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모리스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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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윌리엄 모리스. 현대 디자인 공예이론의 선구자이자 현대 기능주의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며 국내에도 그와 관련된 책 몇 권이 소개되었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낯설다. 특히 그의 이름 앞에 ‘독창적이고 선구적인 사회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 책은 예술가로서의 윌리엄 모리스뿐만이 아니라 19세기 산업자본주의의 팽창 앞에 대항하며 불꽃같이 살다 간 사회주의자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을 밀도 있게 조명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건축과 디자인을 비롯한 모리스의 예술 역시 사회주의라고 하는 ‘삶의 본질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고통의 상징이 되었지만, 노동이 즐거움이 되고 예술 행위가 될 수 있다면 인간의 삶은 보다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변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에 대한 모리스의 기본 철학이며, 그의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달리 말해 그의 예술은 바로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었으며, 그의 사회주의는 바로 예술과 다름없었다는 것이다.
근본으로부터의 혁명, 생활사회주의
저자는 모리스의 사회주의를 ‘생활사회주의’라는 말로 요약한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삶을 예술처럼, 세상을 예술처럼’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생활사회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노동자 개개인의 삶과 노동의 질을 근본으로부터 변혁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변혁의 핵심에는 ‘즐거움으로서의 노동’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노동에는 많은 대가가 있습니다. 바로 창조라는 대가입니다. 그것은 지금 ‘모든’ 일이 즐겁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희망을 품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리스는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이 자연스러움을 상실했다고 보았다. 그 자연스러움이란 자본주의가 지배하기 이전에는 모든 노동자가 지녔고, 또한 언제나 지녀야 했던 것으로 노동을 통해 동료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기회였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반복적이고 집단적이며 노동 억압적인 성격으로 변하고, 노동자는 자기표현이자 즐거움으로서의 노동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모리스는 이렇듯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행위로서 노동의 결과물은 곧 예술이 된다고 말한다. 즉 일부 천재적 예술가들과 상류 계급만이 독점하는 것들이 아닌, 노동자 스스로가 창조해낸 결과물들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삶을 예술처럼 만드는 생활사회주의인 것이다.
모리스의 생활사회주의가 독창적이고 선구적이었던 까닭은, 마르크스를 비롯한 여타 사회주의자들과 달리 당대의 문제를 단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1960년 창간되어 지금까지 가장 유명한 진보잡지 중의 하나인 『뉴 레프트 리뷰』의 초기 편집자이자 사회주의자인 E. P. 톰슨은 모리스의 사회주의가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빈곤과 착취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신념, 곧 우리가 의식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라는 신념에 근거하는, 생활에 뿌리박은 사회주의”라고 말한다. 따라서 모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주의자의 참된 임무는 노동자에게 그들이 사회의 주인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압박 계급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인상지우도록 하는 것이다. (…) 지금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과제는 사회주의자를 만드는 것, 지배계급에 대해 적개심을 느끼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당파 정치의 엄청난 어리석음에 어떤 유혹도 갖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모리스가 꿈꾼 사회주의 세계는 단지 좌파 정권이 집권하는 사회도 마르크스주의를 기치로 한 국가사회주의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삶의 질이 변화하는 사회를 꿈꾸었다. 그렇기에 그는 “하루 만에 완전한 사회주의 체제를 확립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이 투쟁에서 수많은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노동자의 ‘실질적 삶의 질’의 변화라는 연장선상에서 그의 예술은 바로 아름다운 사회주의의 구현이자 즐거운 노동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 유토피아를 디자인하다
모리스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노동자들의 유토피아. 그리고 그의 생애 후기에 그가 꿈꾼 유토피아를 유감없이 펼쳐 보인 『에코토피아 뉴스』를 집필했다. 『에코토피아 뉴스』는 그의 생애 마지막 시기인 1890년에 집필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꿈꾼 이상적 사회주의 세계의 제시와 현실 세계(산업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비판을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리스 사상이 집대성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모리스가 말하는 에코토피아는 21세기 후반에 실현될 이상적 사회주의 세계이다.(저자는 모리스가 꿈꾼 유토피아를 ‘에코토피아’로 번역했다. 왜냐하면 모리스는 산업자본주의 사회가 반자연적이고 반생태적인 세계라 비판했고, 그가 꿈꾼 이상 사회는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사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도 모리스의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구별된다.)
『에코토피아 뉴스』에서 그리고 있는 이상 사회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21세기 말의 공상과학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한참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중세 사회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았고, 자신의 노동이 곧 예술이자 창조 행위가 되는 즐거움이 되었던 사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리스가 말하는 중세 동경이 실질적인 중세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적인 자연 환경과 노동 환경에 비추어 오늘의 현실 사회를 비판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모리스의 『에코토피아 뉴스』는 유토피아 그 자체를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쓰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모리스는 『에코토피아 뉴스』의 서두에서 19세기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과 그것에 잘못 대응했던 사회개량주의와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비판, 최저임금제 등과 같은 노동자 보호 입법의 의의와 한계, 참된 민중의 단결의 필요성, 노동자 계급은 자발적인 조직에 의해 비로소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과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전제로 당시 다가올 미래였던 1952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대규모 유혈 충돌이 일어나고 이를 기화로 사회적 대반란이 발생해 사회주의 혁명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묘사한다. 또한 당시의 역사적 사건이었던 맨체스터 유혈사건과 1887년의 트라팔가 유혈사건(‘피의 일요일’ 사건) 등을 참고로 하여 혁명과 반혁명이 대립하는 고난의 과도기를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혁명 과정을 박진감 있게 묘사한 『에코토피아 뉴스』는 파리 코뮌을 실감나게 그린 마르크스의 『프랑스 내전』을 능가할 정도라고 평가되고 있다.
