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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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헤어져야 할 이유와 그 대안까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1953년 10월 1일. 곧 한미동맹 70주년 기념일을 맞는 대한민국의 상식과 통념은 ‘미국은 부모와 같은 존재이고 한미동맹은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미동맹의 지속에 동의하는 우리 국민의 비중은 2012년 이후 줄곧 90%대를 웃돈다. 한미동맹이 한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비중은 무려 93.8%에 이르는데 여기엔 진보/보수 진영에 따른 구분도, 연령에 따른 차이도 없다(본문 23~26쪽). 이렇다 보니 매우 이상해야 마땅함에도 태극기부대 시위 때마다 함께하는 성조기, 뭔가 모르게 부임신고 같은 한국 신임 대통령의 당연한 미국 예방이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해 자연스럽다. 미국이 제 땅 아닌 한반도에 전쟁을 기획해 발발 직전까지 갔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그저 그 불발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걸로 족하다. 베트남 파병에든 이라크 파병에든 갚아야 할 부채의 느낌이 껌딱지처럼 붙어 있지만, 미국에 대한 부채의 실체를 냉정히 따져보는 것도 어쩐지 어색하다. 하지만 ‘약간의 부작용이야 있었지만, 어림수로만 봐도 한미동맹의 손익계산서는 무조건 흑자다’는 식으로 대충 넘겨온 우리의 일념은 과연 사실에 부합할까?
이 책은 지난 70년간의 한미동맹 실체에 대해 객관적 사실과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진지한 손익계산의 질문을 들이댄다. 한미동맹은 과연 좋기만 한 건가? 좋다면 왜 다른 나라들이 한미동맹 식의 동맹을 안 하는가? 불평등한 동맹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식민지는 아니었나? 동맹이 있어 북한이라는 적을 막아낸 게 아니라 동맹으로 인해 한반도에 전쟁 공포가 계속되는 건 아닌가? 한반도에 봄기운이 올라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훼방꾼은 왜 번번이 미국인가? 미국에 대해 우리가 갖는 감정과 태도가 우리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라 외부에서 이식된 것이라면? 지금의 한국 정체성이 오래도록 단련된 세계 최대최고의 정보국가 미국의 심리전 결과물이라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살 길은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것인가? 둘 다 택하거나 둘 다 거부하면 안 되는가? ‘미국 해바라기’ ‘미국 아바타’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우리는 왜 상상하지 않는가? 이에 대한 저자 나름의 답변이 쌓여서 마주하게 된 결론이 ‘한미동맹 해체론’이었다.
미국과 헤어져야 할 이유 1: 한미동맹의 민낯
한미동맹 덕분에 우리가 안전하게 잘살고 있다지만, 그 동맹을 맺고 유지하는 데는 공짜로라도 군사기지를 빌려줘야 하고, 미군 주둔에 필요한 분담금을 더 내야 하고, 미국산 무기 수입의 큰 손이 돼줘야 하는 건 기본이다. 이런 기회비용 외에 포기해야 했던 기회이익, 즉 적을 상정할 수밖에 없는 동맹 탓에 동맹 바깥의 수많은 선택지 상당 부분도 접어야 했다. 남북경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 역시 모두 날아갔다. 수교 이후 한국의 최대 무역흑자국이 됐던 중국이 미국의 방어망 구축에 따른 사드 한국 배치로 30년 만에 큰 폭의 무역적자국이 된 것도 그 연장선상의 일이다.
