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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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광복 70년, 지방은 아직도 식민지다!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다. 그런데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지방은 여전히 식민지라고 말한다. 물론 일본이 아닌 서울의 식민지로서다. 전북 전주에 살면서 일찍부터 지방차별 문제를 제기해온 그는 오늘날 “서울-지방간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은 과거 일제 강점기의 동경-경성간 관계와 너무도 비슷해 깜짝 놀랄 정도”라며, 지방은 정치‧경제‧문화‧교육‧언론 등 전 분야에서 서울에 종속된 ‘내부식민지’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식민지 독립투쟁을 촉구한다. 여기서 저자는, 우리가 대충은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막상 들여다보니 너무도 낯선 지방의 현실을 펼쳐 보여준다. 1970년대 중남미 종속이론의 한 갈래인 ‘내부식민지론’의 규정에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현실을!
무엇이 내부식민지 체제를 강화하는가?
자식들에게 “사대문 밖을 떠나지 말라”고 한 정약용의 유언에서 보듯 한반도에서 서울로의 구심력은 과거부터 존재했고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국가는 수도권 집중 현상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식민지’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지금과 같은 ‘초집중화’는 ‘헌법 11조(모든 국민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받지 않음을 규정)‧119조‧122조(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유지와 이의 공간적 과정으로 국토 균형의 형성에 관한 국가의 책무를 규정)에 반하는 파렴치한 위헌 행각’으로 한국 현실을 이보다 더 적합하게 묘사할 단어는 없다고 말한다.
“국토의 12%, 이 좁은 수도권에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몰려 있습니다! 인구 50%, 100대 기업 본사 95%, 전국 20대 대학의 80%, 의료기관 51%, 공공청사 80%, 정부투자기관 89%, 예금 70%.”(19쪽)
모성 사망비는 산모가 출산과 관련해 사망하는 비율로, 분만 인프라 수준을 반영하는 지표다. 강원도 모성 사망비는 2007년만 해도 서울의 3배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으나, 2013년엔 10만 명당 27.3명을 기록해 서울(5.9명)의 4.6배에 달했다. 강원도만 떼어놓고 보면 40년 전인 1970년대 우리나라 전체 모성 사망비와 맞먹는다. 이러니 “후진국만도 못한 강원 산모 사망률”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89쪽)
‘내부식민지’ 체제가 서울 부동산의 임대료만 올리는 게 아니다. 정확한 통계를 잡을 수가 없어서 그렇지, 지방의 부자들은 부동산 투자(투기)를 해도 수익성이 높은 수도권으로 몰린다. “지방에서는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어요. 여윳돈을 은행에 두자니 손해 보는 것 같아 서울이나 신도시의 수익형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는 거죠.” 이들을 탓할 수 있을까? 전북의 경우 종합부동산세 대상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걸 알면, 고개를 끄덕이시겠는가?(33쪽)
지방이 식민지화된 최대 원인은 물론 중앙정부의 서울(수도권)중심 정책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제 ‘서울 탓’과 함께 지방 스스로‘내 탓’도 필요할 때라고 보고 내부식민지 체제를 부추기거나 강화하고 있는 요소들을 꼼꼼히 파헤친다.
-수도권규제철폐
저자는 해방 후 70년간 ‘서울 올인 전략’의 근거가 돼왔고 현재도 수도권규제철폐론자들이 애창하는 ‘낙수효과’ ‘파이 키우기’가 수도권 내의 낙후지역만 봐도 알 수 있듯, 아무런 효과가 없었음을 꼬집는다. 중앙의 유력자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수도권-비수도권 이분법에서 벗어나 국가를 먼저 생각하자”는 말 역시 ‘역지사지가 결여된 사기극’이라는 것이다.
지식경제부 장관 이윤호는 경제 5단체장과 간담회를 갖고 정부의 규제완화 방향을 밝히면서 “수도권은 합리적으로 규제를 풀되, 국가의 지원은 지방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규제를 푸는 건 수도권엔 ‘현금’이다. 일도 매우 간단하다. 규제를 푸는 것만으로 모든 게 완성된다. 반면 국가의 지원을 지방에 집중하겠다는 건 지방엔 ‘어음’이다. 그것도 만기일이 멀리 남은 5년짜리 어음이다. 안전장치도 없다. 법적으로 강제할 수도 없는, 그저 신뢰뿐이다.(74쪽)
한국은 전형적인 “니가 당해라” 사회다. 수도권-지방 문제는 물론 수도권 내 낙후지역의 군사시설에서부터 송전탑 건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로 인해 부당한 불이익을 보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게 아니라, 그런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의 팔자소관이나 운으로 돌리면서 그냥 당하라고 방관하거나 등 떠미는 사회라는 것이다. 전쟁 나면 재수 없는 사람이 당하며 그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전쟁 멘털리티’라고나 할까?(86쪽)
수도권 규제 철폐 찬성론자들이 내놓는 모범답안은 한결같다. ‘국가’다. (‧‧‧) 우리나라 전체가 중국의 자치성 하나보다 작고, 미국 텍사스주의 1/6도 안 되는 국토이기 때문에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구분 짓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국가 경쟁력을 빼앗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왜 한사코 서울에서만 살려고 하는 걸까? 이들이 말하는 ‘국가’는 개발독재 시대의 구호로 쓰이던 ‘국가’와는 어떻게 다른 건가? 국가를 위해 희생해라? 참아라? (88~89쪽)
-지방분권 사기극
