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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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우리 사회에서 ‘언론권력’이니 ‘신문권력’이니 하는 말이 대중적으로 익숙해진 건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시민단체들의 ‘언론 모니터’ 활동은 일상화되었고 견고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했던 언론사 간에도 ‘미디어 비평’이란 형태의 상호 비판이 전혀 낯설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족벌신문, 조폭언론, 비대신문 등의 용어가 일상어가 되다시피 한 현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사이 언론개혁이나 언론비판의 담론은 이미 상당한 축적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박경만은 왜 새삼스레 ‘신문비판’의 칼을 다시 빼어든 걸까?
우리 신문이 그간 많은 문제점으로 인해 수다히 비판을 받아 그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그건 단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일 뿐 현실적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신문이 지닌 공론장으로서 또 권력 감시견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이 결코 축소되거나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이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딜레마는 우리 신문의 긍정성의 발양을 최대한 지원 격려함과 동시에 그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비판해가는 것으로 해소해가는 길밖에 없다.
이 책은 바로 그 후자의 몫에 충실하고자 한 작업으로, ‘불량신문’들이 저지르는 여론에 대한 의도적 조작과 왜곡 사례들을 집중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독자 대중의 의식을 ‘꼭두각시’로 만든다는 점에서 이러한 조작과 왜곡은 ‘소리 없는 폭력’에 다름 아니라며, 그 수법을 낱낱이 날것의 사례로써 증거해 보인다. 저자가 18년 가까이 편집기자로 신문 제작의 일선에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조작과 왜곡의 회로들이 신문지면에서 실제 어떤 양태로 나타나는지를 까밝히는 까닭은, 독자들이 조작과 왜곡의 메커니즘을 꿰뚫는다면 언론의 조작 시도 또한 무력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편집 낯설게 읽기, 그리고 생생한 사례들
불량신문의 조작된 언어, 통제된 언어, 기만적인 언어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신문언어의 ‘낯설게 읽기’가 필요하다. 이는 기존의 의미와 이데올로기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부정’의 읽기다. 특히 하나의 기사가 탄생하는 최종 관문인 ‘편집’ 낯설게 읽기야말로 조작의 회로들을 간파해내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왜냐하면 편집은 한 신문의 가치관과 사상이 농축된 이데올로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편집 낯설게 읽기의 네 가지 핵심 요소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신문에 실린 뉴스의 크기가 적절한가. 불량신문에서 뉴스가치나 크기의 결정은 공익보다는 언론사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둘째, 뉴스의 제목이 적확하게 달렸는가. 같은 기사라도 어떤 제목을 붙이는가에 따라 독자의 현실인식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셋째, 뉴스를 담은 틀은 공정한가. 불량신문은 자사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건이나 이슈를 선택과 각색을 통해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넷째, 지면이 지나치게 선정적이지는 않은가. 지면에 선정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뉴스가 많이 실리는 것은 언론의 사회적 책임보다 상업주의 쪽에 무게가 실렸기 때문이다.
대중조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을 믿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 네 가지 요소는 대중을 믿게 하는 편집 메커니즘의 핵심 요소이다. 이 창을 통해 세상을 본 독자는 사실과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저자는 이런 조작과 왜곡의 현장들을 풍부한 사례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자칫 지루한 원론 반복에 그치기 쉬울 수도 있는 ‘언론 뒤집어보기’를 2002년 대선 당시로부터 탄핵 정국, 촛불시위, 17대 총선, 행정수도 이전 정국, 4대 개혁법안,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05년 7월의 홍석현 X파일 사건에 이르기까지 익히 알려진 예들을 통해 접근한다. 이 또한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에만 국한하지 않고 유영철 연쇄살인, 불량만두 파동, 일진회 보도, 대구 지하철 참사, 연예인 X파일 사건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사건 사례들도 다루었다.
이렇듯 다양한 사례들과 이들을 매섭게 분석해낸 저자의 솜씨를 통해 독자들은 무심히 읽어 넘겼을 기사들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접하게 될 지면들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마치 매트릭스의 실체를 깨닫고 난 후 아름답고 화려한 배경들이 실은 수많은 이진법 기호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기호들 뒤에는 어둡고 비틀린 진짜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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