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S, 넌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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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전세계 국가들이 골머리를 썩일까?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라 번역되는 ISDS, 이는 어떤 개인이나 기업이 외국에 투자했으나 그 나라의 부당한(?) 처분으로 손해를 입었을 경우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일견 상식적으로 보이는 이 ISDS 때문에 이미 수조 원대의 배상액을 다투게 된 한국은 물론, EU나 미국 같은 강대국 정부들도 골치 아파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물어내야 할 천문학적 액수의 배상금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국가주권을 침해당할 위험마저 커지면서, ISDS는 국제통상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그런데 속내가 전혀 공개되지 않는 비밀주의 원칙 탓에, 그 심각성에 비추자면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문제인데도 현실은 그 반대다. 오죽하면 ISD란 잘못된 약칭이 아직도 돌아다니겠는가. ISDS는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의 약자, 말 그대로 투자자(Investor)와 국가(State) 사이의 분쟁(Dispute)을 해결(Settlement)하는 제도다. 해결 절차를 의미하는 마지막의 S를 떼면 본래의 의미 자체가 담기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경제부 기자들이나 전문가들조차 이를 ‘소송’으로 잘못 알고 ‘투자자-국가 소송제’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ISDS는 기본적으로 ‘중재’다. 분쟁의 당사자들이 중재인(1인 또는 3인)을 선정하고 그 결정에 따르기로 합의하는 방식 말이다. ISDS는 이를 국가로까지 확장한 것일 뿐이다. 다만 국제협약 및 FTA 등으로 중재의 결정(‘판정award’이라고 부른다)이 강한 구속력을 갖도록 각국이 사전에 합의해뒀기에 가능한 것이다. 아울러 국제중재기관도 국제 법정 같은 것이 아니라, 중재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규칙과 절차 그리고 중재를 진행할 장소와 통신수단 등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일종의 서비스업체(역시 민간업체)에 불과하다.
ISDS가 이렇게 생소하고 복잡한 제도이다 보니, 개념ㆍ명칭ㆍ방식ㆍ절차 등에 대해 제대로 널리 잘 알려내는 것이 이 책의 첫 번째 목표다. 이를 역대 여러 ISDS 사례를 통해, 특히 엘리엇 사건과 론스타 사건을 집중 분석해가는 가운데 ISDS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 그리하여 세 번째 목표는 그 대안적 체제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공감대를 확장해가는 데 있다.
진정 ISDS ‘괴담’을 퍼뜨린 건 누구인가
우리에게 ISDS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한미 FTA 협상(노무현 정부)과 재협상(이명박 정부) 때였다. ISDS가 독소조항이라며 빼버려야 한다는 반대측의 목소리에 대해, FTA를 추진하는 정부는 이를 근거 없는 두려움 혹은 ‘괴담’쯤으로 취급하며 ISDS가 국내 법제도를 선진화시킬 ‘좋은 것’이라고 홍보했다. 예컨대 2011년 한미 FTA 재협상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국내에서 ISD 우려가 괴담 수준으로 떠돌고 있다.”(최석영 외교통상부 FTA교섭대표) “ISD, 공정한 글로벌 스탠다드”(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정권은 달랐어도 이런 태도는 그 이전 노무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FTA 타결 이후 청와대는 ISDS가 “투자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합리적 제도”라며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법과 제도를 유지해간다면 제소당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사안에 한정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2021년 현재 한국에 제기되었거나 혹은 제기할 의향이 밝혀진 ISDS는 모두 13건에 이른다. 총 청구액은 10조 원 안팎. 외환은행 ‘먹튀’의 장본인인 론스타와 삼성 경영권을 노린 엘리엇도 한국 정부에 ISDS를 제기한 이들 중 하나다. 법과 제도에 따른 정상적인 한 국가의 공공정책도 ISDS의 타깃에 포함된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과세 처분이나 부동산 재개발 수용 같은 우리에게 당연한 일들마저 ISDS의 시빗거리가 되었다. ISDS가 국가의 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그런 우려를 괴담이라고 폄하하던 주장들이 오히려 진짜 괴담이 된 것이다.
현실이 된 ISDS 괴담의 목록들
① 피소 가능성 0%?: 당시 정부의 “피소 가능성은 사실상 없습니다”는 해명처럼, ISDS 제도는 한미 FTA 이전에도 다른 통상협약을 통해 도입돼 있었고, 그때까지는 단 1건도 제기당한 적이 없기는 했다. 전세계적으로도 ISDS는 처음 등장한 1950년대부터 2000년까지 50건을 조금 넘기는 수준으로만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ISDS는 대부분 정보가 비공개이기 정확한 통계는 없다.) ISDS 건수가 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이후로, 최근 한국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7월 말까지 983건의 ISDS가 제기되었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2000년대 이후 ISDS가 늘기 시작하는 추세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때까지의 경험만으로 너무 쉽게 생각한 셈이다.
