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풍경(개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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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그 안으로 떠나는 즐거운 산책과 모험
2007년 출간 이후 쇄를 거듭하며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말들의 풍경-고종석의 한국어 산책』이 새롭게 단장돼 나왔다. 이번 개정판에는 여덟 편의 언어학 에세이가 새롭게 더해지고, 성기게 묶어 있던 글의 구성도 바뀌었다. 언어 현상을 다룬 글을 추려 제1부 ‘말들의 풍경’으로 묶고, 텍스트나 저자에 대한 비평을 제2부 ‘말들의 산책’에 모았다. 제3부 ‘말들의 모험’은 저자가 2009년『한국일보』에 연재했던 <고종석의 언어학 카페-말들의 모험>에서 가져온 글들로 언어학을 다루고 있다. 고종석 특유의 정갈하고 생생한 문체로 그려진 이 ‘말들의 풍경’은 독자들에게 한국어의 다채로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언어의 깊고 미묘한 세계를 보여준다.
원래 ‘말들의 풍경’은 문학비평가 김현의 유고평론집 표제였다. 저자가 "내 어쭙잖은 글쓰기의 8할 이상은 김현의 그늘 아래 이뤄져 왔"다고 고백할 때, 이 책의 표제『말들의 풍경』은 김현에 대한 오마주로 읽힌다. 그러나 김현의 유고평론집이 문학언어만을 겨냥한 데 비해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은 문학을 포함한 한국어 일반의 전경(前景)과 이를 둘러싼 말들의 다채로운 배경(背景)까지도 함께 아우른다. 독자들은 여기 모인 59편의 글들이 만들어낸 각기 다른 풍경들의 겹침과 포개짐을 통해 한국어라는 하나의 커다란 풍경이 그려지는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말에 관한 말들-말들의 풍경
제1부 ‘말들의 풍경’에서는 말들에 대한 저자의 언어학적, 또는 정치·사회적 탐색과 전망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표준어와 방언, 입말과 글말, 토론과 연설의 언어, 유언과 헌사, 광고 카피와 신체언어, 이방인들의 한국어와 누리망(인터넷)의 언어 등, 저자의 섬세한 감식안은 한국어와 엮을 수 있는 모든 현상을 꼼꼼하게 살핀다.
표준어가 한 언어 안에서 행사하는 패권주의는 그 언어의 표현 가능성을 제약해 결국에는 앙상하고 밋밋한 ‘국어’만을 남기게 될 것이다. 영어가 지구적 수준에서 실천하는 제국주의를 표준어는 한 언어 내부에서 실천하고 있다. 말하자면 표준어주의는 국민국가 내부의 제국주의다. (표준어의 폭력- 국민국가 내부의 제국주의 中)
누리망에서 펄럭거리는 이 새로운 형태소들이 표준어 형태소와 누리망 바깥에서 힘있게 싸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누리망 언어는 근본적으로 하위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사회방언들은 표준어의 압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누리꾼들에게 자유의 공기를 실어 나르며, 그들끼리의 연대를 강화하며, 누리망 어느 곳에선가 꽤 오랜 시간 꿈지럭거릴 것이다. (누리망의 어떤 풍경- ‘-다’의 압제에 맞서서 中)
말들의 산책 - 한국어와 산책하며 한국어에 취하다
2부 ‘말들의 산책’은 아름다운 한국어를 구사했던 한국어 화자들과 그들이 남긴 텍스트에 대한 비평을 모았다. 평론가 김현과 김현의 라이벌 김윤식, 국어운동가 이오덕, 저널리즘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정운영과 임재경… 선배 문인들에 대한 평가는 날카롭지만 이들을 회고하는 저자의 눈은 정겨움으로 그득하다.
