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읽기의 혁명 2 - 경제를 읽어야 정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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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편집을 읽어야 기사가 보인다.” 1997년에 초판을 발행한 『신문 읽기의 혁명』 첫째권의 주장을 간추린 한 마디다. 풀어쓰자면 신문지면이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입체’이며, 그리하여 독자들은 신문을 구성하는 삼자(신문사, 신문, 독자)의 관계를 정확히 분별할 줄 아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출간 이래 10년이 넘도록 이 책이 독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았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입체적 신문 읽기가 당대 언론개혁의 국면에서 독자들의 시야를 넓히는 데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권의 출간 이후 10여 년간 한국 사회와 언론은 참 많이 바뀌었다. 10여 년간의 언론의 역사를 키워드로만 꼽아보아도, 안티조선 ․ 조중동 ․ 언론개혁운동 ․ 무가지 신문 ․ 인터넷신문 ․ 블로거 ․ 미디어법 등 굵직한 말들이 이어진다. 이제 그 변화상을 차분히 해설해줄 책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이 책은 바로 그에 대한 손석춘의 답변이다.
경제면 넘어 경제 읽기
우리 사회의 지난 10여 년을 해설해줄 키워드가 ‘IMF’‘경제’였으니, 저자가 고른 신문 읽기의 첫 번째 키워드가 ‘경제’인 것은 또한 자연스럽다. 물론 독자들은 기존의 신문 관련 서적들을 통해 경제기사를 분석하는 방식을 배워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경제기사를 정확히 읽는 법을 당부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신문지면에서 경제기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되짚어보며, 이를 통해 현재 다수의 독자들이 ‘왜’ 정치-사회면을 나누어보게 되었는지, 경제면 아래 숨은 저류인 광고면의 진가를 ‘왜’ 또렷하게 인식하지 못했는지 등을 풍부한 사례를 들어 해설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경제기사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주체인 독자 즉 ‘민중’이 스스로 경제면과 정치면을 이어서 읽는 법과 광고지면의 속뜻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정파적 신문 읽기를 뛰어넘기 위한 몇 가지 방안
당신은 한국의 신문을 단순히 여당지나 야당지로 편가르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책 곳곳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정파적 신문 읽기 수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 저자는 신문을 그 품격 자체만으로 구분 지을 것을 당부하며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바로 ‘진실’‘공정’‘사랑’이다.
다소 추상적으로 비칠 수 있는 이 기준들을 해설하기 위해 저자는 구한말 『독립신문』에서부터 5․18 당시 『조선일보』 등의 왜곡 사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 당시 주요 언론의 표제,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주요 언론의 대응 등 구체적 사례를 통해 이를 분석한다. 저자는 이 사례들을 다루며, 한국의 주요 독과점신문들이 겉으로는 공정(公正)을 외치며 “사회 소수계층의 의견을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옹호해주어야 한다”(관훈클럽)고 주장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위해 진실을 왜곡해왔음을 밝혀낸다.
한국의 주요 독과점신문들이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윤추구에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은 이 책의 셋째 마당 ‘신문 깊이 읽기의 세 지층’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저자는 한국의 몇몇 신문이 사르코지의 당선에 즈음하여 그를 다룬 기사들을 검토하며, 특히 사르코지의 측근인 프랑스 미디어산업의 총수와의 관계 등이 교묘히 감추어버린 단면을 들추어내 보인다. 다시 말해 언론사 자신이 방송을 겸영하려다보니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신문-방송 겸영’과 관련한 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인 장면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신문을 비판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깊이 읽기’가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주권시대의 신문 읽기’란?
언론이 이렇게 자신의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언론사들이 오랫동안 ‘의제 설정권’을 쥐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네티즌들이 직접 기사를 작성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전환기의 기운을 느꼈다고 고백하며 그들의 행동에 ‘인터넷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근래 주요 언론들이 ‘인터넷 집단지성’을 가리켜 “오해와 착시가 만든 허구”(중앙일보)라며 인터넷 문화의 저속함을 지적하는 태도와는 사뭇 다른 분석이다. 그들의 타박은 오히려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진보성의 배후에서 각 신문들이 의제를 독점하려는 전근대성’을 드러내는 단면 아닐까. 저자는 이에 대해 네티즌들이 서로를 진보와 보수로 나누고 정파적 신문 읽기에 빠지는 흠이 보이긴 하지만, 미네르바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실천적 신문 읽기의 모범 사례는 무궁무진하다고 이를 반박한다.
또한 2008년 촛불시위 과정에서 태어난 ‘진실을 알리는 시민’(진알시) 등의 언론개혁 모임도 중요하게 언급한다. 시민들의 이러한 자발적 무료배포 운동에 대해 저자는 “자본 부족이 빚은 판매망과 홍보력의 한계로 독자에게 더 다가가지 못하는 구조적 요인을 시민의 참여로 넘어서려는 노력”(이 책, 239쪽) 이라고 평가한다. 이처럼 신문지면의 주권을 찾으려는 노력은 네티즌들의 자발적 글쓰기와 광고주 불매운동 등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주장하는, 주권시대의 신문 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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