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행복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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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80년대적'이라는 말이 있다. 과도한 낙관주의와 이념 과잉이라는 아픈 낙인으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못한 그 80년대, 그리하여 쉽게 잊어버리고 재빨리 물러나버려 이즈음엔 거리감을 넘어선 단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흐름에서 결코 예외가 아닌 문학, 특히 박노해·백무산 등의 시인을 탄생시킨 노동시 부문에서 그러한 단절감은 더욱 심하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온 80년대와 80년대적 정서를 되새김질하며 그 현재적 의미를 곱씹어보려는 노력은 여전히 유의미하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문동만의 처녀시집은 작은 미덕을 지닌다. "할 말을 다하지 못했다/아직도 그런 말하느냐고 물으면/할 짓을 다하지 못했다/아직도 그런 짓 하느냐고 물으면"(<1995-갈 길> 전문)이라는 고백은 90년대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문동만 시인의 소박한 출발점을 보여준다.
농촌정서에 기반한 노동자의 삶과 서사공간
또한 문동만의 시는 80년대 민족문학 진영 시의 지나치게 쉬고 갈라진 소리에 대한 반성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80년대가 놓쳤던 서정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과 문제의식이 한때 엉뚱하게 연애시 쓰기로 빗나가기도 했다고 말하는 시인 김진경은, 권말해설을 통해 문동만의 시를 "사람이 사람을 향해 쉬는 의미를 담은 숨의 원형으로서의 건강한 서정시를 보여준다"고 평한다.
그러면서 "문동만 시의 이 자연스럽고 투명한 숨은, 같은 노동자 시인으로서 80년대에 충격을 가했던 박노해 시의 가쁘고 툭툭 끊어지는 리듬과는 무척 대조적"이라며, 문동만 시의 서정적 기반인 "농촌적 삶에서 형성된 시의 호흡은 노동자로서 궁핍하게 살아가는 도시의 삶을" 넉넉히 감싸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때문에 "세상에 대한 열정이 드러나는 시들에서 호흡이 빨라지기는 하지만 결코 쉬거나 갈라지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상의 말에 서정의 힘과 무게를 실어
떠나온 고향은 "사람이 죽어야 사람이 사는 것 같"(<죽어야 사는 마을>)은 곳. 찾아든 곳은 "찻집이 죽 늘어서 아리아리한 불빛이 밤 12시를 넘도록 새나오"(<우리 동네>)는 도시변두리. 거기서 "청약을 붓고/최소한 방 두 칸 거실 화장실 딸린 만만한 집 없나/생활정보지를 수험생 공부하듯 탐독"(<소시민>)하기도 하고, "주머니가 조금만 넉넉해도 불안하고/아픈 데 없이 며칠이 가도 불안하고/…/이 작은 것마저/ 누군가가 가져갈까 무서워/나는 늘 두렵다"(<나의 불안>)는 소시민,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노동자다. "나는 꼬마다/눈물밥 먹어보지 못한/ 내 살은 물렁살/철야의 졸음 앞에 맥없이 휘여지는 내 뼈는 약뼈/…/저 집요한 노동 앞에서/우윳빛 절삭유를 마시며/더 찌고 커야 할/나는 꼬마"(<꼬마>)인 그는 "정녕 나는 곧게 갔나/…/샛길로 새지 않고 곧게 서서 곧게 갔나"(<나는 얼마나 뜨거웠나>)라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하고, "누군가 걸어야 할 길이라면/차라리 내가 걷겠다"(<차라리 내가 걷겠다>)며 척박한 노동 현실과 당당히 맞서겠다 다짐도 한다. 그러면서도 일상의 말을 투명하게 갈고 닦아 서정의 힘과 무게를 실어내는 문동만은 "참으로 좋은 서정시인이며, 사람과 삶에 대한 따뜻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권말해설」)이란 평가를 동시에 얻어내는 저력을 보인다.
저자소개
올해 스물 여덟의 용접공 문동만은 순수 노동자 시인이다. 80년대 노도와 같이 일었던 노동문학의 물결 속에 부천에서 노동자 문학회 글마을을 만나 처음으로 '문학이란 것'에 눈을 뜬 그에게는, 그것이 동시에 '세상에 대해 눈을 뜬 것'이기도 했다. 이미 한물 갔다는 '80년대적 열정'을 아직도 가슴에 담은 채, "한때는 자신있게 쏟아뱉았던 거창한 수사들을 묻어야겠다."며, 이제 출발선에 선 희망을 이렇게 얘기한다. "더 나아가고 더 부딪쳐야 할 것이 많다는 점을 잊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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