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히스토리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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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역사학의 편견을 깬 역사학개론
흔적을 남기고, 전하고, 이야기하는 존재인 인간은 그래서 역사 그 자체, ‘호모 히스토리쿠스(Homo Historicus)’다. 역사공부가 결국 인간 공부인 이유다. 저자 오항녕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는 아들에게 역사학을 권한 바 있다. 파는 음식을 자기 자식에게도 먹이는 음식점이 좋은 식당이듯 이 책은 자식에게 역사학이 좋은 음식이라며 권한 역사학자가 자녀 세대를 위해 쓴 ‘조금 다른’ 역사학개론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역사의 주요 주제들을 두루 살피며 역사학이 그간 소홀해온 역사공부의 기초를 다지는 한편, 역사학이 범한 왜곡과 오류를 경계함으로써 독자들의 편견 없는 역사관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 또한 거대사·국가사 중심의 역사교육으로 인해 역사적 존재로서 우리들 개개인이 간과해온 ‘작은 역사’ ‘여러 역사’의 가치를 일깨우는 데도 역점을 뒀다.
역사의 기초: 구조-의지-우연의 균형 잡기
이 책은 먼저 역사공부의 기초이면서도 그간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사건의 구성요소로서 구조-의지-우연의 관계를 탐색한다. 모든 사건이 발생하는 바탕인 객관적 구조(타고난 조건),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이기에 매 사건마다 자연스럽게 개입되는 인간의 자유의지, 서로 원인이나 목적이 다른 둘 이상의 행위(사건)가 만남으로써 발생하는 우연. 역사의 모든 사실·사건은 이 세 가지 요소가 합쳐져 발생한다. 따라서 역사 탐구의 기본은 구조-의지-우연을 두루 살피는 일이며, 저자는 셋 중 하나라도 소홀히 보는 것은 역사 탐구자로서 직무유기라고 말한다.
예컨대 저자는 사도세자의 비극을 두고 분분해온 설(노론-소론 당쟁설, 왕-세자간 권력투쟁설, 영조 성격이상설 등)들은 대개 ‘세습왕정’이라는 당대의 구조를 놓쳐서 생긴 오해라고 지적한다. 한편 ‘나치독일’이라는 구조 위에서 유대인 학살을 수행한 아이히만 같은 이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선 인간의 자유의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워털루전투의 승패와 그에 결부된 19세기 유럽사는 전투 전날 쏟아진 ‘비’라는 우연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저자는 구조-의지-우연 가운데 어느 하나만 중시하는 기계적 결정론을 경계한다. 아우슈비츠의 유대인에게 왜 저항이나 탈출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 오늘날 한국의 청년세대에게 왜 더 노력하지 않느냐고 타박하는 것은 그들이 처한 구조를 무시한 데서 나오는 오류다. ‘클레오파트라의 코’에 관한 경구는 역사의 맥락을 무시한 채 우연이 차지하는 역할을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써 이집트 멸망-로마 제국화의 역사를 가십으로 전락시킨 경우다.
