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서열 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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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교육개혁만큼 오랜 기간 토론되고 광범위한 대안들이 숱하게 제시되었지만, 그 논의와 대안들이 무력한 자괴로 결말지어진 것이 또 있을까. 교실은 무너지고, 제도로서의 교육은 이제 파산선고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며, 수행평가·무시험전형·학교장추천제·'BK 21' 사업 등 정부가 쏟아내고 있는 '획기적인 정책'들은 더이상 교육현장의 무력감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왜곡과 파행으로 점철된 우리 교육 전반의 황폐상을 해소하는 핵심 고리가 '대학입시'라는 문제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대학입시 문제라는 교육 만악(萬惡)의 근원이 일등부터 꼴등까지 획일적으로 등위가 매겨져 있는 대학서열화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직시하고, 이를 혁파하는 실천적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본문 246쪽의 도표 참조)
'대학의 서열화'가 근본문제다
대학의 서열화가 존속하는 한 입시방법과 절차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거기에 맞추어 끝없는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2002년부터 시행될 '무시험전형'도 입시의 방법만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대학서열화가 입시경쟁의 '몸통'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는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BK 21' 사업처럼 국제경쟁력을 빌미로 대학의 서열화를 강화하게 되는 시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특권을 뒷받침하는 명문대의 서열을 묵인하고 있으며, 대학서열화와 무한경쟁의 일방적 피해자인 서민층 학부모들조차 이 문제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수만을 위한 입시무한경쟁
대학이 지금처럼 서열화 되어 있는 한 '한 단계 더 위'를 향한 무한경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현행 입시무한경쟁을 '자유경쟁'과 동일시하면서 현재의 입시가 효율적인 체제라고, 또는 최소한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재벌체제와 같은 우리 사회의 다른 많은 구조와 마찬가지로) 이 체제가 과연 효율적이며 공정한 것인지 검증된 적은 없다. 명문대에 들어가는 극소수만이 승자가 되며 그를 위한 경쟁은 개인과 사회의 경쟁력을 기르는 데 보탬이 된다는 입시경쟁론은 '신화'일 뿐이다. 지금까지 입버릇처럼 '경쟁력'을 외쳐왔지만, 갈수록 국가경쟁력은 하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안은 평준화뿐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의 서열을 평준화하고, 대학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에게는 대학지망에 있어서 성적에 관계없이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대학입시 평준화만이 대안이다. 이것이 바로 다수를 위한 입시혁명이며, 근본적인 대안인 것이다. 이를 통해서 과외문제와 교육황폐화 문제, 일류대를 중심으로 한 패거리주의 등 각종 폐단을 바로잡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명문대들은 이름에 걸맞은 노력의 필요성을 절감할 것이고, 신생 대학이나 중하위권 대학들은 명문대학들과 동일한 출발선상에 서게 되므로 그 동안의 체념적 자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여러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교육내용이나 교육환경에 있어서 개성을 만들어 가면 그것이 곧 대학의 특성화이다.
입시권리를 선언하자
사실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는 지금까지 과장된 입시의 횡포 앞에 각자의 존엄성과 권리를 박탈당한 채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입시는 단지 대학수학능력을 갖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는 데 그쳐야 한다. 그리하여 꼭 그만큼만 입시에 시달릴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입시가 본래의 역할만 담당한다면 학생은 참다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학부모는 지나친 사교육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교사는 더이상 자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서울대 출신의 서울대 비판
이 책을 쓰는 동안 나 자신이 모순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국립대에 재직하고 있는 사람, 한마디로 학벌의 혜택과 특권을 누린 당사자가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서울대 학부를 없애자고 말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 아닌가? 또한 자신은 깨끗한 척 학벌 엘리트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은 위선이 아닌가? 이러한 주저와 회의는 강준만의『서울대의 나라』와 이석범의『윈터스쿨』을 읽으면서 사라졌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서울대로 상징되는 학벌과 입시전쟁의 폐해에 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서울대 졸업장 덕분에 특혜를 입은 일이 없다고 여겨 왔고, 또 학벌을 적극적으로 내세우지도 않는 비교적 겸손한(?) 서울대 출신이라고 자부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많은 서울대 출신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책들을 읽고 나서 내가 얼마나 자기합리화에 빠져 있었던가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남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문제는 '의무'의 차원에서 생각하기로 했다. 흔히 비서울대 출신이 서울대 비판을 하면 '배가 아파서' 그런다고 의심을 받는 상황이므로 누가 되었든지 서울대 출신이 나서서 말할 필요도 있지 않겠는가?
―「머리말 / 입시권리 선언」 중에서
저자소개
1981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학사)
198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 졸업(석사)
1990년 프랑스 국립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졸업(역사학 박사)
1991년∼현재 전북대학교 사범대 사회교육학부 부교수
저서:『프랑스 근대사 연구-평등과 자유를 통한 번영의 길』(한울, 1998)
공저:『시민계급과 시민사회』(한울, 1993), 『근대 세계체제론의 역사적 이해』(까치, 1996)
역서:『모호한 역사자본주의 발전의 재검토』(한울, 1995), 『유럽의 발견인류학적 유럽사』(까치,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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