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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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그간 석굴암의 아름다움에 바쳐진 찬사는 숱하게 많았지만, 어쩐지 그 아름다움이 실감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이제껏 그 성가(聲價)에 걸맞을 만큼의 석굴암 관련서가 충분히 나와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그나마도 대개는 학술적 접근에 기울어 있어서 일반인들을 위한 감상(鑑賞) 차원의 안내서가 거의 없다시피하다는 점에도 그 원인의 일단이 있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도 하고 '보는 만큼 알게 된다'고도 하지만, 이『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은 철저히 감상자의 시각에서 쓰여졌으며, 따라서 독자들은 저 토함산 밑자락에서부터 석굴암 내부를 휘돌아 나오기까지의 전과정을 저자와 동행하듯 함께 밟아 나가게 된다. 유려한 문체와 더불어 106컷에 이르는 도판 자료는 석굴암이 가꿔낸 미의 바다에 풍덩 빠져들 수 있게끔 하기에 충분하다.
'석굴암 총체적 읽기'의 선구적 작업
이 책의 가장 큰 특장은, 석굴암의 창건 동기와 그 주체에서부터 석굴암 전체 구조와 낱낱의 조각상들을 관통하는 미학적 주제에 이르기까지를 유기적·총체적으로 바라보려는 보기 드문 시도라는 점에 있다고 하겠다. 지난 1세기 동안의 석굴암학이 이룬 다양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다소 단편적인 리포트에 그치거나 파편적으로 이루어져왔음을 반성하면서, 그간의 성과를 종합하는 가운데 나름의 입론을 가미함으로써 또 하나의 '석굴암론'을 창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석굴암이 호국사찰임을 거부하고, '김대성 설화'의 재해석을 통해 원효의 참회 및 화쟁사상이 그 미학적 뿌리를 이루고 있음을 최초로 정리해낸 것이다.(고대 인도의 미학이론인 '9라사이론'을 석굴암에 최초로 적용하기도 했다.) 윤범모 교수(미술사 전공)의 평가처럼, 우리는 "또 하나의 석굴암을 얻게" 된 것이다.
또한 저자는 철저히 석굴암 자체와 관련 문헌을 텍스트로 한 실증적 작업을 펼쳐 보이지만, 때로 자료의 공백으로 메워지지 않는 부분에서는 과감히 직관적 상상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상상력 역시 튼실한 실증적 근거를 디딤돌로 삼은 것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의 허황된 상상력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석굴암의 비밀을 푸는 실마리를 풍부히 했다는 평가에 값할 만하다.
석굴암, '제대로' 보자 ―파격적인 해석과 새로운 문제제기
신경림 시인은 이 책을 일러 "가히 혁명적"이라고 평했다. 그만큼 학계의 기존 논의를 뒤집는 해석과 새로운 주장이 많다.
● 광창: 남천우 교수의 주장대로 광창을 낸다면 일종의 토굴 모양이 될 터인데, 이는 석굴 위를 엄청난 무게의 잡석과 흙, 기왓장이 덮히게 되어 있는 석굴암의 구조상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게다가 그 거룩한 성소를 들짐승이나 날짐승이 마구 드나들어 더럽힐 게 뻔한 상황에서 일부러 그런 통로될 것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 목조전실: 기후나 위치 등의 자연조건 자체가 창건 당시와 크게 다를 바 없음을 감안할 때 조각상의 보호를 위해서나, 예배처라는 석굴암의 성격상 전실의 목조지붕은 필수적이다. 이제는 그 존재 유무를 다투는 식의 불필요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며, 차라리 그 목조지붕 양식의 원형을 궁구하고 복원하는 데나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팔부신중의 배열방식: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에 의해 대등하게 설계된 전실과 주실의 면적 대비를 고려해 볼 때도 절곡형보다는 전개형이 백번 타당하다. 또한 여덟 신중 가운데 두 신중만 꺾어 세움으로써 석굴암 전체를 관통하는 대비·대조의 흐름을 망가뜨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 창건 동기와 주체: 석굴암은 결코 국가나 왕실 주도로 이뤄진 호국사찰도, 기복사찰도 아니다. 이는 소위 정사(正史)라 할 그 어디에도 석굴암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이 그 증거이다. 석굴암은 김대성 개인의 비원을 담은 원찰(願刹)이었으며, 이는 유일한 관련자료라 할『삼국유사』의 '김대성 설화'를 제대로 읽을 때야만이 해명되는 문제이다.
● 천개석: 3조각난 천개석을 그대로 얹어 공사를 마무리한 것은, 당시 고구려·백제 유민을 아우르며 통일전쟁의 후유증을 화해와 통합의 길로 이끌어야 하는 당대 지식인들의 고뇌가 김대성을 통해 승화된 상징물로 보아야 한다. 참회와 화쟁에 기반한 석굴암 조영 원리에 비춰봐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 돔형 지붕: 실크로드에서 만난 동서양의 건축과 조각이 경주 석굴암에 이르러 그 정점을 이루었다. 로마 판테온 신전의 돔형 지붕과 석굴암의 돔형 지붕이 보이는 구조적·미학적 유사성과 친연성은 너무도 뚜렷하다. 돔 지붕의 나머지 반구(半球)를 마저 그려볼 때 나타나는 높이와 평단면 직경의 일치라는 비례의 동일함이나, 돔 지붕의 5단 구성, 원형의 주실과 사각형의 전실을 둔 배치 등이 특히 그렇다. 물증 자료의 불비함을 메우는 일 등이 남는 문제이지만, 이는 앞으로 충분히 논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석굴암학의 르네상스
석굴암에 대해 '전세계의, 전인류의 보물'이라고 자랑만 요란하게 해왔지, 정작 석굴암의 일부 조각상에 대해서는 가장 기본이라 할 명호(名號)조차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지지부진한 게 우리 석굴암 연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저자는 몇몇 사안에 대해 상식에도 값하지 못하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쟁이 서굴암 연구의 발전을 가로막아왔다면서, 편견을 거두는 열린 자세를 통해 석굴암학의 부흥이 있기를 고대한다고 말한다.
저자소개
저자의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남다른 연구와 천착이 이미 만만찮은 경지에 이르러 있음은, 양녕대군의 삶을 재해석해낸『왕은 없다』와 붓다의 삶에 투영된 불교적 세계관을 인도를 무대로 한 장쾌한 서사로 풀어낸『차크라바르틴』(상상문학상, 행원문학상 수상) 등 두 편의 장편소설에서도 익히 드러난 바 있다. 또한,「진보사학자 이이화씨는 이순신전을 다시쓰라」(『말』지),「석굴암을 위한 변명」(『인물과사상』7권),「테마기행/적멸보궁」(『Yes』),「박물관 순례」(『시민과 변호사』) 등의 평문들에서도 보이듯이 지속적으로 그러한 관심을 펼쳐오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이미 대학시절부터 석굴암에 매료되어 관련도서를 뒤지고 자료 파일을 만들어온 게 이십여 년으로, 석굴암학에 관한한 일가견을 갖고 있다. 이제 그간의 탐색과 나름의 연구 결과를 이『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으로 묶어낸 셈인데, 이 책의 집필을 위해서만도 십여 차례 석굴암을 방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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