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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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 학살을 가능케 한 ‘무체계의 체계’를 밝혀내다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1․2(원제: The Destruction of the European Jews)』는 500만에 이르는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를 엄청난 양의 기록사료들을 통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중심으로 추적해낸 연구 결과물이다. 학살은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계기로부터 촉발된 것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집단이 축적해온 결과였다는 것이 저자 라울 힐베르크의 주된 논지였다. 그는 정치학과 학부생 시절, 저명한 역사학자 한스 로젠베르크의 강의에서 ‘관료제’와 관료제를 구성하는 개개인 관리들의 역동하는 힘이 서구 민족국가 형성에 미친 영향을 배웠고 이를 몇 해 뒤에 자신의 연구에 반영하게 된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해 ‘관료제’라는 주제에 천착했던 그는, 나치즘 지배구조에 접목하여 연구를 지속했고 결국 유대인 대학살이 “독자적으로 움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상호 조율되는 정부, 군대, 당, 기업의 관료제적 복합체가 저질렀다”는 (본문 11쪽) 통찰을 도출해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가 이스라엘 첩보부 모사드의 독일 전범 체포를 주목하고 이에 열광했던 것이나, 당대 역사학계의 지배적인 관점이 ‘나치 지도부의 의도에서 출발한 학살’ 혹은 ‘유럽 각국 내 나치 권력들의 무한경쟁에서 비롯된 학살’에 머물렀던 것에 비춰보면, 힐베르크의 연구는 그 주제 면에서 지나치게 선구적이었고 양적으로는 무모할 정도로 방대했다. 단적인 예로 독일의 저명한 역사가 마르틴 브로샤트는 히틀러 국가가 너무도 무정부적이었기에 그 지배 체제를 도표로 그려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작업에 착수한 힐베르크는 120여 개의 도표를 직접 그려냈고, 나치의 체계 없음이 바로 “조직화된 카오스”라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단순히 정부 조직을 비롯한 관료제와 연관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한 국가 단위를 넘어서 인류의 일상사 전반의 경험과 사건과 맥락을 함께 한다는 화두를 끌어낸 것이다. 500만의 목숨을 앗아간 대학살이 불과 종전 3년 전인 1941년에서야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이라는 명제로 제기되었음에도 진정 순식간에 집행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저자 힐베르크 스스로 50년간 이 주제에 매달려 얻어낸 지극히 허무한 결론이었다. 그는 50년간 이 허무한 죽음을 해명하며 그 속에 내재한 구조를 ‘파괴기계’ ‘파괴과정’의 개념으로 구체화해냈고 이를 통해 나치 지배 체제를 조감하고 도표화해낸, 당대의 유일한 학자였던 것이다.
파괴기계의 부품은 일상의 시민들이었고, 그들이 바로 자신의 ‘이웃’을 죽였다
루터파 목사 한 명이 목회 활동을 하다가 중앙부처 교회부로 전직되더니, 이어서 공안을 담당하던 제국보안청의 교회 담당관으로 가고, 곧이어 어느 수용소의 소장으로 전근되더니, 결국 러시아 전선에서 학살특공대 부대장으로 파견되어 무수한 유대인을 효율적으로 죽인 예에서 드러나듯, “파괴기계는 독일 인구 전체의 단면도였다”는 것이다. ― 「역자 서문」에서
파괴기계는, 나치 제도 하의 모든 구조를 총괄한다. 힐베르크는 파괴기계가 “독일의 모든 전문직, 모든 직종, 모든 계층”을 포괄했음을 강조했다. 아니, 한 개인의 부서 발령이 어떻게 홀로코스트라는 참화로 이어질 수 있단 말인가. 이 질문에 답변하기에 앞서 저자는 중세 유럽의 유대인 탄압에서부터 나치 집권 이전까지의 역사를 매우 세세하게 조명한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사상적 배경이 나치 집권 당시의 이데올로기를 구성했다는 사실을 도표로 제시하며 유럽 전반, 특히 독일에서의 반유대적 행동이 우발적이 아닌, 매우 구조적인 결과였음을 제시한다.