혁명 후 실현될 에코토피아는 지극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된다. 무익한 노고 대신 유익한 노동을 하며 풍부한 감성으로 자연과 대지의 자비로움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의 에코토피아 세계는 다른 사회주의 문헌의 건조한 논리와는 대비된다. 물론 그런 점에서 모리스의 에코토피아는 지나치게 낭만적인 공상사회로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모리스는 이에 대해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그래, 정말 그렇다! 내가 본 대로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꿈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의 비전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자신의 개인적인 ‘꿈’을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게 되면 ‘비전’이 된다는 이 구절은 현실과 이상이 교차하는 긴장감과 함께 『에코토피아 뉴스』를 역사 속의 인간 이야기로 읽게 만든다. 모리스는 바로 그 비전 속에서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디자인한 것이다.
생활예술의 꿈
지금은 근대 디자인의 아버지로 칭송되지만, 정작 당시의 모리스는 소박한 예술을 꿈꾸었다. 그것은 지배계급과 예술가들이 누리는 대大예술에 대한 소小예술이자 생활예술이었다. 그는 ‘만인이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예술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생활예술은 만인을 위한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술가는 일상생활로부터 유리되어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몽상에 사로잡혀 있다. (…) 게다가 그것도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이해하는 체하고 감동하는 시늉을 내고 있을 따름이다. (…) 나는 소수를 위한 예술을 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소수를 위한 교육도, 소수를 위한 자유도 원하지 않는다.
생활예술은 민중생활의 즐거움에서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만들 때나 사용할 때 즐거움으로 느끼는 것이 생활예술의 역할이자 용도이다. 이러한 예술이 없으면 휴식은 공허하고 재미없게 되며, 노동은 단지 견뎌내야 하는 육체와 정신의 피로가 된다.
모리스는 이러한 생활예술의 정신을 바탕에 두고 벽지, 타일, 스테인드글라스, 가구, 책 등 일반 민중들 누구나 살아가면서 사용하고 영위하는 생활 주변의 사물들을 예술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노동자 누구나 아름다운 집에서 아름다운 책을 읽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더 나아가 그는 생활예술이 고급예술을 ‘따라잡을 수 있으려면’ 생활예술을 보완해야 하며, 자본주의가 ‘가짜’ 하급 상품 생산을 통해 생활예술에 위협을 줄 수 없도록 디자인의 기준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러한 목적을 이루려면 예술 자체만 변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사회 혁명, 곧 자본주의 자체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리스의 유토피아, 생활예술, 사회주의는 모두 그가 발로 뛰고 실천하며 추구했던 이상이었다. 실제 모리스는 민주연맹과 사회민주연맹을 거쳐 사회민주동맹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 투쟁의 현장에 생생히 몸담고 있었으며, 많은 저작을 남기진 않았지만 수많은 강연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각성’을 위한 실천에 나섰다. 또한 생활예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몸소 모리스 회사를 설립해 동료들과 ‘연대’하여 디자인을 하고 생산을 하며 실천해나갔다. 이는 이후 광범한 미술공예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또한 그는 말년에 켈름스코트 출판사를 설립해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일에 매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가 실천하고자 한 에코토피아 사회주의에 대한 꿈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그것은 바로 노동자들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 노동자들이 스스로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고 영위하도록 하기 위한 투쟁, 노동자 누구나 아름다운 책을 읽게 만들기 위한 투쟁이었다. 모리스는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다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어 그는 한 강연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나는 탄환과 총검으로 하는 전쟁만이 아니라 자본을 둘러싼 전쟁으로부터도 자유롭기를 희망한다. 나아가 자본이 초래하는 압도적인 명성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자유를 되찾기를 희망한다. 우애를 뜻하는 평등의 확보와 빈곤으로부터의 자유와 가능한 모든 것을 금지시키는 비참한 노고로부터의 자유를 희망한다. (…) 당신은 그러한 것이 과거에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는 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그 대신 세계가 아직 살아 활동하고 있는 이상,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나의 희망은 더욱 부풀어 오른다. 정녕 그렇다. 그것은 꿈일지도 모른다. (…) 여러분과 오늘 이 밤에 만난 것을 계기로 나의 꿈, 이 ‘희망’을 실현하도록 도와주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간절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 도움에 답해야 하는 것은 추악한 세상에서 내일에 대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일지도 모른다. 죽을 때까지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모리스는 1896년 세상을 떠났다. 윌리엄 모리스가 죽었을 때 담당 의사는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윌리엄 모리스였다는 것이 주된 원인으로 죽었다. 그는 평생 열 사람의 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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