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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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현대사회가 과거와 다른 점 하나는 바로 일상생활의 분쟁 대부분을 ‘법대로’ 푼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당사자들이 풀지 못하고 법의 판결에 의지해 해소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 법치주의가 제대로 가동되는가에 대한 논란은 항상 끊이지 않는다. 황희 정승이 “아이의 몸을 둘로 나누라”고 했던 판결이나 <베니스의 상인>에서 “심장을 도려내되 피 한 방울도 흘리지 말라”고 했던 판결과 같은 탁월하고 명쾌한 판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법치주의’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는 의외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기존의 법 교양서들도 단지 법률가들의 에세이를 모으거나 아니면 법률 상식을 알기 쉽게 풀어 쓴 정도였다. 이 책 <법을 보는 법 ― 법치주의의 겉과 속>은 독자들이 법 일반에 대해 궁금해 할 만한 질문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법규범이 현실에 어떤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영화, 소설, 철학서의 여러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가며 풀어낸다. 더불어 이 책은 정작 법으로 다스려져야 할 사람들이 법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현실의 모순을 독자 스스로 판별할 수 있도록 돕는, 한층 심화된 지식을 전달해준다.
법은 누가 만들고, 누가 판단하는가
근대 초기에 만들어진 대다수의 법 조항들이 ‘자연적’ ‘타고난’ ‘소멸되지 않는’ 권리라는 표현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당시 대다수의 시민들 즉 농노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정작 이 ‘타고난’ 권리의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실질적인 힘을 얻은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바로 그 법을 만들어낸 당대 부르주아들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법이 모두에게 공평무사하게 베풀어진 이상적 권리로 선언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중세에서부터 자본주의의 초기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이상적인 권리가 구체적 현실에 어떻게 맞물려 현재에까지 이르렀는가를 차근차근 들려준다. 존 로크, 토머스 홉스, 칼 마르크스 등의 입을 빌린 역사적 해석은 법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더욱 용이하게 해줄 것이다.
이제 ‘법은 누가 판단하는가’라는 문제로 넘어가보자. “수학 문제를 논하다 ‘주먹다짐 일보 직전’까지 갔다는 얘기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법률논쟁을 하다 ‘주먹다짐 일보 직전’까지 갔다는 말은 누구나(?) 쉽게 공감이 될 것이다.”(이 책, 136쪽) 왜일까? 바로 법에 관한 해석이 시대별, 나라별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재 법을 판결하는 재판관들의 판결은 그 자체가 완전한 판결이 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그 재판관들이 좀더 민주적으로, 좀더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는 데에 일반인들이 법적 논란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기를 주문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법적인 논란거리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광우병 쇠고기를 예로 들어 누군가 ‘내 맘대로 쇠고기를 먹고 내가 죽겠다’고 하는 태도는 왜 잘못되었는지, 사형 제도를 예로 들어 그 제도의 목적이 피해자의 복수심과 가해자의 경각심 모두를 해소하지 못하는 모순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왜 무효인 계약이 있는지, 나쁜 죄인을 변호하는 변호사를 어떻게 봐야하는지, 전쟁을 할 때 왜 서로 법을 지키는지 등 다양한 법적 논란에 대한 체계적인 해석은 독자들이 스스로 관점을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법의 정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재판관들의 판결이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사실은 다른 말로 그들이 한 사건을 판결할 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배제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이 책에서는 법관들의 판결이 그들의 성향에 따라 크게 달라진 몇 가지 사례를 거론하며 독자들이 법의 정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두 가지 사례를 보자. 첫 번째는 2008년 판사 박재영이 일상적인 업무 절차에 따라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한 후 여론의 질타를 받고 사임했던 이른바 ‘야간집회 금지 위헌성’ 논란이다. 그리고 그 사건과 관련하여 서울중앙지법 법원장 신영철이 촛불 시위 가담자들에 대한 선고 유예를 여러 판사들에게 이메일로 지시한 사례가 있다. 이 두 사건을 비교해보며 우리는 법관들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말이 얼마나 현실적이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
‘법의 정치’에 대처하기 위한 자세는 무엇인가. 저자 김욱은 일반인들이 법을 볼 때에 날카로운 현실 인식 또한 함께 지닐 것을 주문하며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속으로는 법적 판단을 지배하기 위해 온갖 정치를 다하면서도 겉으로는 재판이 마치 판사들의 ‘성향’과 무관하게 진공상태에서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순결한 메커니즘인 것처럼 보이려는 언설에 무기력하게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이 책, 152쪽)
무미건조한 법전에 마음을 적셔주는 빗물이 떨어지도록
법을 다룬 책들은 자칫 어려운 경구 해석에 매달려 독자들이 흥미를 잃기 쉽지만 이 책은 다양한 소재를 소개하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영화 <터미널> <콰이강의 다리> <데드 맨 워킹> <마틴 기어의 귀향> <쉰들러 리스트> <12인의 성난 사람들> <갱스 오브 뉴욕> <투 캅스 2> <솔라리스> 에서부터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우리 역사의‘만적의 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은 그 이야기에 ‘숨어있는 법률 찾기’의 재미에 빠지게 될 것이다.
또한 ‘일본의 독도 망언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법리적 이유’ ‘국회의원이 지역 주민의 의사에 반할 경우’ ‘헌법재판소가 생기기 전에 이뤄진 지극히 이례적인 두 건의 위헌 판결의 사연’ ‘판결문을 입수하지 못해 재판을 열지 못한 이유’ ‘2002년 미선이․효순이 사건에서의 배심원 판결’ 등의 에피소드는 법과 현실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적절한 예로 다가올 것이다.
법원의 판결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 현실에 하나하나 대입해보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잔디를 밟지 말라’는 표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다니자 그 길을 인도로 만들어버린 예에서 드러나듯, 종종 현실의 위법(違法)이 오히려 법 개정의 근거가 된다. 결국 ‘법을 보는 법’이란 다름 아니라 법전의 추상적 글자에 우리가 사는 현실의 감각을 더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맺음말의 마지막 단락은 음미해볼 만하다.
무미건조한 법전에 마음을 적셔주는 빗물이 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모든 법과학자, 법조인 그리고 법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가 각자 판단해야 할 문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법은 ‘법을 보는 눈’만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법을 보는 눈’은 ‘법 밖을 보는 눈’에 의해서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법을 보는 법’이다. (264~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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