구조, 의지, 우연이라는 세 요소 중 어느 하나에 대한 설명이나 고려가 빠진다면 분명히 오류에 빠집니다. 이런 사건에 대한 이해는 당연히 내 인생을 깊게 해줍니다. 내 인생은 끊임없는 사건의 연속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쓸모이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면서도 잘 못하는 것이 또한 사람입니다. 이 세 요소가 모든 사건에 내재해 있다고 알면서도 막상 어떤 사태에 부딪히면 한 요소로 설명하고 그쳐버립니다. 이래서 역사를 좋아하는 것만으로 안 됩니다. 학습이 필요하고, 안목이 필요합니다. (75~76쪽)
사맹(史盲)을 낳는 역사학의 편견들
어떤 ‘관점’은 사물과 사건을 이해하는 편리한 도구이면서도 때때로 편견이 되어 사실을 왜곡하곤 한다. 역사를 보는 관점 역시 마찬가지로 저자는 현대역사학이 그간 많은 성과를 거두긴 했으나 적잖은 편견을 통해 사람들을 사맹으로 만들어왔음을 비판한다. 아마 독자들 가운데서도 이 책을 따라가며 자신의 역사관에 그런 편견이 묻어 있음을 깨닫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근대와 전근대를 나누고 근대를 ‘좋은 것’ ‘달성해야 할 목표점’으로 삼고 거기서 벗어난 것은 폄훼하는 근대주의가 대표적인 예다. 책에 따르면 근대의 빛나는 성취와 별개로 이런 이분법·목적론적 역사관이야말로 우리의 시야를 좁히는 주범이다. 이런 편견은 역사 이슈 전반에 스며 있고, 진영을 가리지도 않는다. 현재를 합리적이라고 전제하고서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의 사실을 해석하는 현재주의 역시 역사학이 곧잘 범하는 시대착오의 오류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실학이 사상적 조류로서 실체나 일관성이 불분명함에도 현재적(근대적) 관점의 비판 대상인 조선 후기 성리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실학이요 실학자로 규정하는 것 역시 현재주의가 만들어낸 대표적 오류로 지적하며, 이런 유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역사에 우열은 없다: ‘작은 역사’의 재발견
이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문제의식은 역사에는 우열이 없다는 것이다. 흔히 ‘큰 역사’(국가사·거대사)만이 역사적이고 ‘작은 역사’(일상을 비롯한 인간의 구체적 경험)는 별 볼 일 없이 여기는 것은 착각이라는 말이다. 6·25전란은 열세 살 소녀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맨발로 피난 갔던 경험에서, 21세기 한국사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최저임금도 안 되는 시급으로 알바를 뛰어야 하는 친구의 하루하루에서 생생히 드러난다. 저자는 이렇듯 수많은 작은 역사, 즉 인간의 구체적 경험에서 드러나지 않는 큰 역사는 실체 없는 유령일 뿐이라고 꼬집는다. 나아가 이런 작은 역사에 주목해야 하는 남다른 이유를 덧붙인다.
역사를 국가사·거대사로만 가르치는 사회에서 정치권력의 역사 개입은 피할 수는 없되 막아내야 하는 횡포다. 저자는 정파적 이해로 점철된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의 낯 뜨거운 지지에도 불구하고 채택률 0.01%의 수모를 겪은 것은 그들이 마음대로 재단한 역사가 유령이며, 동시에 눈에 띄지 않을 뿐 작은 역사들이 생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권력은 아예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며 밀어붙이고 있지만 작은 역사는 여전히 그에 맞서는 가장 확실한 방부제요 댐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역사의 어엿한 주연임에도 엑스트라 취급을 받아온 ‘작은 역사’의 부흥을 위해 저자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역사공부를 시작해보자고 권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른바 ‘임상역사학’은 ‘나의 역사 쓰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역사로 남기는 것이다. 역사공부는 과거를 되새기는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일기·수기·자서전·회고록·구술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의 오늘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하며, 그럼으로써 큰 역사에 가려져 있던 비(非)역사들이 비로소 역사의 영역으로 복권된다는 것이다.
역사공부의 힘
이 책은 이렇게 역사학의 편견을 벗기고 우리가 관심 밖에 있던 역사의 영역을 보여주면서 역사에 새롭게 눈 뜨게끔 한다. 이 책이 전하는 구조-의지-우연을 두루 고려한, 이분법 등 각종 편견에서 자유로운, 그리고 나의 오늘로부터 시작하는 역사공부의 목적은 분명하다. 나의 인생을 풍부하고 지혜롭게 만들어, 난세에는 어려움을 견디는 힘을 주고, 치세에는 평화를 즐기며 유지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요컨대 역사공부는 자기-이해의 출발이며 소통-공감의 첫걸음이다.
사실史實은 늘 구멍이 뚫려 있고, 사람의 눈은 다릅니다. 자료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상황을 합리적으로 추론하여 공감할 수 있는 진실을 찾아나가는 지루하며 재미있고 때로는 숭고한 여정, 그것 이상으로 역사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존재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래서 역사공부는 연대의 삶, 공감의 삶, 배려의 삶을 확장시키는 토대라고 굳게 믿습니다.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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