② 공공정책의 자율성을 충분히 확보?: 한미 FTA의 ISDS로 제기된 첫번째 사건은 재개발 대상 지역의 부동산 수용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주택재개발 같은 공익사업에서 반대하는 시민의 부동산 등을 공시지가 기준으로 수용할 수 있게 허용한다. 이는 좁은 국토에서 효율적인 개발을 추진하고 서민의 주거 안정을 이루기 위한 한국 고유의 공공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도 미국인에게는 ISDS의 대상이 된다. 미국인 서진혜 씨(한국 국적이었지만 미국으로 귀화)는 자신이 투자 목적으로 구입한 주택이 재개발사업에서 수용당한 것이 부당하다며 한국 정부에 ISDS를 제기했다. 다행히 이 ISDS는 주택 소유가 투자 목적이었다는 게 인정되지 않아 각하되었지만, 만약 한국 정부가 패소했다면 우리의 토지수용제도는 변동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론스타 사건의 경우에도, 크게 두 가지 이유로 ISDS가 제기됐다. 첫째는 우리나라 금융위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지연했다는 것. 그런데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들도 은행의 인수와 매각은 엄격히 심사하며, 게다가 당시 론스타는 외환은행 주가조작 사건으로 조사중이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금융정책도 투자자에게 큰 손해를 입혔다면 ISDS의 타깃이 된다. 둘째로, 론스타는 본인들이 낸 세금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조세정책 역시 ISDS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③ ISDS는 법체계가 불안한 후진적인 나라나 당하는 것?: 한국은 후진적이어서 13건에 달하는 ISDS를 제기당한 걸까? 과거엔 주로 이른바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 ISDS를 제기당한 게 맞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네덜란드·영국·독일 같은 선진국들도 그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과 EU 사이에 8년이 넘게 논의중인 TTIP(범대서양 무역투자 동반자협정)가 아직도 타결되지 않고 있는 것도 ISDS를 포함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도 최근 NAFTA을 개정하면서 미국-캐나다 사이의 ISDS를 폐기했다.
④ 기업이 무분별하게 제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천만의 말씀. 최근 전세계적으로 ISDS가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기업들이 ‘모 아니면 도’ 식으로 ISDS를 제기하고 있어서다. 엘리엇만 해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에서 오히려 삼성물산 투자를 늘려 이득을 도모하는 도박성 짙은 투자를 했고, 이 투자에서 실패하자 한국에 ISDS를 제기했다. 그것도 실제 투자 손해의 7~8배에 달하는 8600억 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분쟁과 어떤 관련도 없는 제3자들이 투자자측에 ‘ISDS를 걸라’며 자금을 모아주고, 해당 기업이 중재판정에 이겨서 손해배상금을 받으면 나눠 갖는 형태의 펀드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세계 투자자들이 ISDS를 ‘투자 수익을 실현하는 공격적인 기법’의 하나로 인식하고 활용하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ISDS, 폐지가 옳다!
ISDS는 한 국가의 내치 정책을 외국인이 좌우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부당할 뿐만 아니라, 외국 투자자와 국가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 효율적이지도 못하다.(론스타 ISDS는 9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에 저자들은 ISDS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투자자와 국가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땐 어떻게 하잔 걸까? 저자들의 답은 간단하다.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투자자들과 ‘동등하게’ 국내소송 또는 국제소송(다른 나라 법정에서 이뤄지는 소송)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면 된다.” 그 나라 법률제도를 믿지 못할 때는 그만큼의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고위험 고수익’의 원칙은 법률 제도와 관련해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법률 제도가 선진국만큼 잘 정비되지 못한 나라에 투자하려는 외국인들은 그만큼 높은 투자 수익을 노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법률 제도와 관련된 그만큼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더 중요하게는, 이미 국제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ISDS를 과연 폐지할 수 있을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자들은 ISDS에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나라들끼리 투자협정에서 ISDS를 빼는 식으로 첫 단추를 꿰어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예컨대 한국이 몇 년 전 에너지 정책을 변경했다가 해외 기업들로부터 수십 건의 ISDS로 두들겨 맞고 있는 스페인에게 먼저 ‘한-스페인 BIT에 있는 ISDS를 빼자’고 제안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ISDS의 타깃이 되고 있는 한국이 먼저 나서서 ISDS 폐지를 향한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해보자는 것이 이 책의 과감하고도 현실성 있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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