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천국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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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대한민국 가계빚 1000조 원 시대, 그리하여 아이부터 노인까지 전국민이 각자 2000여만 원의 빚을 이고 있는 시대, 온 세상이 빚 천지인 시대다. 그래서일까? 사방에서 대출 권유가 넘쳐난다. 오늘도 케이블 TV에서는 유명 탤런트가 중독성 있는 CM송으로, ‘친구처럼’ ‘간편하고 쉽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준다고 꼬드긴다. 지하철에 가득한 수많은 무가지에도 대출 서비스를 알리는 온갖 화려한 문구들이 넘실댄다. 길거리에 널려 있는 각종 대출 찌라시들, 핸드폰에 넘쳐나는 대출 알림 문자는 또 어떻고……. 한마디로 ‘대출 천국’이다.
그런데 어째 좀 이상하지 않은가. 돈 빌리겠다는 사람보다 돈 빌려주겠다는 곳들이 왜 저리도 더 극성인 걸까? 저 정도 호들갑이면 아주 좋은 조건에 돈을 빌려 썼다는 사람들이 넘쳐나야 정상인데, 그런 소리는 도통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빌린 돈과 관련한 험한 소리들만 난무한다. 도대체 왜 이런 모순이 벌어지는 걸까?
이 모순을 푸는 실마리는, 바로 대부업이 황금알을 낳는 기적의 업종이란 데 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일단 대출만 이뤄지게 하고 나면 엄청난 폭리가 ‘보장된’ 사업! 그러니 대부업자들로선 직장인, 자영업자, 주부, 학생에 이르기까지 ‘고객’을 가릴 이유도 없다. 벌이가 없는 대학생들이 4만 명이나 대부업체를 통해 무려 800억의 돈을 빌리고 있는 현실도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더욱 궁금해진다. 대부업의 그 엄청난 폭리는 과연 어느 정도이고, 그것은 또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말이다. 더 나아가, 그로 인해 빚이 빚을 더 키우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힌 사람들이 정부 추정치만으로도 328만 명에 이른다는데 이 엄혹한 현실은 왜 방치되고 있는지도 말이다.
‘‘다음’보다 급성장한 ‘러시앤캐시’
대부업자들이 과연 얼마나 폭리를 얻고 있는지는 업계의 두 성공신화를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IT 붐을 타고 급성장한 국내 대표적 기업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대부업체의 대표격인 러시앤캐시가 각기 지난 10년간 이뤄낸 성취를 간단히 비교해보면 이렇다. ‘다음’이 자본금 306억 원을 2095억 원으로 키워냈을 때 ‘러시앤캐시’는 133억 원을 5723억 원으로 늘려놨고, ‘다음’의 순이익이 89억 원에서 311억 원으로 커졌을 때 ‘러시앤캐시’의 순이익은 23억 원에서 무려 1194억 원으로 성장했다.
대부업체들이 이렇게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법으로 보장된 이율이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대출업자들은 일반적인 사업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연 수십%의 수익을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다.
한국의 모든 대부업자(사채업자)는 황금빛 꿈을 꾸며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 확신할 수 있다! 무슨 그런 황당한 장담을 하냐고? 결코 그렇지가 않다. 법 규정의 변화에 따라 어쨌거나 합법적으로 연66%, 연49%, 연44% 등의 엄청난 고리대가 보장되어왔고, 따라서 빌려준 돈에 대해 원금과 이자가 어떻게든 회수만 된다면 대부업자의 그런 확신은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본문 13~14쪽)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러시앤캐시나 산와머니와 같은 대형 대부업체는 그나마 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활동을 하지만 대다수 대부업자들은 법의 테두리를 넘어 행동한다. 금융감독원의 2007년도 조사 결과에 의하면 등록 대부업체의 평균 금리는 연181%이고, 무등록 대부업체의 평균 금리는 연217%였다.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돈 갚지 못하면 약 먹고 죽어주기라도 해라”
대부업체들은 빌려준 돈과 이자만 적절히 회수하면 ‘법을 잘 지켜도’ 통상 연40%의 고수익이 보장된다. 일반 기업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10% 남짓인 데 비하면 정말 엄청난 수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공격적으로 ‘약탈적 대출’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한가지 전제가 붙는다. 즉, 빌려준 돈과 이자를 반드시 회수해야만 가능한다는 전제 말이다.