파괴과정, 즉 ‘정의→약탈→집중’의 3단계에서 파괴기계의 각 부품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결국 ‘학살’이라는 대단원의 막이 내리며 종결된다. 여기서 근대의 시민 개개인은 어떻게 파괴기계의 부품으로서 작동했는가. 독일의 일개 공무원들은 유대인들이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가를 정의(定義)하고 그들의 직업을 제한하고 게토로 집중시키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또한 당시 추축국 유럽의 거의 모든 기업이 유대인들에게서 기업과 점포와 재산을 빼앗았다. 유대인 자신들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유대인 공동체를 살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공·사 양면에서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했다. 결국 유대인 스스로 “맹수가 철창을 부수고 튀어나와 우리 모두를 갈기갈기 찢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 입에 형제와 자매의 살을 채워”(본문 674쪽) 넣어버렸다. 힐베르크 자신이 유대인 출신이었음에도 유대인의 자성(自省)을 암시한 이런 논조는, 이후 그가 평생 시온주의 역사학자들에게서 힐난을 받았던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그 많던 유대인의 이웃들은 다 어디에 있었는가. 힐베르크는 거의 모든 유럽인들에게서 나타난 ‘자아 몰두’가 희생자들의 도움을 막았다고 단언한다. “파블로 피카소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고, 장 폴 사르트르는 극본을 썼다.”(본문 1457쪽) 이렇게 스스로가 유대인과 같은 운명을 공유하지 않는 것에 안도했던 당대의 유럽인들 또한 파괴기계 속에서 하나의 온전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홀로코스트, 서구의 사회이론과 정치이론의 시험지
처형하다, 집행하다, 도려내다, 근절하다, 근절된 수, 유대인의 근절, 처리 완료, 행동, 특별행동, 특별대우, 특별히 대우하다, 특별대우의 대상으로 삼다, 숙정, 숙정활동, 배제, 이주, 완수, 집행 조치, 상응하게 대우하다, 특별한 조치로 이끌다, 보안경찰적 조치, 보안경찰적으로 집행하다, 유대인 문제의 해결, 유대인 문제의 세척, 유대인으로부터 해방시키다. ― 라울 힐베르크(본문 459쪽)
2차 세계대전 전범들을 비롯해 당대의 시민들 중 누구도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의 행정 문서 속에서 죽음을 회피하는 저 단어들만 무수히 등장할 뿐이다. 「역자 서문」에서 지적하듯, 힐베르크가 또한 몰두했던 주제는 “나치가 홀로코스트를 관철시키는 (…) 수단의 하나로 학살의 사실을 은폐하던 언어”였다. 이는 바로 한나 아렌트를 비롯한 서구의 내로라하는 지성들이 몰두하던 주제와 맥락이 같아 그 내용을 차분히 비교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번역자 김학이는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진부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제시한 “진부함(banality)”이라는 용어가 이 책의 저자 힐베르크의 연구를 바탕으로 제시된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이 책 전반에 걸쳐 집중적으로 서술된 ‘악의 일상성’이라는 주제는 비단 아렌트만이 참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번역자의 주장이다. 번역자는 이 책이 노먼 핑켈슈타인, 크리스토퍼 브라우닝, 하랄트 벨처를 비롯한 홀로코스트 학자들에서부터 아렌트와 미셸 푸코에 이르기까지 서구 지성들의 통찰에 무수히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지적한다. 비단 홀로코스트의 자료를 넘어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여전히 서구 유럽 지성들의 엄연한 과제인 것이다.
과연 악은 일상적인가? 저자가 개념화한 ‘파괴기계’ ‘파괴과정’에서 보통사람들이 행한 부품으로서의 역할은 이미 이 책을 비롯한 여러 저술에서 논의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전쟁과 학살은 매일 24시간 생중계 뉴스를 통해 전 세계의 가정에서 방영되고, 우리는 그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며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망설이게 마련이다. 결국 우리도 파괴기계 속 하나의 부품으로서 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판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가 힐베르크의 최종판이 된 사연
라울 힐베르크는 대학원 1학년이었을 당시부터 이 책의 구상을 시작했다. 당대의 저명한 나치즘 연구자 프란츠 노이만을 찾아간 힐베르크는 그의 지도 아래 「나치의 유대인 파괴에서 독일 공무원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석사 논문을 썼다. 이어 이 책과 동일한 「유럽 유대인의 파괴」라는 제목으로 박사 논문을 쓰겠다는 포부를 밝혔을 때 지도교수 프란츠 노이만이 던진 답변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당신의 제삿날(funeral)이 될 거야.”
대학원생 시절 그는 미군이 접수한 나치 문서들 중에서 소련 문제와 관련된 자료를 선별하는 일을 우연히 맡게 된다. 다시 말해, 저자 자신의 구상을 펼쳐볼 사료를 이처럼 손쉽게 발견한 셈이었다. 하지만 무려 8킬로미터의 책꽂이 길이에 달하는 사료라니! 더군다나 지도교수 노이만이 불의의 사고로 숨지고 박사학위 논문의 단행본 출간이 당시 프린스턴대학 출판부 심사위원이었던 한나 아렌트의 부정적인 평가로 좌절되는 불운이 겹치기도 했다. 결국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은, 이 책 본문에도 등장하는 체코의 유대인 기업 페체크의 고(故) 프랑크 페체크 덕분이었다.(참고로 체코의 우량 탄광기업이었던 페체크는 독일군 점령 당시 독일의 인수합병 조치에 항거하다가 반강제적으로 헐값에 처분되었던 기업이다.)
