아메리카 고지대의 가면
고위 성직자나 통치자가 죽으면 그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신을 나타낸 매장용 가면, 신의 모습으로 분장하기 위한 분장용 가면, 전승 기념물이었던 해골가면, 전사의 머리장식, 궁정 연예인들이 분장할 때 사용한 연회용 가면 등 멕시코와 메소아메리카의 가면은 매우 다양하다. 메소아메리카에서 가면은 얼굴을 가리거나 변장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와 정치적인 의미가 결합되어 있었다. 즉, 통치자나 고위직 사제들의 해골가면을 성골함 자체로 여길 정도로 가면에 영적인 힘을 부여함으로써 신권 정치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스페인 정복 이후 가면전통은 기독교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새로운 가면의식을 낳았다.
생활도구에서 수호정령까지/J. C. 킹: 아메리카 서북 해안 지역의 가면
아메리카 서북 해안 지역에서는 추장의 자식이 태어났을 때, 아이의 이름을 짓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름을 양도할 때, 결혼할 때, 죽었을 때, 그리고 죽은 사람의 제사를 지낼 때 열리는 포틀래치(연회)에서 가면이 쓰였다. 예컨대, 콰콰카와쿠족의 겨울의식에서는 독수리, 갈가마귀, 학, 도요새, 곰, 고양이와 같은 많은 동물가면이 등장한다. 가면은 포틀래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다른 물질적인 장비와 특권 계급이 소유한 노래, 이름 등의 비물질적인 것과도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또한 가면은 공동체의 지배적인 인물인 무당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는데, 인간의 형상을 한 이 가면들은 특정한 정령을 나타낸다.
감추기와 드러내기/존 맥: 아프리카의 가면
아프리카의 가면전통은 각 공동체의 고유한 신화에 토대를 둔 것이 많다. 이때 신화는 가면의식을 이끌어가는 일종의 대본 구실을 하는데, 지역마다 나름의 원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가면을 관리하고 소유하며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것은 남성이며, 따라서 가면의식에서 여성들은 배제된다. 가면의식에 나타나는 가면들 가운데는 동물의 형태와 인간의 얼굴이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부족의 신화와 관련된 정령을 나타낸 것이다.
의례와 극/그레고리 어빈: 일본의 가면
일본에서는 의례적인 가면무인 가구라, 기가쿠, 부가쿠, 노가쿠(노) 등에서 가면이 쓰인다. 기가쿠 가면은 얼굴과 머리 전체를 덥고 모양이 둥글어 언뜻 보면 거의 조각상 같은 반면, 부가쿠 가면은 얼굴과 머리 옆만을 가리게 되어 있는데 코나 눈, 턱 같은 부분들이 각기 따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다. 불교의식인 교도에 등장하는 가면은 불상을 본뜬 것으로 차분하고 조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가장 잘 알려진 일본의 가면은 뭐니 뭐니 해도 노가쿠에 등장하는 가면일 것이다. 노극에서 가면을 쓰는 것은 시테(주인공)와 그 상대역들뿐인데, 죽은 인물을 연기할 때만 가면을 쓴다. 일반적으로 노 가면은 표정이 없기 때문에 몸짓의 미묘한 변화로 가면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전적으로 배우의 연기력에 달려 있다. 노의 한결 익살스런 측면을 부각시킨 교겐 가면은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고, 하나의 가면으로 다양한 인물을 표현할 수도 있다.
풍부한 예술성의 화려한 변주/도로타 C. 스타체카: 오세아니아의 가면
오세아니아에서 가면은 멜레네시아에서만 유일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멜라네시아의 가면은 대부분 인간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지만 동물가면도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가면에 깃털이나 조가비 등으로 만든 장식이 붙어 있으며, 망토·케이프·나뭇잎으로 만든 치마 같은 것이 둘러져 있다. 멜라네시아에서 가면의식은 남성들의 집, 정령 숭배, 비밀결사 혹은 위계적인 결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따라서 가면의식에서 여성들은 가면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제공하거나 가면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교환'에 필요한 음식을 만들고 돼지를 기르는 일에 관여하며 가면의식의 관객으로 참여한다. 가면의식에서 사용된 가면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거나 위험한 물건으로 인식되어 폐기처분되기도 했다. 이는 비스마르크 제도의 뉴아일랜드 섬의 말랑간(장례식)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나타난다.
파푸아뉴기니에서도 가입의례나 농경의례 때 신화적인 존재나 정령, 죽은 사람을 나타내는 가면을 썼는데, 가면은 보통 나무와 바구니 세공으로 만들어졌다. 이때 가면은 형태와 크기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조개와 구슬, 깃털, 동물의 이빨과 엄니, 온갖 식물섬유 등 장식 재료도 다양했으며, 대부분 흰식과 검은색, 붉은색, 노란색, 회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우리 안에 있는 타자/시제어 퍼피: 유럽의 가면과 가면의식
유럽에서는 죽은 사람들의 행렬인 유령 사냥이나 할리퀸, 사육제와 같은 행사에서 가장행렬이 벌어진다. 가면은 개인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상징적인 인물이나 극중 인물에게 명확한 형태를 부여해 '고정된 유형'을 창출하기도 하는데, 따라서 가면은 구조화되고 예측 가능한 극적인 서사를 되풀이할 수 있게 해준다. 유럽의 가면은 흔히 이상적인 인간 유형과 부정적이고 괴물 같은 동물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가면 쓴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도식화한다. 이렇듯 가면 유형이 양극단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계절적 주기와 세대 교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순간 죽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들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혼돈을 막기 위해 두 세계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것이다.
저자소개
존 H. 테일러: 대영박물관 큐레이터
이안 젠킨스: 대영박물관의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유물 담당 부서장
앤서니 셸턴: 왕실 별관 미술관 및 박물관의 비서구 지역 예술 민족지학 책임자
J. C. 킹: 대영박물관 민족지학부 큐레이터
그레고리 어빈: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의 극동지역 담당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도로타 C. 스타체카: 대영박물관 민족지학부 큐레이터
시제어 퍼피: 앵글리어대학 세인즈베리 연구소 부소장
옮긴이 윤길순: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 중원문화 편집장을 역임.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 역서로는 『이성과 혁명』『정신노동과 육체노동』『세계패션사 1, 2』『분노의 그림자』『유방의 역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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