그러다보니 어떤 방법을 써서든지 돈을 받아내려 하는 일이 벌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를 위해 사망보험금을 노린 살해 미수 사건이 생기는가 하면, “돈을 갚지 못하면 약을 먹고 죽어라”고 협박당한 사람들이 자살하기도 하고, “딸자식 아들자식 밤길 조심하라”거나 “몸이라도 팔아서 갚으라”는 험악한 협박이 난무하며, 일부 대부업자는 폭행이나 감금, 인신매매 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자행되기도 한다. 우리가 언론에서 종종 볼 수 있듯, 가혹한 빚독촉 사례의 이면에 자리한 진실은 바로 그와 같은 ‘회수’라는 단서가 붙은 ‘고수익’이 자리하고 있다.
그 결과, 대부업은 엄청난 고수익 보장 사업이 되고, 따라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황금알을 낳는 시장에 뛰어들게 되자 카드대출, 통장대출, 자동차대출, 핸드폰대출 등 온갖 편법과 탈법이 난무하게 되었다. 이렇게 음성적 시장이 팽창하고 업체들이 난립할수록 이에 비례해서 관리감독은 더 어려워진다. 게다가 정부 당국은 인력과 예산을 핑계로 관리감독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고리대금공화국’이 탄생하게 된 원인
그렇다면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런 ‘고리대금공화국’이 된 것일까? 그 시작은, 1997년 금융위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우리나라는 IMF의 고금리 요구에 따라 1997년 12월 22일 이자제한법상의 최고이자율을 연25%에서 연40%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곧이어 1998년 1월 13일 이자제한법 자체를 폐지했다. 이자제한법을 폐지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IMF 지원의 조건 이행”이라며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도모하고자 최고이자율을 정하고 있는 현행 규제를 폐지하려는 것”이라고 고상한 명분을 덧붙였다.
이렇게 이자제한법이 폐지되자 불을 보듯 뻔하게 사채시장의 금리가 폭등했다. 연24%, 연36%가 적용되던 관행이 없어지고 연120%가 넘는 고리대가 나타났다. 또 생활정보지 등에 대부업 광고가 공공연히 등장했고, 1999년 4월부터는 일본 대부업체들이 속속 진출하기 시작했다. 일본 대부업체들은 일본에서의 경험을 살려 소비자를 유혹하는 광고 기법을 보여주었고, 대부업자들을 조직화하여 입법 로비를 했으며, 현재 일상화되다시피 한 합법·편법·불법을 망라한 빚독촉 기법을 선보였다. 이들이 막대한 이윤을 내자 덩달아 인·허가 받은 금융기관(저축은행 등)조차 연40~50%대로 고리대금 영업을 시작했다.
사태가 심각해져 시민사회에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으나 정부에서는 ‘대부업 양성화론’(사채업자 합법화론)을 내세우며 이자제한법 폐지에 뒤이어 대부업법을 제정했다. 고리대금공화국이 탄생하게 된 첫째 원인이 이자제한법 폐지라면, 둘째 원인은 대부업법의 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업법이 제정됨으로써 인·허가를 받지 않고 단순히 등록만 해도 합법적으로 대부업을 할 수 있게 됐으며 법령 최고이자율로는 역사상 가장 높은 금리인 연66%가 역시 합법적으로 보장되는 길이 열렸다.
대부업법이 제정되고 나서 너도 나도 대부업에 뛰어들었다. 이자제한법 폐지 이전에 최대 3000개였던 사채업체 수가 10배 이상 폭증하여 등록·무등록 합쳐 약 4~5만 개가 난립했다. 게다가 이들은 연66%의 법령 최고이율도 모자랐는지 이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적용했다. 대부업법 시행 후 사채시장 평균금리는 2003~2004년 연223%(등록업체 연164%, 무등록업체 연282%)였다. 사채시장 규모도 이자제한법 폐지 전 4조 원 정도에서 18조 원(한국금융연구원 2006년 자료. 금융감독원이나 저자의 추정치는 30조 원)으로 크게 팽창했다. 사채업이 팽창·난립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사채 피해자는 점점 늘어나, 2006년 정부 추정치로 약 328만 명이 사채 고리대금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다.
이렇듯 사채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한 결과는 그야말로 참혹하다. 고율의 이자 부담과 가혹한 채무 독촉은 기본이고, 가계 파산, 온갖 형태의 사기와 속임수, 협박과 폭력, 가정 파괴와 인간관계의 파탄, 실직과 노숙, 야반도주, 각종 형태의 이행각서 강요, 소송의 폭증, 성매매 강요와 인신 구속, 심지어 생명보험 가입과 자살 강요, 살인 및 살인 교사, 기타 고리 사채와 연관된 수많은 범죄들의 일상화! 반면 사채업자들에게는 극단적 화폐 물신(money fetish)·황금 물신(gold fetish)을 너무나 손쉽게 충족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본문 80쪽)
‘고리대금공화국에서 벗어날 해법은 무엇인가?
