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중문화 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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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한국 대중문화의 발전에 남다른 애착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강준만 교수의 두 번째 대중문화 평론집이 나왔다. 지난 96년에 내놓았던『고독한 대중』(1996년, 도서출판 개마고원)에 이어서 출간되는 강준만 교수의『우리 대중문화 길찾기』는 우선 대중문화 비평에 관한 반성적 성찰을 담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이미 우리의 대중문화 비평은 최신 비평이론을 잡다하게 늘어놓는 '패스트푸드점'에 비유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또한 대중문화의 산물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은 끊임없이 소비를 획책하는 상품 세계의 '마지막 밑무늬'로 장식되고 있을 뿐이라는 비관론도 있었다. 그러나 강준만 교수는 영화 연구가 대학강단에서 제법 심각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때는 영화가 TV의 위세에 눌려 대중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기 시작할 때였음을 예로 들며 압구정동이 폐허가 될 때에 비로소 압구정동이 갖고 있는 문화적 의미에 대해 고민할 것이냐고 반문한다.
정치비평은 품위 있고 연예비평은 천박하다? 정치부 기자는 권위 있고 연예부 기자는 경박하다? 우리 사회엔 그런 편견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천박하고 경박하기 짝이 없는 편견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는 이 기막힌 현실은 우리 시대의 대중문화 비평이 감내해야 할 십자가임에 틀림없다. 그런 풍토에서 광고비평을 한다? 그건 대단한 모험이 될 것이 틀림없다. 더욱이 그 광고비평이 난해하기 짝이 없는 '비밀언어'를 사용해 일부 지식인 집단의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과 더불어 일상적 삶의 지평 안에서 광고의 의미를 씹어보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 모험은 무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떤 장애와 시련을 무릅쓰고서라도 우리는 문화가 실천이며, 실천은 지적 유희가 아니라는 것을 선언해야 할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문화와 물적 조건 사이의 경계가 소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의 '주류' 대중문화 비평은 '실세'를 외면한 채 '얼굴마담'에 주력해 왔다. 비평 그 자체가 활자매체의 시장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보다는 '대중이 갖는 관심'의 기준에 의거해 비평의 대상을 결정하고 거기에 무게를 부여해 온 것이다. 그러한 '비평의 상품화'는 대학 지식인들의 '비평의 박제화' 못지 않게 우리가 경계하고 극복해야 할 오류임에 틀림없다. (제2장「광고속으로」)
개인 커뮤니케이션의 과잉과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빈곤
강준만 교수의 대중문화 비평에는 분명한 과녁이 있다. '개인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 문화의 복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시대의 공동체 문화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텔레비전, 광고, 영화, 스포츠 등과 같은 대중문화로 이전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혹자는 바로 그러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산업사회에서 공동체 문화의 붕괴는 당연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흔히 공동체 문화를 예찬하거나 복원시키고자 애쓰는 시도들을 과거에 대한 향수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복고주의의 표현 정도로 이해하기도 한다.
강준만 교수에 따르면 그것은 공동체 문화가 언어 또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동체 문화란 한 문화권 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의 문제를 인식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쪽으로 사회적 삶의 방향과 내용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한 문화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목욕탕 속의 전화'가 시사하듯이 개인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폭발적 과잉인 반면 공동체적 문제를 다루는 사회 커뮤니케이션은 빈혈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사회로부터의 도피'를 부추기는 대중문화
강준만 교수는 대중문화와 공동체 문화가 타협할 수 있는 길을 매우 구체적인 대중문화 의제속에서 모색해 왔다. 대중문화가 대중의 '사회로부터의 도피'를 부추긴다는 것은 이미 많은 대중문화 이론가들이 설파해 온 '진리'라 해도 그런 결정론적 시각에 수긍하고 굴복하는 것이 최선의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체제와 패러다임과 같은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며 사회적 지평선상에서 진행 중인 모든 상황에 대해 확신 있게 선언하는 파노라마적 지식인의 위상도 거절하고 있다. 거기에는 '정치'에 대해 언급할 때처럼 구체적이거나 지극히 세속적인 현실세계의 '작은' 문제들에 적용될 때 필요한 점진적인 개선 방안과 상황의 복잡성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화는 경제로, 경제는 문화로 쳐라
'일본 대중문화 수입 찬반론'과 '문화의 국제 경쟁력'에 대해 강준만 교수는 내부에서도 경쟁하지 않으면서 경쟁력을 운운할 수 있는 것인지 되묻는다. 또 공연은 허가하되 높은 세금을 매겨 마이클 잭슨을 좌절시켰던 독일의 사례를 들며 '문화는 경제로 경제는 문화로 쳐라'고 주문한다. 이러한 강준만 교수의 비평은 답이 이미 예정되어 있는 절대 불변의 공식이 갖는 '차원의 괴리'와 주관적인 인상비평의 공허함을 경계하면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또한 저자가 필생의 연구로 진력하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사'의 한 장을 이룰 90년대 대중문화의 역사와 논의에 대한 소중한 기록과 평가이기도 하다.
저자소개
그의 공식적인 이력은 위와 같이 간단하다. 그러나 그에게 따라붙는 애칭(?)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며 갖가지이다. 초기에 그의 실명비판과 직접화법은 '지독한 냉소와 직접화법 무장, 비평의 칼 뺀 '한국논단의 게릴라', ''성역'깬 실명비평의 매서운 칼날''에서 '독설 ', '독선적 글쓰기', '선정적 글쓰기' 라는 혹평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서로에 대해 직접적 비판을 피하고 서로의 밥그릇과 명예를 챙겨주는 데 여념이 없었던 지식인 계층과 문화계 인사들을 공격한 대가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때 또 하나의 '오만한 문화권력'으로 논쟁의 대상이 될 정도로 강준만식 비평은 갖가지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수많은 논쟁지점을 양산해왔다. 그리고 그의 비평은 단순히 언론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의 각 분야, 정계·문화계·여성계 등등의 쟁점에도 참여하거나 문제제기 하는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가 이렇게 폭넓은 게릴라전을 시도하며 '투계'와 같은 호전성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 사회가 아직도 실명비판을 넘어서 제대로 된 논쟁을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저력이 부족한 까닭이고, '상식인'의 시각에서도 아직 문제제기의 여지가 많은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저서로『인물과 사상』제1권~제22권 『김대중 죽이기』 『전라도 죽이기』『김영삼 이데올로기』『김영삼 정부와 언론』『언론권력도 교체하라!』『대중매체 이론과 사상』 『카멜레온과 하이에나』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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