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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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괴물’경제, 그 해체의 열쇠는 ‘제3부문’에 있다!
당신은 한국의 평균가구라 할 4인가족의 가장으로서 자신이 살 집 말고도 물려줄 30평짜리 아파트를 자녀수만큼 가지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수년 내 IMF 환란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엄청난 파고로 들이닥칠 경제적 고통으로부터 당신은 전혀 안전하지 않다. 현재대로라면 한국 경제의 앞날에는 경제의 상/하층부가 극단적으로 이원화된 중남미식 8자형 경제로 깊숙이 빨려들거나 그 파국을 파시즘에 기대어 해결하는 극우파 경제의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 우울한 경고등 한켠에 실낱같은 희망의 파란등 하나를 켜두고, 이 대전환의 기로에 선 우리의 선택에 대해 함께 고민해볼 것을 제안한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던 환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경제적 약자들이 그야말로 ‘생지옥’에서 몸부림치게 만드는 지금의 한국 경제를 한마디로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저자는 홉스의 용어를 빌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사회를 지배하는 최고의 법칙이 된 이 상황을 ‘레비아탄’, 즉 ‘괴물’이라 부른다. 2~3% 정도로 추정되는 지배층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구조와 서울중심주의 및 건설자본주의로 과도하게 집중된 경제가 결합되어 탄생한 이 ‘이상한 레비아탄’이야말로 지금 한국의 자화상이다. 그런데 이 괴물은 이제 갓 탄생했을 뿐이다. 이 괴물이 몸집을 더욱 불려 우리 모두를 집어삼키도록 놔둘 것인가, 아니면 이것을 해체하여 정상적인 국민경제로 돌려놓을 것인가?
이는 대통령인 이명박의 선택보다는 침묵하는 다수 민중의 손에 달려 있고, 대변받지 못하는 조용한 다수, 정확히 표현하면 지금 집이 없거나 있어야 아파트 한 채 정도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선택에 달려 있다. (…)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이 가지게 될 이 선택을 이 책에서는 ‘위대한 선택’이라 부르도록 하겠다. 훗날, 한국의 역사가 그 선택을 그렇게 부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23~24쪽)
괴물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저자는 이 책의 1부에서, 경제학이 애덤 스미스를 시작으로 존 스튜어트 밀, 마르크스, 왈라스, 케인스를 거쳐 최근 칼 폴라니나 마르셀 모스 등에게서 그 싹을 보이고 있는 제3부문에 대한 논의(공동체, 호혜, 공정 등을 말하는 ‘사회경제’)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일별한다. 이는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혹은 ‘신뢰의 자본주의’를 향해온 과정으로, 저자는 특히 제1부문(정부 혹은 국가라는 이름의 공공부문)이나 제2부문(시장이 작동하는 기업부문)과는 다른 작동원리를 보이는 제3부문의 등장에 주목한다.
이어 2부에서는, 이런 경제학사의 흐름과는 달리 개발독재․압축성장․중앙집중화로 요약되는 한국 경제의 지난 역사를 개괄하는 가운데, 한국 경제가 괴물로 탄생하게 된 궤적을 펼쳐 보인다. 박정희의 ‘경연적 시장(contestable market)’에 의한 개발모델로써 일궈낸 ‘한강의 기적’ 이래, 1980년과 1998년 두 차례의 경제공황을 거치면서도 한국 경제는 그 시스템의 본질적 변화를 도모하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의 해일에 휩쓸리고 말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강화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노선이 노무현 정부 시절로 건너오면서는 세계적인 ‘분산형 경제’의 흐름과 상관없이 더욱 ‘토건국가’를 향해 매진하게 했다. 이와 동시에 물가상승률과 이자율을 잡지 못하면서 더해진 고용불안으로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적 기반까지 무너져 갔다. 2004~2005년 즈음에 이르러 가장 ‘약한 고리’, 즉 이십대, 여성, 지방 거주자를 비롯한 경제적 약자들부터 지옥 같은 생활에 빠지게 되고, 이어 중산층마저 붕괴되기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이제 한국 경제는 다양성이 사라지고 승자독식의 비효율만 남는 중남미형 경제로 점점 더 깊숙이 빠져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그 증후를 주거공간, 교육기관, 시장의 분리에서 찾는다.
