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무기
페이지 정보
본문

도서소개
한국 사회에서 소통이 큰 과제라는 건 수많은 언론과 식자뿐만이 아니라, 평범한 국민들 누구나 알고 있다. 국회의사당에서 시장 바닥에까지 ‘우리나라는 소통이 안 돼서 문제’라는 이야기는 귀가 아프게 되풀이돼왔다. 그런데 이런 질타와 반성이 있은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소통의 소자도 잘 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주된 원인도 그가 심각한 ‘불통 대통령’이어서가 아니었는가.
저자 강준만은 한국 사회가 실제로 소통이 잘될 만한 구조와 조건이 아니고, 국민들도 소통에 대해 별 생각과 의지가 없으면서 그저 소통 부재를 한탄만 한다고 지적한다. “‘소통의 부재’는 그 자체로 원인이기보다는 결과이자 증상”인데, 문제의 원인을 해명하고 고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무턱대고 소통을 구호로 외치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를 알고 사회를 바꿔나가는 일이다.
일찍이 한국을 ‘대중매체 사회’로 정의하고 사회 전반의 소통 문제에 천착해온 저자가 이 책에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망라해 보여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론 몇 가지를 안다고 해서 우리의 소통 능력이 향상될 거라는 순진한 기대에서가 아니다. 하지만 소통이 왜 이렇게 힘든 건지, 무엇이 소통을 가로막는지 그 이유는 뭔지 알아야 변화를 바랄 수 있지 않겠는가. 저자는 이 책이 ‘소통 대한민국’을 만드는 ‘소통의 무기’를 제공하기를 희망한다.
일상의 ‘왜’에 답하는 95가지의 커뮤니케이션 이론
이 책은 ‘왜’라는 의문사로 시작하는 95개의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왜 우리 사회의 문제는 늘 ‘소통’인가?” “왜 일부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을까?” “왜 인터넷이 사회통합을 저해하는가?” 등등의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에는 두 가지 면에서 장점이 있다. 첫째, 커뮤니케이션 이론들이 구체적인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에서 이야기되기에, 독자들이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더 궁금한 부분을 먼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우리가 ‘왜’라고 물었을 때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을 넘어 문제의 깊은 원인을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왜?’라는 질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자신과 반대되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추상적 사고를 유도한다”. 이런 효과는 이 책의 목적, 즉 우리 사회 소통 부재의 원인을 탐색하고 그것을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게끔 하려는 저자의 의도에 걸맞다.
사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 보려고 하는 우리의 성향은 집요하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 당사자들을 비판함으로써 그 일의 원인마저 그 사람들 때문이라는 식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데, 이게 옳은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사람 탓만 하는 식의 해법은 그런 일들이 사람만 바뀐 채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속된 말로 정치가 ‘개판’이라면 그렇게 된 이유와 책임을 정치인들에게만 물어선 답이 나오질 않는다. 정치인들은 왜 그러는지, 한 단계 더 나아간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필요하고, 바로 여기서 이론이 요구된다. -12쪽
또한 이 책은 95개의 각 꼭지 말미에 각 이론·개념과 관련된 ‘최근 논문’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논문일까? 저자는 논문은 전문 연구자만 보는 거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독서 패턴이 바뀌고 있는 오늘날, 이제는 논문을 종이책보다 더 쉽게 구해볼 수 있으며 쉽게 읽을 수 있고 재미있는 논문들도 많다는 것이다. 논문을 대강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이 얻는 것이 많으니, 저자는 자신이 선별한 목록들을 잘 활용해달라고 독자에게 당부한다.
7가지로 뽑아본 소통의 문제
그렇다면 저자가 파악하는 우리 사회 불통의 요인은 무엇인가? 아무리 소통을 외쳐도 그렇게 되지 않는 구조적·문화적 문제로, 저자는 크게 7가지를 든다.
첫째는 ‘승자독식주의’다. 승자가 독식을 하는 체제에선 자기가 이기기만 하면 다른 사람과 소통할 필요가 없다. 박근혜를 비롯한 역대 대통령들이 불통 소리를 들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력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소통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둘째는 ‘초강력 중앙집권주의’다. 한국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서울 1극 구조’다. 때문에 풀뿌리 소통이 없이 중앙을 장악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셋째는 ‘서열주의’다. 한국인들은 말로 소통하는 게 아니라 서열과 등급과 계급으로 소통한다. 이로 인해 소통은 더 어려워진다.
넷째는 ‘지도자 추종주의’다. 대중들이 스스로 판단해 소통하려 하기보다 지도자를 바라보기만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사회에서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다섯째는 ‘극단주의’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강경파들이 득세를 한다. 상대와 합리적·생산적으로 경쟁체제를 이루려는 이들은 힘을 얻지 못한다.
여섯째는 ‘이념의 사유화’다. 자신이 내세우는 명분과 이념을 조금만 유연하게 적용하면 반대편의 명분과 이념을 갖고 있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명분과 이념에 자신의 이익을 다 걸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일곱째는 ‘각개약진’이다. 각개약진은 한국인 삶의 기본 패턴이다. 공적 영역과 공인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해 사회적 문제조차 혼자 또는 가족 단위로 돌파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자연히 소통이 설 땅은 없다.
이와 같이 한국은 구조적으로 소통을 기대하기 힘든 사회다. 그간 한국인들은 소통을 팽개치고 살아왔고, 또 그 덕분에 ‘빨리빨리’ ‘불도저처럼’ 달려온 면도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갈 수 있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불통의 문제가 사회를 분열시킬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느리더라도 ‘소통 대한민국’을 향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그 소통에 조그마한 기여라도 하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소통 대한민국’으로 가자. 더딜망정 방향은 그렇게 잡자.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방향조차 그쪽으로 틀질 못했다.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생각은 잠시 접자. 서로 충돌하는 모든 집단들이 각자 다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선거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면 모를까, 그걸 하기로 한 이상, 또 그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이상, 이젠 달리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미우나 고우나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 옳건 그르건, 그 누구도 완승(完勝)은 가능하지 않으며, 누가 이기건 승자 독식주의는 나라를 망치는 짓이니, 소통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723쪽
저자소개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