1992년 당시 독일 유학중이던 번역자 김학이는 “검은 뿔테 안경에 트렌치코트를 입은” 힐베르크를 처음 대면했고 이 책을 접하고 기존의 홀로코스트 연구만 알고 있던 자신에게 이 책은 “우주와도 같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번역을 결심하기에는 십수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200자 원고지 9000여 매(원서로는 1338쪽)를 훌쩍 넘기는 대작의 번역이 어찌 작은 결심으로 되었겠는가. 번역자 김학이는 한국에 돌아온 지 10년이 지나서 번역에 착수했다. 저자 힐베르크가 이메일을 이용하지 않는 독특한 취향이 있어, 항공우편으로만 세 번에 걸쳐 엄청난 양의 자료를 역자에게 건네주었고 이는 이번 한국어판에 334개의 본문 및 각주 수정, 총 55개의 단락 교체 및 추가로 반영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저자가 1966년 초판 발행 이후 영문판을 비롯하여 기타 외국어판을 출간할 때에 새로운 사료를 추가하여 매번 개정을 거듭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번역이 마무리되어가던 2007년 8월 초, 저자 힐베르크가 한국어판 서문을 쓸 겨를도 없이 갑자기 타계하면서 결국 이번 한국어판은 “행인지 불행인지”『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의 최종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장별 내용 요약
1장 전례(前例)
반유대인 정책의 역사적 궤적을 추적한 장이다. 서양사 최초의 반유대인 정책이 실시된 기원후 4세기경 로마에서부터 중세 신학자 루터를 거쳐 20세기 초반 나치의 등장까지를 각각 대비해보며, 저자는 나치 이전과 나치 시대의 병렬 현상, 다시 말해서 나치 이전에 발생했던 사건과 패턴이 1933~1945년에 와서 반복된 점에 주목한다.
2장 전사(前史)
1장에서 유대인을 적대적으로 개념화한 역사를 다뤘다면, 2장은 1920년 나치당 설립 당시 전무했던 반유대적 행정이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한 전후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확립되었고 일상생활에 고착되었는지를 조명한다.
3장 파괴의 구조
유대인의 파괴는 언뜻 보면, 분할 불가능하고, 단일하며, 틈입이 불가능한, 단 하나의 사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광범하게 뻗어 있던 관료기구 속에서 수많은 관리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취해진 조치들의 연속적 과정이었음이 드러난다. 3장에서는 유대인 파괴의 수미일관한 특징인 ‘구조’를 당시 독일의 관료제를 도표화하여 제시한다.
4장 유대인의 정의(定義)
파괴과정의 첫 단계는 바로 적(敵)을 정확히 규정하는 것이었다. 당시 우생학과 이론적으로 결탁한 독일의 민족사회주의는 “종교란 상관 없다. 썩은 것은 인종”이라는 모토답게 빠른 속도로 인종법을 개악해, 결국 나치 집권 후 2년이 지난 1935년 독일인들을 ‘아리아인과 비아리아인’으로 나누는 법령을 공표한다.
5장 약탈
파괴과정의 첫걸음은 유대인을 정의하는 데 불과했지만,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단계였다. 그로써 멋대로 총질할 수 있는 과녁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덫에 걸려들었다. 그리고 누가 유대인인지 규정된 뒤 몇 년간, 파괴기계는 유대인의 “재산”을 겨냥했다. 유대인들은 직업을 빼앗겼고, 사업체를 빼앗겼으며, 예금을 빼앗겼고, 임금을 빼앗겼으며, 먹을 것과 잘 곳에 대한 권리를 빼앗겼고, 마지막으로 사적인 소유물, 속옷과 금니와 머리칼까지 빼앗겼다.
6장 집중
유대인 파괴과정의 세번째 단계는 집중이다. 독일에서 집중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유대인들을 대도시에 몰아넣는 것이 하나요, 유대인을 독일인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유대인의 도시화는 앞서 논의한 반유대적 경제정책의 결과였고, 게토화는 한걸음 한걸음 면밀하게 계획되고 실천된 과정이었다.