먼저 주거공간에 대해 살펴봅시다. 여기에서도 지표가 되는 것들이 있는데, 첫째 ‘요새주택’이 등장했는가와, 둘째 그 요새주택을 폐쇄적으로 연결하는 도로가 생겨났는가를 따져보게 됩니다. 한국에서 최초의 요새주택은 대치동의 ‘타워팰리스’로 볼 수 있는데, 이 주택 양식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섞여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목도하게 됩니다. (…)
다음 조건인 교육의 분리에도 단계가 있지요. 먼저 상류층과 하류층의 교육기관이 분리되는 단계, 이어서 상류층이 외국에서 교육받는 단계, 그리고 그렇게 외국에서 돌아온 상류층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단계, 이렇게 세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은 첫째와 둘째 단계가 불완전하게나마 진행되었고, 셋째 단계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중남미에서 그 마지막 단계를 완성한 ‘시카고 보이’들이 그랬듯이, 그들이 경제각료를 비롯한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교육의 분리는 완전하게 끝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8자형 경제의 마지막 조건으로, 시장의 분리에 대해 살펴봅시다. 이 문제는 하이엔드와 로엔드 시장의 분리, 그리고 공식경제와 비공식경제의 분리라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이 현상은 2005년 이후 한국에서 더욱 강화되었고, 쇠고기 같은 경우는 수입 쇠고기와 한우로 완전히 두 개의 시장이 분리됩니다. 여기에는 문화적 취향, 식품안전의 문제, 생태에 대한 윤리적 문제 등이 동시에 개입되는데, 역시 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은 소득 수준이지요. (185~188쪽)
이러한 과정을 저자는 한마디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 곧 괴물로 명명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박정희 이후로 형성된 정부의 리더십은 노무현과 함께 한국에서 사라지게 되고, 아울러 절차적 민주주의만 잘 챙기면 경제민주화도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던 일부의 희망도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삼성을 축으로 하는 대기업은 한국에서 승리하게 되고, 드디어 그들의 소망이던 재벌시대의 CEO를 대통령으로 세우게 됩니다. (152쪽)
괴물 해체의 세 가지 키워드
이렇게 탄생한 괴물이, 박정희의 유신경제 이래 여전히 성장신화에 매몰된 채 아직도 ‘747경제’ 운운하고 있는 와중에서 제로 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만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이 괴물이 혹여 훗날 우리가 ‘MB파시즘’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를 그런 난동을 부리기 전에 해체할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저자는 그 핵심은 한마디로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은 줄이고 지식과 문화의 투입은 늘리는 국민경제”라고 말한다.
1) 사교육을 해체하고 교육문제의 대안을 모색하자!
한국에서 사교육 문제는 단순히 부와 가난의 대물림 현상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이 아니다. 국민경제 차원에서 지식경제 혹은 지식의 재생산에 이 문제가 절대적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최소 GDP의 4~5% 정도를 교육비로 지출하는데, 이렇게 교육받은 우리의 2세들이 국제적으로는 아무런 경쟁력이 없다. 이 딜레마에서 빠져나갈 길은 무엇인가?
저자는 우선, 국민의 사교육받을 권리를 잠시 ‘국민경제의 효율성’을 위해 정지시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예컨대 대법원에서 최소한 경과적 조치로라도 사교육 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열어준다든지 학부모들이 사교육 위헌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으로. 동시에 중등교육에서 스위스․스웨덴․핀란드 등의 나라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기반과 문화기반을 만들어주자는 것. 표준교육은 최소한으로 하고, 개개인이 원하는 지식과 문화교육 비중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지식과 문화 프로그램들을 사회가 충분히 제공하자고 말한다. 더불어 대학등록금 문제를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국공립대 지원을 늘리고 공공대학의 질을 높이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2) 한국 경제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생태적 전환을 이루려면 중앙형 토호와 지역형 토호들이 이미 지역 토지의 60~80%를 장악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땅값이 올라가지 않게 하면서도 지역의 사용가치 혹은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지역의 발전 방향을 잡아야 한다. 좀더 원칙적으로 말하면, 경제적 성과의 지역 순환성과 내재성, 문화적 특수성들을 높여나가는 형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일단 두 개의 ‘옵션’이 있다. 첫째, 정상적인 지자체 선거를 통해서 토호들 혹은 토호들의 이익만을 대변할 게 너무 뻔한 사람들이 지방자치에서 의사결정권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한국 지방자치의 틀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저자는 일종의 연방제를 도입하여 지역정치에 의한 한국의 중앙화 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상․하원 양원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일종의 ‘창조적 파괴’를 위해 구조적 충격을 주는 방식이라고 하겠다.