동맹의 책임 때문에 원하지 않는 분쟁에 휩쓸릴 수 있다는 부작용도 문제다. “중국의 대만 침공시 주한미군 투입은 가능하다. 작전 수행 과정에서 어떤 병력을 결정하는 것은 미국이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의 말이다. 안보와 관련한 어떤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곧바로 데프콘3가 발령되고, 그때부터 한국의 전시작전권은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한미연합사령부가 갖는다. 한국군이 한국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한미동맹에서 미국은 언제나 갑이다. 원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큰소리친다. 그러면 한국은 당장 북한이나 중국에 먹힐 것 같다는 공포로 한바탕 난리가 난다. 미국이 명령을 내리면 한국은 이를 수용하는 관계의 압축판은 주한미군지위협정(일명 SOFA)으로, 한국 정부는 미군 범죄에 정상적인 사법권도 행사하지 못한다(본문 44~47쪽).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동맹이 강해질수록 적은 더 많아지고 강해진다’는 역설이다. 적을 만들거나 규정하는 몫은 미국이고 한국은 이를 수동적으로 좇아야 한다. 한미관계가 좋아질수록 북한과 중국은 더 무서운 악마가 된다. 미국이 경쟁자인 중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설정할 수 있지만 한국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그렇지만 영원하고 강철 같은 동맹을 위해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동맹의 적은 나의 적이어야 한다. 그 덕에 국내 보수 언론에서 북한은 항상 악마이고 ‘불량국가, 위장전술, 핵 앵벌이’ 등의 수사가 동원된다. 그렇지만 《뉴스타파》의 기획물 「북한뉴스해부」에서 2020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국내 22개 언론사의 북한 관련 뉴스 8만 개를 분석한 결과 많은 부분이 허위로 드러났다. “미국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미국의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 두 매체가 국내 언론이 북한 관련 기사를 생산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매체”라는 게 결론이다. 미국 CIA나 국정원 등에서 얻은 정보로 누군가 보도를 하면 다른 언론사가 확대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본문 48~55쪽).
미국과 헤어져야 할 이유 2: 미국 추앙의 근거가 우상에 불과하다는 점
먼저 깨야 할 우상은 ‘한국전쟁에 있어 미국은 구원자였을 뿐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착각이다.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건 맞지만, 미국의 행동을 보면 전쟁을 속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은 충분히 가능하다. 2차대전 후 대규모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펜타곤이 어떤 구실이라도 찾아야 할 때였고, 유엔의 결의안 82호와 83호를 ‘의도적’으로 무시함으로써 단순한 내전을 국제전으로 키운 것도 미국이다. 결의안에서는 38선 이남 지역의 질서회복이라고 분명히 밝혔는데, 미국은 이를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고, 그 덕에 전쟁은 강대국 간 대리전으로 커졌다. ‘미국이 한국의 자유와 인권을 지켜준 은인’이라는 것도 허상이다. 오히려 한국에 대해 “반공을 위한 전초기지로 제 역할만 해준다면 독재와 부정은 괜찮다”는 식이거나, 혹시 뭔가 잘못된 일이 생겨도 내가 상관할 바 아니라는 미필적 고의에 가까운 태도였다. 전쟁에서 한국을 도운 ‘천사’ 미국? 대서양헌장(1941.8.14)을 통해 더는 제국주의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미국이지만, 한국전쟁을 통해 얻은 이익은 하나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일종의 ‘대규모 공공사업’이라 할 전쟁을 통해 경제성장은 물론 공황도 극복할 수 있었다(본문 99~104쪽).
미국의 전쟁범죄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건국 후 가장 많은 전쟁의 당사자였음에도, 국제사회의 여론을 장악하고 있는 탓에 정작 영웅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한반도 전쟁에서 미국은 제2차대전 당시 태평양 전체에 퍼부은 양보다 많은 3만2000톤의 폭탄을 북한에 쏟아부었다. “대략 3년 만에 우리는 전체 인구의 20% 정도를 죽였다.”(전쟁 당시 전략공군사령부의 책임자 커티스 러메이 장군의 증언) AP통신이 1999년 보도한 노근리 학살(1950년) 이후에도 1951년의 경북 예천군 산성동 136명, 전남 영암 냉천마을에서 200명 이상, 충분 단양 곡계굴 주민 360명 학살 등의 사건들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일부 일탈 군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집단범죄로 봐야 할 증거가 많다. 그중 하나로 황해도 신천에서 3만5383명이 살해되었는데, 피카소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이라는 그림을 남겼을 정도다(본문 115쪽). 미국의 개입 정황을 엿볼 수 있는 사례로 1950년 6월 27일부터 몇 달간 벌어진 보도연맹 사건도 있다. 최대 20만~30만 명까지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집행자는 한국 군인이었지만 미군이 학살을 승인하고 무기를 지원하고 책임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후견인으로 미국을 보는 것 역시 틀렸다. 당장 경제원조만 해도 ‘자립’이 아닌, 낮은 단계의 근대화가 목표였다. 공짜도 아니었다. 명백한 불법이었던 베트남전에 공범으로 참여한 사례비였다. 민주화 영역에서도 미국은 오히려 장애물이었다. 공산주의 위협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중요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등을 통해 인권과 자유를 짓밟아도 모른 체했다. 1961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친 쿠데타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그 주동자를 미국에 초대해 오히려 면죄부를 주기까지 했다. 저자는 “미국이 민주주의를 가르쳤다거나 미국 덕분에 민주화가 되었다는 게 엉터리”라며 “미국의 기획과 달리, 우리가 군부 독재에 저항하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보는 게 더 맞다”(본문 127쪽)고 강조한다.
