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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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흔히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말한다. 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268년에 불과하다는 연구도 있을 만큼, 우리 인간은 전쟁을 한시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마치 ‘전쟁 유전자’가 있는 것만 같다. 사회학은 한동안 인간의 본성은 본래 평화적이라고 가정해왔으며, 전쟁의 원인을 환경적인 것에서만 찾았다. 그에 따르면 호전적인 문화가 사람들을 더 호전적이게 만들고 따라서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이은 과학적 발견으로 이는 오류임이 드러났고, 인간은 누구나 내부에 상대를 파괴하려는 본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가 인간 본성에 대한 그릇된 견해에 기반해 전쟁과 테러를 막으려 한다면 우리의 희망은 실현되기 힘들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본성을 이해하고 행동에 나설 때만 우리는 본성을 극복하고 최상의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전쟁 유전자』는 전쟁과 인간의 폭력 본성의 진화를 설명하면서 더 나은 세계를 위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전쟁과 테러가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그러한 목적에 다가서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전쟁을 구성하는 기본적 행동 요소가 인간 본성에 실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앞서 제시한 증거를 보면, 징병 및 신병 훈련의 역사에서 보듯 젊은 남성이라면 누구나 전투원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정한 환경에 처한다면, 남성은 대부분 테러 분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선과 악을 나누는 경계는 모든 인간의 심장을 가로지른다”는 솔제니친의 성찰은 세비야 선언의 그 어느 문구보다도 인간의 본성을 훨씬 더 제대로 포착해내고 있다. 습격과 전쟁은 비정상적인 일탈 행위가 아니다. 뿌리 깊은 행동 기질이 필연적으로 발현된 것일 뿐이다. 전쟁의 토대를 이루는 다양한 충동은 보편적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충동이 반드시 보편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책 중에서, 447쪽
싸우고, 죽이고, 강간하는 남성의 본능을 멈춰라
이 책의 분석과 설명은 사실 인간 전체보다는 남성의 폭력성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뭉쳐서 상대를 잔혹하게 공격하려고 하는 기질은 거의 젊은 남성에게서만 나타난다. 여성들 역시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긴 하지만 열정적으로 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거의가 남성이며 여성은 남성보다 덜 공격적이다. 1990년대 텍사스 대학 연구팀이 미국, 러시아, 핀란드, 에스토니아, 루마니아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양국 간 차이를 조정하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 혹은 “사람은 자신의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 상대를 죽일 권리가 있다”와 같은 문장에 여학생들은 일관되게 남학생보다 낮은 비율로 동의했다고 한다.
저자들은 상대에 대한 집단공격이 남성들,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기에 이러한 양성 간의 차이가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받아들이기 불편할지 모를 이야기겠지만, 남성의 입장에서는 상대 집단의 남성을 죽이고 여성을 강간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기회가 늘어나고 이런 남성의 유전자는 유전자 풀에서 늘어난다. 반대로 패배자의 유전자는 사라진다. 반면 여성은 집단공격을 통해 상대를 제거한다 해서 더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칭기즈칸의 사례는 이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2003년 각국의 유전학자로 구성된 한 연구팀이 중앙아시아인을 대상으로 DNA 분석을 실시했는데, 놀랍게도 중앙아시아 남성의 8퍼센트가 사실상 동일한 Y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Y 염색체는 부계로만 전해지므로 이는 이들이 모두 사실상 동일한 한 명의 후손임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이 한 명의 남성이 800년 전 몽골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수많은 나라를 정복한 칭기즈칸이 그 유력한 후보라고 추정했다. 현재 칭기즈칸의 후손은 전 세계적으로 16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남성이 전쟁을 통해 얼마나 대단한 진화적 이익을 거둘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다.