사실 ‘서울의 대한민국화’가 진행되는 한편에선 이를 완화하려는 정책도 꾸준히 이어져왔다.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지방의 식민지화가 더욱 가속화된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런 정책의 상당수가 의도와 달리 ‘재주는 지방이 넘고 돈은 서울이 가져가는’ 전형적인 사기극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노무현정부는 지방분권이란 미명하에 빈곤층,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순수 복지사업 67개를 몽땅 지방에 이양했다. 그 대신 지방에는 담배소비세가 중심이 된 ‘분권교부세’를 만들어주었는데, 이게 기막힌 이야기다. 이후 5년간 분권교부세 수입은 연평균 8.7% 증가한 반면, 복지비 지출은 고령화 가속화 등으로 연평균 18%씩이나 늘어났기 때문이다.(48쪽)
KTX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서울-지방 간 교류가 활발해져 지방경제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와 달리 지방민들을 서울로 빨아들이는 ‘KTX 빨대효과’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전국의 지방민들이 ‘단 5분 진찰’을 위해, ‘신상’을 사려고, 강남입시학원을 찾아 당일치기 서울행 KTX에 몸을 싣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5월 27일, 한국은행은 “호남선 KTX 빨대효과는 크지 않다”는 보고서를 냈지만, 크고 작은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의료 분야만 놓고 보더라도 연간 국민건강보험 급여비만 1조 원을 청구하는 거대 병원 5곳이 모두 서울에 있고, 2011년 기준으로 지방환자들의 수도권 병원 진료비만 연간 2조 1100억 원에 이른다는데 말이다. 2014년 들어서도 서울 병원에서의 ‘5분 진료’를 위해 기차를 타는 비수도권 환자의 서울 쏠림 현상은 심화되었다. 수도권에서 진료를 받는 지방 환자는 2004년 180만 명에서 2013년 270만 명으로 50% 늘었으며, 진료비는 2004년 9513억 원에서 2013년 2조4817억 원으로 161%나 증가했다.(25쪽)
-지방자치는 서울의 신탁통치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지방정부는 직원 한 명, 부서 하나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 재정 독립성도 허약해 중앙의 예산 타오는 걸 자치단체장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제1능력으로 쳐주는 형국이다. 저자는 이런 인사와 예산의 종속이 지방정부의 ‘중앙에 줄 대기’ 경향을 키웠고 ‘지방 인재를 일단 서울로 올려보내고 보는’ 문화를 미덕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본다.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선거 구호는 “나 중앙에 줄 있다”는 ‘줄 과시론’이다. 줄이 튼튼한 사람이 예산을 지역으로 많이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유권자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줄’은 아무래도 전직이 화려한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학벌도 좋아야 학연을 이용할 수 있다. 아무리 성실하고 청렴하고 유능한 일꾼이라도 ‘줄’이 약하면 선택받기 어렵다. 창의적 혁신도 대접받지 못한다. 자치단체장의 유능도는 ‘줄’을 이용해 중앙에서 많은 예산을 끌어오는 걸로 결정되기 때문이다.(134쪽)
우리는 지역의 이익과 지역민의 이익이 같을 걸로 생각하지만, 그게 꼭 그렇진 않다는 데 지방의 비극이 있다. 지방대학이 쇠락하거나 죽는 건 지역의 손실이지만, 자식을 서울 명문대에 보내는 건 지역민의 이익이다. 각 가정이 누리는 이익의 합산이 지역의 이익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손실이 되는 ‘구성의 오류’가 여기서도 일어나는 것이다. 심지어 서민층, 아니 빈곤층 학부모마저도 자식을 서울 명문대에 보내는 꿈을 꾸기에 그런 지역발전전략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163~164쪽)
‘지역주의’에서 ‘지방주의’로!
저자는 중앙정부가 ‘서울 올인 전략’을 펴는 동안 지방민들은 내부식민지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인서울 대학을 향한 ‘각개약진’을 택했다고 본다. 이것이 지방정부의 중앙을 향한 ‘줄서기 경쟁’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서울로의 인재 유출이 지방발전전략’이 되는 기막힌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지자체들이 내세운 ‘인재육성정책’이자 ‘지역발전전략’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장기지향적이다. 자기 지역 출신 학생이 서울 명문대에 진학해 서울에서 출세하면 (‧‧‧) 자기 지역에 좀더 많은 예산을 준다든가 기업을 유치하는 데 도움을 줄 거라고 본다. 서울 중앙부처나 대기업에 자주 로비를 하러 가는 각 분야의 지방 엘리트들은 자기 고향 출신을 만났을 때 말이 통하고 도움을 받은 경험을 갖고 있기에, 위와 같은 ‘지역발전전략’은 움직일 수 없는 법칙으로까지 승격된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그건 지역발전전략이 아니라 ‘지역황폐화전략’인데도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168~169쪽)
내부식민지 탈출을 위해 저자는 ‘지역균형발전기금 조성과 수도권규제철폐의 빅딜’ 등 여러 아이디어를 제안하지만 그 핵심은 ‘지역주의에서 지방주의로의 전환’이다. “‘지역주의’는 ‘지역감정’ 비슷하게 쓰는 말이고, ‘지방주의’는 지방이 서울의 식민지에서 탈피해야 할 당위성을 역설하는 개념”(287쪽)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 지역 사람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보는 게 지역주의라면 어디가 됐든 지방이 수도권과 동등하게 맞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게 지방주의일 것이다.
한국은 대통령으로 가는 계단으로 여겨지는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가 “서울은 대한민국보다 중요하다”라거나 “수도권규제는 공산당도 안 하는 정책”이라는 말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다. 지방문제를 바라보는 이런 시각에 이 책이 발상의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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