지독한 고리대의 피해가 계속되고 문제제기가 잇따르면서 2011년 6월 27일부터 법령 최고이자율이 연44%에서 연39%로 하향 조정되었고, 올 10월에 연30% 범위 내에서 이자제한법이 시행될 예정(단, 등록 대부업자와 금융기관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이라지만 현재도 여전히 사채·대부업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점점 악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고리대금공화국에서 벗어날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크게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① 적정한 수준에서 법령 최고이자율을 정해야 한다.
그런데 법령 최고이자율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이자율의 최고 한도가 지나치게 낮아서도 안 되고, 과도하게 높아서도 안 된다. 법령 최고이자율은 시장 평균 이자율보다 적절하게 높을 때 금융거래를 교란하지 않으면서 고리대를 억제할 수 있다. 외국의 입법례를 보면, 독일의 경우 시장 평균 이자율의 2배를 넘는 금리 계약을 무효화하고 형법으로 처벌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경우는 시장 평균 이자율의 1.3배를 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둘째,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 우선 대부업자의 팽창·난립을 차단하여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서류 조건만 충족되면 누구나 쉽게 대부업자로 등록할 수 있는 대부업법이 인·허가 제도로 변경되어야 한다.
셋째, 법령 최고이자율을 위반한 자를 적절히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소액의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징역도 살고 벌금도 내도록 판결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따라서 처벌 형량을 높이고, “징역형과 벌금형을 병과한다”로 법률을 개정하거나 법률에 병과할 수 있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해당되는 사유로 위반할 시에 반드시 징역도 살고 벌금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초과 이자가 생겼을 경우 이를 되돌려주게 하는 등 채무자를 적절히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채무자가 법령 최고이자율을 넘는 부당한 이자를 돌려받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부당한 이자를 돌려받는 일이 간편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하고, 등록 대부업자가 보증보험에 가입하거나 보증금을 예치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조건 아래, 우리의 시장 평균 이자율로 볼 수 있는 예금은행 가중평균 대출 금리가 지난 10년간 대략 연5~10%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도 외국의 입법례처럼 연10% 중후반에서 법령 최고 이자율을 정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리란 게 저자의 주장이다. 물론 현재 높은 이자율 혜택을 보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이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선 이자제한법 폐지 이전 수준인 연25% 이자율을 복구하고,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연10% 중후반대로 이자율을 낮추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② 부당한 빚 독촉을 조장하는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
현재 부당한 빚 독촉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공정채권추심법이 있다지만 이 법률은 독소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반복적으로”라는 문구가 그것인데, 예전 법률과 달리 ‘반복적’이지 않은 한, 집이나 직장으로 한 번쯤 찾아가서 빚독촉을 하는 행위가 불법이 아니게 되고 처벌할 수도 없게 되며, 가족이나 지인에게 한 번쯤 대신해서 갚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처벌 대상이 아니게 된다. 결국 “반복적으로”라는 문구로 인해 공정채권추심법이 예전 법률에서는 명백히 불법이자 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들을 합법화시켰고, 처벌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또 대부업법에서 추심업을 허용한 것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채권추심 행위는 오직 채권자나 ‘허가 받은 신용정보업자’만 할 수 있은 일이었지만 대부업이 인·허가 제도에서 단순 등록제로 바뀌면서 이제는 “누구나 쉽게” 다른 사람의 채권을 양도받아 이를 받아내는 채권추심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돈을 빌린 적도, 만난 적도 없는 엉뚱한 사람에게 돈 갚으라는 전화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이에 대한 법률 재정비가 시급하다.
③ 고리대를 대신할 여러 유형의 대체 공급 수단을 발전시켜야 한다.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한 사회보장을 확대하고 국가가 어려운 이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무이자 또는 낮은 이자로 빌려주는 공적 금융을 발달시키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대안이다. 또 사회연대은행이나 신나는 조합과 같은 대안은행도 고리대금을 대체하는 시장적 차원에서의 대안이다. 하지만 이런 대안은행이 현재의 저축은행이나 캐피탈처럼 고리대금 기관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금융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당부하고 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급전 수요를 발생시키는 사회적 환경의 문제를 별개로 하면, 남는 과제는 하나다. 법·제도의 담당 주체, 즉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부와 국회가 문제 해결을 위해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신탁에 의해 오직 오이디푸스만 풀 수 있게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황금알의 비밀을 구체적으로 풀 수 있는 자도 정부와 국회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의 태도 변화, 또는 정부와 국회가 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태도 변화를 강제할 여론의 형성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본문 214~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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