7장 기동학살
유대인을 정의하고 그들의 재산을 강탈하고 게토에 가둔 독일 관료제는 분기점에 와 있었다. 한걸음 더 내딛는 것은 나치 치하 유럽 유대인의 절멸을 의미했다. 독일인들은 한걸음 앞의 그 지점을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로 불렀다. 유대인의 절멸은 크게 보아 두 번의 작전으로 실시되었다. 7장은 그중 첫번째 작전, 바로 1941년 6월 22일에 소련 침공과 함께 시작된 기동학살을 다룬다.
8장 강제이송
앞선 7장에서 다룬 기동학살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번째 작전 바로 ‘강제이송’이 개시되었다. 중부ㆍ서부ㆍ남동부 유럽의 유대인들이 가스 시설을 갖춘 수용소로 압송되었다. 소련의 점령 지역에서는 살인자가 희생자들을 찾아갔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희생자들이 살인자들에게 이송된 셈이다. 이송작전은 특히 복합성 면에서 작전이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소련 내의 기동학살과는 대조적으로 강제이송은 거대 관료기구가 수많은 제약과 요구사항들을 해결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8장은 이 책에서 비중이 가장 큰 장으로, 강제이송을 위해 전 유럽이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9장 학살수용소
파괴과정의 가장 비밀스런 작전이 행해진 6개의 학살수용소를 다룬 장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기차는 돌아갔지만 승객들은 사라졌”던 유럽의 나치 치하 3년을 추적한다. 학살수용소는 매우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한, 치밀한 기획의 산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10장 성찰
홀로코스트라는 사건은 그 자체로 별 의미가 없는 작은 조각들의 모자이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파괴과정의 면면을 분석하여 이 사건이 “습관과 관례와 전통에 뿌리박은 문서 처리와 정책안 작성과 전보 연락과 같은 일상적 행위들이 연속된 끝에 나타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11장 파괴 이후
유대인의 파괴가 유대인과 독일인, 그리고 전 세계인에게 미친 영향을 다룬 장이다. 전후 생존자를 중심으로 한 전 세계적인 기억 프로젝트가 유대인과 기타 민족들의 의식에 침투해, 결국 포스트 홀로코스트 유대인을 정의하고 만들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이다.
12장 예방과 반복
유대인의 파괴는 1945년에 끝났다. 가해는 끝났지만 현상은 남았다. 전후의 세계는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을 인지했다. 이후 법률 등의 공적 형태로 만들어진 예방 메커니즘의 면면을 정리한 장이다. 하지만 저자는 르완다 대학살을 한 예로 들어, 홀로코스트가 무한 반복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한다.
부록
부록은 각각 1930년대 독일 관료제 직급의 해설(부록 A), 홀로코스트 희생자 수 계산법(부록 B), 저자가 이용한 사료의 해설(부록 C)으로 매우 세세한 해설이 덧붙여져 있다.
■ 이 책은 Raul Hilberg의 The Destruction of the European Jews I·II·III(3판, 2003, Yale University Press/New Haven and London)을 저본으로 삼아 완역한 것으로, 원서의 초판은 1961년(Quadrangle Books, Chicago), 개정판은 1985년(Holmes and Meier, New York and London)에 각각 출간됐다.
저자소개
1961년에 이 책의 원본이 출간되었고, 그 책은 추후 영어로 두 번에 걸쳐 수정·증보되었으며, 한국어판을 포함하여 9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힐베르크는 이 책 외에 1979년에 『The Warsaw Diary of Adam Czerniakow(아담 체르니아쿠프의 바르샤바 게토 일기)』, 1992년에 『Perpetrators Victims Bystanders(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1996년에 『The Politics of Memory: The Journey of a Holocaust Historian(기억의 정치, 어느 홀로코스트 역사가의 일생)』, 2001년에 『Sources of Holocaust Research: An Analysis(홀로코스트 사료의 분석)』 등을 썼다.
홀로코스트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1976년에는 미국 대통령 홀로코스트 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고, 2002년에 독일의 숄 남매상과 독일연방대공훈장을 받았으며, 같은 해에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2005년에는 미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사료 작업을 통하여 폴란드에 남았던 자신의 친인척들이 홀로코스트의 와중에 모두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
옮긴이 김학이: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보쿰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동아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다. 논문으로 「나치즘과 운동」 「나치 경제정책과 자동차산업―나치 근대화론에 대한 고찰」 「홀로코스트와 근대성」 「얀 아스만의 문화적 기억」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독일의 통일과 위기』 『분열과 통일의 독일사』 『나치스 민족공동체와 노동계급』 『나치 시대의 일상사』 『정당사회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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