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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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질문 1 유력 대선후보 문재인 전 민주당대표는 2012년 대선 당시 4년 중임제 개헌과 결선투표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이 두 가지 모두에 반대하며, 대선 이후로 개헌을 미루자는 걸까?
질문 2 왜 문재인·안철수·이재명·유승민 등 대선주자로 꼽히는 사람들은 대선 전 개헌에 반대하며, 박지원·김무성·손학규 등의 대선에 안 나가는 유력 정치인은 대선 전 개헌을 주장할까?
답은 둘 다 ‘자신들이 최대한 많은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이다. 자신이 권력을 얼마큼 얻을 수 있을지가 그 정치인의 개헌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 겉으로는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개헌의 시기와 내용에 대한 입장은 자기 권력이 얼마나 확보될 수 있느냐에 따른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개헌을 말할 때 먼저 이상적인 헌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며, 국가의 미래 설계도를 그리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저자는 정치인 모두가 당리당략적으로 개헌을 이용하며 다투는 현실에 눈 떠야 한다고 말한다. 개헌이 정치인들에게 이용만 당하지 않도록 우선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동시에 우리 시대 헌법적 이상의 뿌리는 민주주의인바 “우리는 ‘타협 없는 이상’만을 고집할 수 없지만 ‘이상 없는 타협’에 빠져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지금의 개헌 논의가 이상적인 헌법에 가까워지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개헌전쟁’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개헌은 언제나 권력구조의 문제였다
우리 개헌사의 주요 이슈를 거슬러 가보자. 87년 6월항쟁으로 얻어낸 제9차의 직선제 개헌, 광주학살 후 제8차의 간선제 개헌, 박정희 영구집권을 위한 제7차의 유신헌법 개헌, 제6차의 3선 허용 개헌, 5․16 쿠데타 후 제5차 대통령제 개헌, 4․19 후 제3차의 내각제 개헌, 이승만 종신 대통령을 위한 제2차의 사사오입 개헌, 전시에 통과된 제1차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렇듯 3․15 부정선거 가담자를 처벌하기 위한 제4차 소급입법 개헌을 제외하고는, 모든 개헌의 핵심이 권력구조 변경 문제였다. “우리나라 개헌의 역사는 집권을 위한 억압과 투쟁의 역사”였고, 지금도 그 양상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최근 개헌 논의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관심은 없이 권력구조만 논의하는 게 문제라며 비판한다. 이런 비판은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제까지 개헌은 언제나 권력구조의 문제였으며, 결국 권력구조의 문제가 국민의 기본권 등과 연쇄적 관계에 있음을 이 책은 시간 역순의 개헌사를 통해 잘 보여준다.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혹은 그 반대 경우들로) 바뀔 때마다 국민의 삶은 크게 뒤바뀌었다. 권력이 어떻게 선출되며 누가 권력을 얼마큼 가지느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정적인 사안이다. 그에 따라서 박정희 같은 대통령, 전두환 같은 대통령, 박근혜 같은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권 보장이란 헌법에 권리 보장 조항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훌륭한 헌법조문을 가지고 있었다. 박정희 때의 헌법도 내용상으로는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장했고,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국민의 역량과 권력에 대한 통제력이다. 저자가 권력구조의 문제에 집중하고 이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다.