우리의 진화 역사에서 전쟁을 통해 가장 이득을 본 것은 젊은 남성들이었다. 남성 집단의 입장에서는 상대 부족을 죽이고 여성을 약탈하면, 더 많은 자원과 함께 성교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더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고 이는 곧 진화에서의 승리로 이어진다. 그렇게 해서 인간의 호전적 성향은 점차 강화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피임약은 칼보다 강하다. 전쟁을 막는 여성의 힘
저자들은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인구 규모, 특히 젊은 남성들의 인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젊은 남성들은 일반적으로 보다 과격하고, 무모하며, 도전적이고, 변혁적이다. 저자들이 말하듯, “혁명가, 천재적인 컴퓨터 프로그래머, 최고의 운동선수, 가장 용맹한 군인, 가장 용감한 등산가, 가장 창의적인 음악가도 젊은 남성들이지만, 가장 악랄한 갱단의 일원과 거의 모든 자살 테러 분자 역시 젊은 남성들”이다. 인구통계학상으로 봤을 때는 젊은 남성 비율이 높은 나라가 상대적으로 더 불안정하다고 한다. 물론 인구만이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며, 통치 체제, 경제, 인종 갈등 등 여러 요소가 사회의 안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모든 흡연자가 암으로 사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흡연자 중 다수가 암으로 사망하듯, 젊은 층 비율이 높은 국가라고 해서 무조건 전쟁을 일으키거나 테러 분자를 양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저자들의 견해이며, 이를 보여주는 다양한 역사와 현실 사례를 이 책에서 소개한다. 실제로 오늘날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미래의 가능성이 봉쇄된 제3세계의 젊은이들은 테러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안전과 평화를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가족계획을 통해 인구 증가를 억제하고, 정치 사회적 권력을 여성들에게 더 많이 부여하는 것이다. 인구 구조의 안정은 사회의 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며, 여성이 더 많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나라는 분쟁 상황에서 덜 군사적인 방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가장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대외 정책을 추구하는 나라는 인구 구조가 안정적이고 여성의 권한이 강한 경향이 있으며, 그 반대도 일정 부분 사실이다.
저자들이 인구 문제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가 실제로 조절 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제와 다르게 인구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변화와 적은 노력만으로도 변화할 수 있다. 올바르고 정확한 피임을 교육하고 안전한 낙태를 보장하는 것만으로도 인구 문제는 해결 가능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아이를 낳을지 말지 결정하는 생식적 자율권을 여성에게 주는 것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보다 그 나라의 가족계획과 제도 변화를 돕는 것이 테러를 막는 데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피임약은 칼보다 강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여성의 자율권을 확립하고 가족계획의 선택권을 부여하려는 노력만으로 세상이 저절로 평화로워질 것이라 말한다면 그것은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좀 더 평등해지고 자녀 출산을 조절할 권한을 지니게 되지 않는 한, 분쟁과 테러의 다른 많은 요인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책 중에서, 430쪽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하여
작년 11월 연평도가 포격을 받아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을 때 사람들은 크나큰 충격에 휩싸였다. 첫째로 불안과 공포가 부풀었으며, 그 후 즉각 반격의 의지가 샘솟았다. 평소에는 더없이 얌전하고 부드럽던 사람들도 피가 끓는 감정을 느끼며 분노했고, 보복을 원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단 한 가지 사례만이 아니다. 천안함 침몰 때도 사람들은 ‘적’을 찾아 보복하려는 강한 감정을 느꼈으며, 대표적으로 9․11 테러 사건은 대다수의 미국 국민들을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찬성하게 만들고, 많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이끌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공격받았다고 느낄 때 한결같이 적에 대한 강렬한 증오와 함께 복수하려는 심정을 품게 되고, 그런 감정은 쉽게 전쟁이나 테러로 이어진다. 씨족 집단 간에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며 진화해온 우리 인간들은 외부의 공격에 과도하게 반응하고 적으로 인식한 상대에게는 극단적으로 잔혹해진다. 그럴 때 우리는 모든 이성적 판단을 상실하고 증오의 감정에 몸을 맡긴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1500만 명이 죽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5000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그 이후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수천만 명이 사망했으며,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석기 시대식’ 감정에 사로잡힌 우리들은 더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문명의 해결책을 택하기보다 모두에게 엄청난 손해와 비극을 안겨줄 폭력적 방식을 택하곤 한다. 20세기의 끔찍한 전쟁을 겪고 난 21세기에도 ‘석기 시대식 행동’은 멈출 줄을 모르고 있다. 핵무기와 생물학적 무기 등 발달한 대량살상병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어느 때보다 인간의 폭력 본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먼 미래에 아마도 아프리카 지역 삼림 두세 곳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침팬지가 멸종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암컷들은 계속 자식들을 키울 것이고, 수컷들은 지위를 두고 경쟁하며 이따금씩 출격해 이웃을 죽일 것이다. 그들은 우리 후손들에게, 그 마지막 순간에 석기 시대 행동에 대한 이해와 억제가 없었더라면, 바로 그 똑같은 충동으로 인해 인류가 얼마나 자멸할 뻔했는지 경각심을 일깨우는 놀라운 메시지를 전해줄 것이다. -496쪽
저자소개
지은이 토머스 헤이든Thomas Hayden: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주로 과학, 의학, 문화를 주제로 글을 쓴다. 『뉴스위크Newsweek』와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 전속 작가였으며,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네이처Nature』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옮긴이 박경선: 서울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번역 전공)를 졸업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슬픔 뒤에 오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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