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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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이 책은 『달과 6펜스』『인간의 굴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머싯 몸이 자신의 감식안으로 가려 뽑은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 10편에 대한 감상과 그 작가들의 생애를 탐색해놓은 『Ten Novels and Their Authors』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그 자신 또한 한 명의 위대한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는, 글쓰기에 관한 한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작가의 생애와 그를 ‘불멸의 작가’ 반열에 오르게 만든 대표작을 유기적으로 엮어 ‘작은 평전(작가론) + 비평적 독후감(작품론)’이라는 독특한 형식에 담아 재구성해놓고 있다.
위대한 소설가가 꼽은 ‘세계 10대 소설’이란 점부터가 흥미롭거니와, 그것들이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고전 명작들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안내를 따라 들어선 작품의 동굴 속은 매우 낯설면서도 더욱 강렬한 모습으로 깊은 공명과 감동의 색다른 울림을 토해낸다. 작품의 이랑과 골과 등성이를 더욱 예민하게 벼려놓는 저자의 솜씨는, 때론 볼품없고 때론 비루하기까지 한 작가의 음습한 내면이 어떻게 그 위대한 작품을 추동하는 상상력의 원천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안목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로써 고전 명작을 새롭게 접하거나 이를 충분히 즐기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서머싯 몸이라는 최고의 안내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미덕과 결함이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들
이 책에서 서머싯 몸은 자신이 선정한 ‘위대한 작가들’의 결함이나 선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생활태도 등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수많은 결함과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왜 위대한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모든 천재는 이상하게도 결함과 결부되어 있다’는 핵심 테제를 책의 곳곳에 묻어두고 “글쓰기에 대한 남다른 열정―존중할 만한 미덕”과 “육체적 결함과 삶에서의 부도덕―야비한 결점”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어 위대한 작품으로 변모하는가를 매우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나는 물론 작가가 지닌 정신적․육체적 결함이 작품의 성격에 영향을 준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그것은 그를 동료에게서 떨어뜨려 놓고 그에게 자의식과 편견을 가지게 한다. 그러한 결함을 지녔을 경우 작가는 어느 정도 그의 동료들로부터 격리되어 강한 자의식과 편견을 지니게 되며, 그로 인해 남과는 다른 관점―때로는 극히 황량한 관점―에서 세상과 삶과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더욱이 그러한 결함은 창작 본능과 피할 수 없이 결부되어 있는 외향성에 내향성을 더하게 된다. (-소설가, 미덕과 결함의 이중주)
그런데 이는 천재적 재능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단순한 결함으로만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개성’이란 관점으로 수렴된다. 즉 저자는, 특유의 개성을 통해 작가 고유의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아야 가치 있는 작품이 탄생된다는 입장에 선 채 오히려 이 위대한 작가들의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악덕과 결점으로 작용한다는 일반적인 시선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하다.
작품의 측면에서 보자면 작가들은 일시적인 흥미에 기반을 두어 시간이 지나면 곧 의미를 잃게 되는 주제보다는 신, 사랑과 미움, 죽음, 돈, 야망, 질투 등과 같은 인간의 영원한 관심사를 다루었다. 그들의 비범한 개성이 이끄는 대로 삶을 보고 판단하고 묘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작품에 독특한 성격을 부여하게 된 것이다. 서머싯 몸은 이것이 바로 시대가 변하고 사고방식이 새로워져도 그들의 작품이 매력을 잃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런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창작 능력뿐 아니라 예리한 인식 능력, 주의 깊은 관찰력, 경험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이런 여러 능력들이 결합됨으로써 작가는 하나의 “특별한 소설가”가 되는 것이다. 서머싯 몸은 작가들의 재능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고 작품으로 형상화되는가를 이런 비유로써 설명한다.
예술가의 특별한 재능, 나아가 천재성이라고 불러도 좋은 그 재능은 마치 난초의 씨앗과도 같은 것이어서 정글 속의 한 나무에 우연히 떨어진 후 그 나무에게서가 아니라 주변의 공기에서 양분을 공급받고 싹을 틔워 신기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그러나 난초가 자리 잡은 나무를 베어 통나무로 만들거나 강물을 따라 제재소로 실려 보낸다면, 값지고 환상적인 꽃이 피어났던 그 나무는 원시림에 있는 수많은 다른 나무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이다. (-소설가, 미덕과 결함의 이중주)
소설, 얼마나 재미있게 읽을 것인가
이 책에는 ‘불멸의 작가’들이 남긴 방대한 분량의 작품들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또 유용하게 읽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서머싯 몸 특유의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서머싯 몸은 소설이란 재미와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읽는다는 지론을 바탕으로 ‘건너뛰어 읽기’라는 상투적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독법을 선보인다. 제아무리 건너뛰어 읽는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독자라도 이 방법이 ‘위대한 작품’들에 적용된다는 사실에 의아해할지 모른다. 이에 대해 서머싯 몸은 지금까지 ‘지식이나 교훈’을 주는 것으로 인식되어온 작품들에서 ‘재미’의 요소를 발견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즉, 이야기를 지루하게 만드는 부분은 과감하게 뛰어넘고 흥미진진한 부분은 손에 땀을 쥐어가며 읽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작품에 달려 있는 문제여서, 저자는 “『오만과 편견』처럼 매혹적인 소설이나 『보바리 부인』 같은 탄탄한 구성력을 지닌 작품에서는 단 한 쪽도 생략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저자가 강조하여 말하듯, 이 책에 실린 글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독자들로 하여금 각 장의 해당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도록” 하는 데 있다. 우리는 어떤 작품이 고전이라고 하면 읽어보지도 않고 그 작품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은 고전을 읽는 데 필요한 평범하지만 특별한 독법을 독자들에게 제시함과 동시에 위대한 작가들의 감추어진 삶을 가슴 깊이 공감하며 읽어나갈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지나치듯 들어왔던 현대의 명작 소설들과 좀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는 한편으로, 지금 우리 시대에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문득 되새기게 해준다.
저자소개
옮긴이 권정관: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서울시립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지금은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지식의 충돌 -책vs책』이 있는데, 이 책으로 2007년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우리말로 옮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은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에서 좋은 번역작으로 선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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