미국과 헤어져야 할 이유 3: ‘황국신민’과 ‘반공십자군’에서 벗어나려면
한국은 한미동맹을 통해 과거와 단절된 채 새로운 집단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미국 2등 시민’으로 쉽게 변신할 수 있었던 데는 ‘황국신민의 경험’과 ‘입양 프로젝트’가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강화된 한미동맹은 다르게 말하면 ‘동일화’다. 불가침의 신념이 된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천황제와 닮았다. 과거 귀축영미鬼畜英美, 즉 ‘짐승과 마귀’였던 미국과 영국을 대신해 지금은 러시아와 중국이 들어섰다. 북한・이란・시리아 등은 그 똘마니다. 태평양전쟁은 지금까지 싸웠던 냉전의 연장전이다. 날로 강해지는 악마에 맞서 동맹 강화, 내부 단결과 전쟁 대비는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있다. 이렇게 진영논리가 강화되면서 ‘우리 편에 서지 않으면 적이다’라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대한독립 만세’의 추억을 묻어버리고 ‘황국신민’이 된 것과 매우 닮았다. (본문 76쪽)
한국전에서 유엔의 결의안과 달리 38선을 넘어선 이후에는 공산 진영으로부터 ‘양키 제국주의Yankee Imperialism’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명분을 뭐라고 내세웠든 남의 땅에서 전쟁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권을 세우려고 했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것과, 냉전의 첫 희생양이 된 한국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것, 더 나아가 한국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한국을 어찌할까?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자라는 명성을 지키면서, 미국이 제시하는 모델이 옳다는 것과 미국 편에 서는 게 더 좋은 선택이라고 믿도록 하는 방법은 뭘까? 민족주의에 뿌리를 둔 주권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훈육하고 간섭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여기서 미국이 찾아낸 파격이 ‘입양’ 프로젝트다. (본문 149쪽)
1953년부터 1983년까지 미국에 입양된 한국 아이는 대략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쟁의 부산물이 아니라 미국의 신식민주의 전략으로, 인간의 얼굴을 한 군사주의를 은폐하기 위한 작업이며, 이를 통해 미국은 여타 제국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본문 149쪽). 여기에다 민주주의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채 독립했다는 것도 중요한데, 백지 상태여서 특정한 정치 시스템을 이식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더구나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고 미국이 유일한 희망이었다는 절박함은 공산주의 세력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반공전사’로 키울 수 있는 막강한 장점이다. 게다가 한국의 기독교 집단이 공산주의라는 악마와 싸울 준비가 된 ‘반공 십자군’이었다는 점은 화룡점정 격이었다(본문 151~154쪽).
부모가 된 미국은 또 다수의 미국 숭배자를 육성했다. 미국이 한국을 입양하고 훈육하는 기본 전략은, 통치를 받는 원주민이 자존감을 다치지 않으면서 제국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만들려면 토착 엘리트가 제국을 돕는 게 애국하는 길이라고 믿게 하면 된다는 것. 이를 위해 장차 엘리트가 될 인물은 미국 유학의 기회를 줬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비롯해 아시아재단・한미재단・록펠러재단・포드재단 등이 도왔다. 군인 집단은 특별 관리했다. 미국이 지향하는 ‘반공’이라는 가치를 공유하게 하는 한편, 군사적 종속관계를 만들 수 있는 전략이었다.
한국인의 취향을 관리하는 동시에 두뇌도 공략했다. 미군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는 한국인 중 미국의 관점을 대신 전달해줄 영향력 있는 인물을 내세웠다. 대학생과 지식인은 주로 『사상계』를 활용했다. CIA가 배후에 있었던 아시아재단이 도왔어도 대부분은 이 사실을 몰랐다(본문 203~207쪽). 한국인의 취향 관리대상의 하나였던 클래식 음악은, 당시 유럽 엘리트 문화라고 배척받던 사회주의 진영과 달리 미국은 정치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예술을 옹호한다고 선전하는 도구가 되었다. 동시에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지원에도 앞장섰다. 과거 식민지로 있을 때 일본이 억압했던 영역이라는 걸 반대로 이용했던 것이다. 전통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모습을 통해 ‘자유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갔다(본문 199~203쪽).