우리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얼마나 누리며 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얼마나 많고, 구체적인 기본권 문장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 발전, 다른 말로 하면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투쟁을 통해서, 그리고 추상적인 헌법 문구의 구체적 해석투쟁을 통해서 발전하는 측면이 거의 절대적이다. 이는 우리 헌정사가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는 기본권에 관한 헌법 문장이 얼마나 빛을 발하느냐 하는 것은 정치 발전, 민주주의 발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대표를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선출해야 하고 또 그들이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할 때는 소환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107~108쪽
사람이 문제다? 아니, 제도가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문제에 접근할 때는 사람이 아니라 제도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에서도 정치인과 유권자 수준을 탓할 게 아니라 선거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상식으로 통한다. 그런데 유독 개헌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헌법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식이다. 정말 그런가? 그럼 사람은 어떻게 바꾸나? 헌법을 바꾼다면 사람(나아가 정당 혹은 정치 문화)도 바뀌지 않을까? 개헌으로 인한 권력구조, 정치구조의 변화는 분명 사회의 모습을 장기적으로 변화시켜 나간다. 따라서 정치인 개개인의 선의와 역량에 기댈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보다 발전시킬 수 있는 쪽으로 개헌이 추진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만일 지금의 사태가 조기 대선과 대통령 교체만으로 끝나고 만다면, 결국 바뀌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민주주의는 사람이 아닌 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 정치구조가 다수파가 소수파를 압살하며 패권적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구조라고 본다. 상대다수대표 선거제와 대통령제의 결합이 그 구조의 핵심이다. 이런 구조적 조건 위에서 인구가 많은 영남지역이 패권을 차지하는 영남패권사회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행 제도는 의회권력과 대통령권력이 동일한 정치세력일 때는 제왕적 대통령이 출현하며, 둘이 다를 때는 국정이 심각한 난맥이 빠진다는 문제가 있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한다. 즉 선거제도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국정체제는 내각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소수세력도 정당한 권리를 갖게 되고, 권력 독점이 아닌 타협에 의한 정치가 자리 잡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ㆍ약자의 지위 문제는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급한 사안이다. 나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 내각제만이 오직 유일하게 지역이든, 여성이든, 노동자든, 실업자든, 그 누구든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표를 결집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연립의 형태로 정권에 참여해 소수자ㆍ약자의 지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에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략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다. -339쪽
대선 이후에 개헌하자? 그렇다면 ‘부칙 개헌’이라도 하자!
지금 모든 정치인들의 개헌에 대한 입장은 집권 가능성에 따라 확연히 구분된다. 집권 가능성이 높을수록 개헌에 소극적이다. 특히 그럴수록 대통령권력을 축소하거나 임기를 줄이는 방향의 개헌을 거부한다. 물론 어떤 정치인도 명시적으로는 개헌을 반대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개헌의 필요성과 그에 대한 요구를 거부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다만 개헌을 충분히 논의하기 위해 대선 이후로 미루자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그런 식으로 개헌이 이뤄진 사례가 없다”고 일축한다. 김영삼도, 김대중도, 노무현도 당선 전에는 개헌을 약속했지만 당선 뒤에는 다른 소리를 했다. 박근혜도 개헌 공약을 내세웠지만, 벼랑 끝에 몰렸을 때나 그 이야기를 꺼냈을 뿐이다. 대선이 끝나고 정치구조가 다시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나면, 새 대통령은 개헌 필요성을 조금도 느끼지 않을 것이고 개헌의 동력도 사그라들고 말 것이다. “지금 이 혁명적 분위기가 지나가면 2018년은 말할 것도 없고, 2020년에도 개헌은 어림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최소한의 대안으로 ‘2017년에 선출되는 대통령의 임기만료 및 현행 헌법의 종료시점과 헌법 개정 시점을 2018년 혹은 2020년까지로 정하는 헌법부칙 개헌’을 제안한다. 이렇게 되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개헌을 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개헌에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단지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라면 이런 부칙 개헌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런 개헌도 못한다면? “그렇다면 지금 유력 정치인들이 미래의 ‘완벽한’ 개헌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찬란한 약속을 하는 것은 모두 헛소리라고 보면 된다.”
탄핵 정국에서도 그랬듯, 개헌 문제에서도 믿어야 하는 건 정치인들의 그럴듯한 말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의 힘과 지혜다. 이를 위해 국민들이 “개헌전쟁의 현상 너머 본질”을 볼 수 있게 하려는 것, 이것이 이 책의 집필의도이다. “헌법 얘기가 곧 우리들 삶의 얘기고, ‘개헌전쟁’이 곧 우리의 민주적 삶을 위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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