불안은 그 자체로 비범함이 아니다. 먼 곳에 대한 그리움도 그 자체로는 비범함이 아니다. 전혜린의 수필들은 비범함을 열망했던 평범한 여성의 평범한 마음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를테면 ‘문학소녀’의 글이다. 최우등생으로 일관한 그의 학창 시절과 죽음을 선택한 방식의 과격함에 대한 이런 저런 상념이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버무려지며 그의 글을 터무니없이 매혹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딸에 대한 애정과 우애를 끝없이 확인할 때, 어머니의 현실 감각으로 제 허영을 지워나갈 때, 전혜린은 애틋하고 아름답다. 그 때, 그의 마음은 내가 다다를 수 없는 균형과 높이에 이르러 있다. 그러니, 내가 앞에서 늘어놓은 전혜린 험담은 모두 무효다. (먼 곳을 향한 그리움- 전혜린의 수필)
김현의 어떤 글은 정치함에서 김인환만 못해 보이고, 자상함에서 황현산만 못해 보이며, 화사함에서 정과리만 못해 보인다. 생전에 낸 마지막 평론집『분석과 해석』의 서문에서 김현은 청년기부터 그 때까지 자신의 변하지 않은 모습 가운데 하나로 ‘거친 문장에 대한 혐오’를 거론했으나, 그 혐오를 철두철미하게 실천한 것 같지는 않다. 청년 김현의 글에서는, 청년 정과리의 글에선 찾기 어려운 유치함과 허세 같은 것도 읽힌다. 현학은 ‘배운 청년’이 흔히 앓는 병이지만, 청년 김현은 그 병을 좀 심하게 앓았던 듯하다. 물론 김현은 이내 그 병에서 회복되었다.…
서가에 꽂혀 있는 김현 전집 가운데서 아무 거나 뽑아 들어 띄엄띄엄 읽노라면 문득 가슴이 울렁거린다. 거기에 내 글의 원형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서나 그 눈길을 담아내는 문체에서나 내 글은 김현의 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리고 격조와 깊이에서 도저히 김현의 글과 견줄 수 없지만, 그 근원은, 행복해라, 김현의 글이었다. (김현, 또는 마음의 풍경화 中)
말들의 모험 - 오지랖 넓은 언어학 에세이
3부 ‘말들의 모험’에서는 전문담론과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언어학 이론과 언어학사의 번듯한 교직”을 시도한다. 저자는 “나는 언어학자다. 언어와 관련된 것 중 내게 무관한 것은 없다”라는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의 말을 인용해 ‘말들의 모험’이 오지랖 넓은 ‘말에 대한 수다’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소쉬르에서 촘스키까지 언어학 이론의 변천을 엮으며, ‘번역이라는 고역’에 대한 깊은 사색도 곁들인다. 글 안에 담긴 담론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는 않지만, 언어 일반을 다루려는 저자의 시도는 독자들에게 유쾌한 지적 즐거움을 준다.
신문 지면에서 어떤 학문적 담론을 펼치는 것은 부적절한 일일 겁니다. 곧은 자세로 앉아 낱말 하나하나의 뜻을 헤아리며 신문을 읽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말들의 모험’이 언어학에세이라 하더라도, 이 에세이는 언어‘학’의 변죽만 울리게 될 겁니다. 미리부터, 굳이 ‘공부하는 마음가짐’을 지닐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말들의 모험’이 지적 담론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전문 담론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드물겠지만, 교양 담론을 슬며시 넘어서는 일은 잦을 겁니다. ‘말들의 모험’은 되도록 쉬운 말들로 짜이겠지만, 지적 담론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어려움까지 솜씨 좋게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변죽만 울린다 하더라도, ‘말들의 모험’은 언어학 담론에 바짝 붙어있게 될 테니까요. (모험을 시작하며 中)
말들에 대한 관심이자 자기 정체성의 집약
작고한 출판평론가 최성일과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 고종석은, 스스로를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이자 언어학도로 규정한 바 있다. 이 책 『말들의 풍경』 서문에서 그는, 이 세 가지 정체성을 한데 추려 ‘말들에 대한 관심’으로, 더 좁게는 모국어인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요약한다. 이 책에는 언어라는 밑감을 공유하되 제각기 독립적인 지면에서 존재하던 저자의 언어(학) 에세이와 문학평론, 저널리즘 텍스트 비평이 이물감 없이 어우러져 있다. 그렇다면『말들의 풍경』을 고종석이 품어온 말들에 대한 관심의 소산이자 스스로 규정해온 세 정체성의 집약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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