3) 발상의 전환으로 제3부문을 강화하자!
제3부문이란 달리 말하면 ‘사회적 경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공공부문과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던 사회주의 이념과도 다르고, 시장의 원칙에 의한 이윤 극대화를 주장하는 대기업의 작동원리와도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무정부주의’ 혹은 ‘지역공동체주의’에, 때로는 ‘호혜reciprocity’나 ‘공정성’ 같은 것들에 훨씬 가깝다. 생시몽의 조합주의 혹은 종교에 기반을 둔, 초기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의 유통조직에서 출발한 생활협동조합, 또는 스위스의 경우처럼 대형 할인매장이 도시로 밀고 들어올 때 생겨난 소상인연합의 경우나, 덴마크와 영국의 소규모 자영농들을 중심으로 한 농민운동단체, 혹은 프랑스의 소규모 가족형 기업들의 경우가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들의 활동방식과는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이는 ‘사회적 기업’도 이러한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제3부문을 지금부터 어떻게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낼 것인가가 지금 한국 경제에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이며, 이 과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대략 다음 세 가지 경로가 있다고 말한다.
첫번째 경로는 생활협동조합의 ‘구심점’이 되어줄 수 있는 전통적인 사회기관인 종교기관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선진국의 종교기관이 했던 것과 같은 일을 이 땅의 종교기관들도 해준다면, 한국은 훨씬 빨리 제3부문을 키워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경로는, 주로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기업들이 공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금을 조성하는 일이라고 한다. 지금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유휴 자금의 일부를 사회적 부문에 내놓는다면, 그리하여 공적이지만 정부를 통하지 않고 쓸 수 있는 돈을 10조 정도만 조성해준다면, 마치 경제에서 우리가 압축성장을 했듯이 제3부문의 최초 형성 기간도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경로는, 스웨덴이나 스위스 혹은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일정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모든 기금을 대주는 방식을 도입하자는 말은 아니다. 사회적 기업에서 ‘인큐베이팅’이라 표현하는, 출범시키고 일정 궤도에 올라갈 때까지 지원한다거나 생협에 매장 정도를 대여해주는 방식 등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국에서 정상적인 제3부문이 매우 빠른 시간 안에 형성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음으로 해서 얻어진 ‘숙련’을 통해 지식이 깊어질 것이고, 사회 전체가 갖는 지식 총합이 마치 국가와 대기업만이 존재하던 듯한 경우보다 훨씬 커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제적 활동과 함께 움직이는 지역기반, 혹은 특수지식을 갖춘 자영업자들이 움직일 공간이 넓어지겠지요. 무엇보다도 이런 상태에서는 비로소 문화의 다양성이 고취되고, 결국은 사회적 낭비만을 만들어낼 승자독식 사회의 비효율성이 완화될 것입니다. (…) 저는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상태는 지옥이고, 그렇다고 조직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상태(즉 사회주의 상태)도 또 다른 지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두 가지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것인가, 그게 학자로서의 저에게 던져진 큰 질문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불안하지만 안정성을 잃지 않는 국민경제, 그것이 바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혹은 ‘신뢰의 자본주의’라고 생각하며, 한국 경제의 대안이 그런 모습 가운데 하나이기를 원합니다. 그런 제3부문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그것이 곧 장기적으로 평화를 담보하는 평화경제라고 저는 봅니다. 그래야만 지금과 같은 토목경제가 해체되고, 한반도 생태계와 국민경제가 최소한의 공존을 추구할 수 있는 생태적 전환이 가능할 것입니다. (266~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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