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낯선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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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시간은 인간에게 많은 흔적들을 남긴다. 즉 개인적, 집단적, 국가적 영역에서 현재는 끊임없이 흔적을 남기며 과거가 된다. 과거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의지가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실존주의적 견해를 표명한 인간주의 지리학의 대표자이자 역사학자이기도 한 저자 데이비드 로웬덜은 이 책에서 과거가 고정불변의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현재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구에서 인간이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여 왔는가에 대한 방대한 작업인 이 책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첫째, 과거는 항상 필연적으로 현재에 의해 재해석된다. 또한 과거는 전체로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된 부분들로 이해된다. 그리고 과거는 실재하지만 실제로는 있는 그대로 알려질 수 없다. 과거를 이해하거나 이용할 때 이 근본적인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과거는 오늘날 그것이 이전에 다루어졌던 방식과는 다르게 다루어진다. 예를 들어 과거에 대한 향수는 예전과는 달리 이제 일종의 소비 산업이 되었고, 사물과 장소는 창조적으로 재사용되기보다는 오히려 포장되고 상품화된다. 특히 현 세대는 성서적이고 고전적인 역사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관점을 기본으로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소설과 영화 속에서 나타난 과거로의 시간여행, 르네상스 시대·17~18세기 영국과 프랑스·빅토리아 시대 영국·혁명기와 혁명기 이후의 미국에서 나타난 과거의 업적과 결함에 대한 상반된 주장들 등을 통해 과거가 어떻게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기도 하고 빈곤하게 만들기도 하는가에 대해 기술하고, 우리가 과거를 멀리 하기도 하고 포용하기도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2부에서는 과거에 대한 지식과 그 지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다루고 있다. 이때 저자는 과거에 접근하는 주요한 3가지 경로인 기억, 역사, 유물의 장점과 결함을 고찰하고, 세 경로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비교한다. 3부에서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전통 복원주의, 그리고 현대의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나는 과거 유산 복원과 개조 등을 기술하면서 우리가 과거를 왜, 어떻게 변화시키며, 그러한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논의를 통해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저자가 왜 ‘과거는 낯선 나라’라고 말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과거는 왜 낯선 나라인가
19세기까지만 해도 서구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를 현재와 유사하다는 가정 아래 규정하고 판단했다. 즉 인간의 본성은 항상 불변하는 것으로 가정되었고, 중요한 사건들도 항상 유사한 동기나 열정에 의해 촉발되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사실 과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낯선’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과거의 삶은 지금의 삶과는 아주 다른 존재방식과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가 낯선 나라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과거에 대한 인식이 확대됨에 따라 사실상 과거가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이다. 즉 각 시대의 요구에 따라 과거가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는 사실상 있는 그대로의 과거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과거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낯선 나라이기 때문에 인지될 수도 판단될 수도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불변하고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우리와 상호작용하며, 과거와 현재가 융합하는 유산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과거는 실재하지만 실제로는 있는 그대로 알려질 수 없으며’ ‘현재에 의해 끊임없이 재해석된다’고 말한 관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 나아가 그는 재해석된 과거가 과거의 진실을 전복시키기보다는 과거의 의미를 이해하고 과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재로 부활한다
이 책의 1부에서 논의되었듯이 과거는 우선 선택적으로 이용된다. 과거는 현재를 비옥하게 하는 유산으로서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현재를 억압하거나 과거의 악행이라는 족쇄를 현재에 채우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는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과거는 과장하고 확대하기도 하며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고 해를 주는 과거는 축소하거나 삭제하기도 한다. 이렇듯 과거 인식과 이용의 기본 태도에서부터 우리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거의 개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2부에서 논의된 것처럼 기억에만 의존하던 시대와 달리 역사가 씌어진 이후부터는 과거가 훨씬 믿을 만하고 확실해진 것처럼 보였지만, 역사 역시 해석자의 주관과 실제 일어난 일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여기에는 현재의 필요라는 요구의 개입뿐만 아니라 과거의 사건 이후 연달아 일어난 이후의 새로운 사건을 모두 인지하고 있는 현재 서술자의 지적 혜택이라는 문제도 개입되어 있다. 또한 기억과 역사는 모두 과거로부터 살아남은 물질적 흔적들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데, 유물 역시 그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과거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끊임없이 개조하고 변형시키는 것일까? 이는 기본적으로 3부에서 논의된 것처럼 과거가 현재에 가져다주는 분명한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과거가 ‘합의된다’고 느껴진다고 말한다. 과거는 아주 일차원적으로는 개인의 향수를 달래주고 안정감을 제공하기 위해, 더 나아가서는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이나 우월성을 담보하기 위해, 그 목적에 맞게 합의되고 개조되는 것이다. 게다가 훼손된 과거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고 보존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주장할 때조차도 사실상 현재의 방법론으로 과거를 조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렇듯 재해석된 과거는 조금의 진실도 담고 있지 않은 것으로 폄하되어야 하는 것일까. 저자의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아니다’이다. 저자는 역사가 다시 기록되듯이 과거가 현재의 지식과 가치가 변함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피한 일이라고 결론짓는다. 왜냐하면 그에게 과거는 불변하는 전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기억, 역사, 유물의 누적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누적물이라는 개념은 그것들이 시간을 관통해오면서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고 개조된 부분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과거가 그것을 만들어낸 자들뿐 아니라 이를 물려받은 사람들의 증거이며, 과거의 정신뿐 아니라 현재의 전망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 현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낯선 나라이기도 하며, 또한 현재에 의해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부활하기 때문에 낯선 나라이기도 하다. 과거가 변화한다는 사실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역으로 그러한 과거는 또한 우리를 구속하는 과거의 신화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이는 단지 과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주장처럼 현재와 미래의 전망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이렇듯 끊임없이 변화하며 현재로 부활하는 과거는 과거에 대한 일방적인 의존을 떨쳐내는 데 이바지하며 자유롭게 선택된 미래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결론 부분을 저자는 이렇게 끝맺는다. “우리가 물려받은 것도 결국 변형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만 비로소 과거를 풍성하게 사용할 수 있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단순히 보존되기만 하는 세습된 유산은 견딜 수 없는 부담이 된다. 과거는 길들여짐으로써―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을 용인하고 기뻐함으로써―가장 잘 이용된다.”
우리의 역사는 앞으로도 더욱 더 수정될 것이며, 우리의 새로운 과거는 예전의 것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과거를 다시 만들듯이 과거도 우리를 다시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창조적으로 받아들일 때 현재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저자소개
옮긴이 김종원: 경희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전임연구원. 옮긴 책으로는 『마르크스주의와 공황론』 『영국 제국주의 1750~1970』 『역사의 격정』 『마르크스의 복수』 등이 있다.
한명숙: 경희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전임연구원.. 논문으로 「M. 로베스피에르의 종교사상과 종교정책」 「근대 아일랜드 교육에서의 민족과 종교: 1830~1850년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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