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
페이지 정보
본문

도서소개
대통령 탄핵심판과 행정수도이전 위헌결정 파문을 거치면서 헌법재판소는 일약 국민들의 최고 관심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로써 법조인들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던 존재가 어느 날 불쑥 일반인들의 곁에 나타난 형국이었지만, 사실 헌재는 늘 우리의 구체적 일상에 깊숙이 간여해왔고 지금도 해오고 있다. 국가적으로 굵직굵직한 사안뿐 아니라, 결혼피로연의 음식접대 시간문제(「법으로 허례허식을 막을 수 있는가」)나 애주가들이 원하는 소주를 선택할 권리문제(「소주와 지역주의」) 등에서도 헌재는 우리 사회가 운용되는 핵심적 원리와 기준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간 헌재가 내린 중요 판결들을 통해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정신이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되어왔는지, 그리하여 우리 사회가 인권과 공정성 실현의 수준에서 어느 만큼의 진전을 이뤄내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는 한 사회가 운용되는 최고 원리로서 ‘헌법’이 가지는 가치와 힘을 되짚어보게 함과 동시에,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관의 현재를 확인케 해주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사소한 듯 보이는 판결에 담긴 크나큰 의미
저자는 18건의 주요 헌법판결을 대상으로, 사건이 청구된 배경과 당시의 사회적 상황, 그리고 판결 결과가 개인과 사회와 국가에 미친 영향과 그 의의를 찬찬히 풀어낸다. 예컨대, 과외교습 전면금지에 대한 위헌판결은 ‘기본권 제한’에 있어 그 목적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일반원칙(비례의 원칙)을 무시하는 식으로 강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공부는 ‘과외’로 해도 죄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엄청난 사교육비 증대로 인해 공교육 이외의 과외교습을 전면 금지하는 입법을 지지해왔는데, 이는 부모의 자녀교육권과 아동과 청소년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경쟁에서의 불리함과 상대적 박탈감, 낭비적인 인적 물적 투자를 지양한다는 취지에서 입법화되었다. 그러나 헌재는 기본권 제한의 형식과 방법이 비례의 원칙(목적 달성에 적합한 필요최소한의 제한이어야 하며 목적을 위한 침해가 얻어지는 이익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즉, ‘원칙적인 허용과 예외적인 금지 방식’으로 제한해야 할 국민의 기본권을 ‘원칙적인 금지와 예외적인 허용의 방식’으로 제한함으로써 최소 침해라는 기본권 제한의 원칙을 어겼다는 것이다.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을 갖추지 못”한다면 기본권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결정인바, 이는 단순히 ‘과외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선한’ 목적만으로 기본권의 ‘부당한 제약’을 강제할 수 없도록 분명한 기준선을 제시한 판결이었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이 늘상 옳거나 만능인 건 아니다. 예컨대 시류에 휩싸여 법리의 일관성을 놓쳐버린, 전두환 내란행위와 관련된 결정이 그렇다.(「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헌재는 95년 1월 20일, 12·12 군사반란과 관련된 헌법소원에서 79년 12월 13일 국방부 장관의 담화문 발표 시점이 내란행위의 완성 시점이라고 판단하고,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각하·기각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5.18 관련 헌법소원과 관련한 95년 11월 27일의 결정에서는, 이전의 판결을 뒤집고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는 결정문을 확정지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그 기간 동안 재판관들은 한 사람도 바뀌지 않았는데 말이다. 간단하다. 대한민국을 바꾼 새로운 힘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력자나 헌재 재판관들이 만든 힘이 아니라 민중들이 만들어낸 힘이었다. 우리는 헌법적 사안들에 대해서 9인의 헌법 재판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가 궁금해서 그들을 바라본다. 그런데 헌법 재판관들은 오히려 거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헌법적 사안이 “결국은 그 사회의 시대적인 상황·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등에 의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을 바꾸는 힘은 바로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조문은 대단히 추상적이다. 수없이 많은 법률들을 이 추상적 문구로 이루어진 불과 130조의 헌법조문으로써 그 정당성을 일일이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헌법정신은 기계적 법리를 실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해석을 둘러싼 끊임없는 투쟁 과정 속에서 발현된다. 12·12 관련 헌법소원의 경우에도 보았듯이, 헌법재판은 법과 정치의 절묘한 조화 속에 놓여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서부터 ‘해석투쟁’은 시작되며,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을 바꾸는 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헌법재판에 의해서만 위헌법률이 효력을 상실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헌법 재판관들의 결정을 결정하는 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평범한 민중들의 의식과 힘이다. 따라서 저자는, 헌법적 사안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열정이 이 땅에 올바른 법리를 세우고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디딤돌이 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소개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