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보는 시선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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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역대 서양미술사에서 벌거벗은 남성의 몸에 대한 관심이 결코 사라진 적이 없었음에도, 오늘날까지 일반적으로 ‘누드’든 ‘나체’든 그것은 당연히 ‘여성의 누드 혹은 나체’를 가리킨다. 남성 지배 사회에서 이 벌거벗은 여성의 재현물은 성적인 함의를 지닌 관음증적 태도가 반영되어 있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통제와 지배를 보여주는 이미지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적용해보면, 벌거벗은 남성의 재현물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역설적으로 해당 사회가 지닌 사회적ㆍ정치적ㆍ성적 이해의 관점을 읽어내는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저명한 미술비평가인 에드워드 루시-스미스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 『남자를 보는 시선의 역사』는 한갓 ‘남성 누드 화보집’ 따위가 아니다. ‘남성 누드’를 키워드로 한 ‘남자 바라보기’라는 독특한 접근방법을 택하고 있는 이 책은, 회화ㆍ사진ㆍ조각을 비롯한 모든 장르에서 다루어진 남성 누드의 형태미와 미술적 가치뿐 아니라 복잡한 사회적ㆍ정치적ㆍ성적 맥락을 샅샅이 훑어 내려간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그리고 아홉 개로 구성된 각 장은 영웅, 여성화된 남성, 앤드로자인(남녀양성), 야만인, 희생자, 동성애자, 소년 등 각 시대와 문화가 바라본 남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모두 관통해가며 일관된 질문을 던진다.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남성 누드’라는 거울을 통해 본 사회와 가치관의 변화
남성 이미지는 서양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성 이미지를 재현한 누드 작품들은 단지 성적 맥락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핵심 가치관을 투영하는 기제였다. 따라서 저자는 “남성 누드가 단지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에 대한 기준을 드러내는 수단만이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남성 누드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데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주의 시기에 남성 누드는 완벽한 표준이 되는 ‘미의 척도’였다. 예를 들어 <안티노오스 상>(도판 17)에서처럼 실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듯한 완벽한 비례와 다소 여성스럽기까지 한 아름다운 곡선이 두드러진다. 이는 고전주의 시기의 이상주의와 그 이상을 남성성의 지향점으로 삼았던 시대 분위기를 잘 반영해준다. 반면 근대 이후 남성성은 현실에 눈을 돌린다. 그리고 이에 힘을 더해준 것이 사진술의 발달이다. 사진은 이상적인 남자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현실의 남자를 전혀 왜곡하지 않고 드러내준다.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공을 던지고 치는 남자>(도판 37)의 연속사진은 역동적이지만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심지어 왜소하기까지 한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근대 이후의 남성 누드는 때로 신화와 영웅을 적극적으로 창조해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헤라클레스 같은 신화 속 인물에게서나 존재할 법한 강한 근육질의 영웅은 영화 <코난>과 <터미테이터>로 유명해진 슈워제네거(도판 54) 같은 보다 구체적인 영웅으로 재탄생한다. 영웅을 막연히 동경하기보다 스스로 창조해내는 시대로 변화한 것이다.
고전 시기에서 근대까지 남성 누드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이상적인 아름다움에서 남성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것이다. 누드 작가 스스로 자신의 알몸을 작품에 드러내기도 하고(도판 136), 극단적으로는 자위를 하는 모습을 스케치하기도 하며(도판 137), 동성애적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기도(도판 152) 하는 등 남성 누드를 세계와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시키고 있다. 그 속에서 남자는 하나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때로는 강한 영웅이지만 때로는 한없이 무력하고 나약한 인물이 되고, 한편에서는 남성적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나 여성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상에서 현실로 내려오면서 ‘남성 누드’라는 영역 자체도 예술, 상업, 현실 비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어찌 보면 페미니즘의 태동과 함께 여성의 자기정체성이 재평가됨에 따라 여성이 단지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다양한 얼굴을 가진 성의 주체가 되고 있는 것처럼, 남성 역시 숨어 있는 자신의 다양한 얼굴들을 찾고 있는 과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가 밝혔듯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미완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아주 유효한 아홉 개의 열쇠를 쥐게 된 셈이다. 이제 그 열쇠들은 남성들이 사회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재평가하고, 남성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이 때, 남성이란 어떤 존재인가, 남성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시대의 눈과 함께 갈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
저자소개
옮긴이 정유진: 이화여대 사학과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논문으로는 팝아트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연구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 나타난 원본성 개념의 확장」이 있다. 한국미술연구소 객원연구원, 목금토 갤러리 큐레이터,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전시) 학예연구사, 안산 어촌민속전시관 학예연구사로 일했으며, 현재는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다. 미술 관련 글과 책을 번역하고 있는데, 옮긴 책으로는 『옥스퍼드 20세기 미술사전』 『몬드리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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