미국과 헤어져야 할 이유 4: 스스로를 건사도 못하는 ‘미국 아바타’를 위해
미국은 한국을 잘 안다. 70년 이상 지켜보고, 관리하고, 정보를 축적해왔다. 집단으로서 한국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자극을 받으며, 집단기억 중에서 소중하게 간직하는 게 뭔지 안다. “미국은 필요에 따라 집단의 기억과 정서를 소환한다. 민족 자존감을 자극해 혐중 정서를 만든다든가,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함으로써 전쟁의 공포를 되뇌게 하고, 또 ‘빨갱이 공포심’을 소환해 북한에 대한 악마 이미지를 굳힌다.”(본문 206쪽)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제국의 호위무사 집단도 잘 갖춰진 상태다. 그들이 지켜야 할 전선도 분명하다.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전시작전권, 국가보안법, 한미연합훈련 등이다. 손익계산을 했을 때 유독 미국이 많은 특혜를 누리는 영역이다.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의 핵심이라 할 전시작전권이 협상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반환되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전시작전권은 미국이 굳이 돌려줄 이유가 없다. 불과 1개 사단에 불과한 3만 명을 운용하는 주한미군이 60만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것과 관계가 깊다. 패권경쟁을 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이만한 자산이 없다. 2023년 기준 군사력으로 세계 6위인 한국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다. NATO와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된다. 미국의 직접 통제를 받는 대응군 규모는 2022년 2월 기준으로 4만 명밖에 안 된다. 대략 30개의 회원국이 1000명 정도의 자국 군대를 파견해 그것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구조다. 제정신이 아니라면 자국 군대를 모두 미국에 맡길 이유는 없다. (본문 268쪽)
심리전을 펼칠 수 있는 환경도 좋다. 정부의 뜻을 온전히 반영하는 VOA와 RFA를 비롯해 CIA의 지원을 받는 여러 탈북자 언론사가 자유롭게 활동을 한다. 미국 사대주의에 물든 지식인과 서방 정보에 대한 의존성이 강한 언론도 항상 대기중이다. 미국 정부관료, 군산복합체가 배후에 있는 싱크탱크 연구원, 미국 예외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대학교수는 한국 언론을 통해 언제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작동방식은 거의 판박이다.
분단 70년이 지나도록 한반도의 위기가 반복되는 건 이런 악순환을 통해서다. 미국은 굳이 전면에 나설 필요도 없다. 은근한 압박을 하는 한편으로, 자신이 싫어한다는 눈치만 전하면 된다. 행여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호위무사가 심리전을 대신해준다. 한미동맹이 ‘처방’이 아니라 반대로 ‘불행의 씨앗’일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낯선 길이어도 작별을 해야 할 이유다(본문 325~328쪽).
한미동맹 해체, 그다음의 선택지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에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일 년 후에 본 조약을 중지시킬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국의 내부 역량도 역사상 최고 수준이고, 국제사회의 뜻하지 않은 지각변동 덕분에 동맹 해체와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시점도 좋다(본문 326쪽). 저자는 미국이 지배하는 일극 세계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국제사회가 점차 다극질서로 가고 있다는 점, 미국 달러 중심의 금융체제도 바뀌고 있는 등 환경 변화를 거론하면서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중립국화’라는 낯선 길을 알려준다.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남과 북이 공동으로 ‘중립국’을 선언한다 해도, 미국과 중국은 유엔을 통해 한 약속 때문에 반대를 못 한다.(본문 342쪽) 제1조 2항의 “평등권 및 자결의 원칙을 존중”한다는 것과, 제2조 7항 “본질상 어떤 국가의 국내 관할권 안에 있는 사항에 간섭할 권한을 국제연합에 부여하지 아니하며”란 내용이다. 물론 ‘남남갈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론 분열이 심하고 미국이 손 놓고 있지 않으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엇보다 담론지형을 바꾸는 작업이 우선해야 한다. 분단질서가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 전시작전권을 회수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동맹을 유지하는 비용이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 등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모순을 미국과 유럽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바라봐야 한다. 이분법에서 벗어나 미국도 틀릴 수 있고 중국과 러시아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저자는 무엇보다 한국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심리전이 한국의 호위무사들을 통해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제질서라는 게 누군가의 기획으로,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 스스로 해결한다는 원칙에 의거하면서 말이다(본문 356~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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