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 120세, 축복인가 재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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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최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한 관심들 가운데 하나는 ‘단지 죽음이 유예된 데 불과한 것으로서의 삶’이었으며, 그 유예기간은 과연 얼마나 길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의학의 발달로 오늘날엔 인간의 평균수명이 최대 120세까지 연장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아마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생명연장의 가능치를 최대한 늘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 산다는 것은 마냥 좋기만 한 일일까? 무조건 환영할 만한 ‘선’인가? 아니,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왜 오래 살아야만 하는가? 장수가 결코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은 또 왜일까? 이 책의 저자 크리스틴 오버롤은 바로 그 접점에서 생명연장의 쟁점들을 화두로 삼는다. 지금까지 생명연장을 둘러싼 논의들이 주로 ‘가능한지’ 혹은 ‘어느 정도 가능한지’를 묻는 기술적 전망에 주목했다면, 이 책은 생명연장이 과연 ‘바람직한지 아닌지’ 가치론의 문제로 시선을 돌려놓고 있다. 생명연장은 단지 생물학적 사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맥락과도 긴밀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도 다른 모든 종과 마찬가지로 죽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데 바탕을 둔 생명연장반대론과 모든 개인은 더 오랜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는 생명연장옹호론의 입장을 두루 검토한 뒤 나름의 ‘적극적 생명연장옹호론’이란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반드시 죽어야 할 의무 -생명연장반대론
“당신이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뮤리엘 스파크의 『메멘토 모리』에 나오는 말이다. 어찌 보면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이 당연한 명제는 생명연장이 현실적으로 논의되면서 그 반대론의 입장에 선 사람들이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생명연장반대론자들은 모든 생명체에게 ‘죽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특히 인간에게 이것은 ‘도덕적’ 의무이기까지 하다고 주장한다. 낡은 세대는 새로운 세대를 위해 당연히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노년 세대를 일종의 ‘짐’으로 보는 이 관점이 연령차별주의, 성차별주의, 장애차별주의, 계급차별주의를 내포한다고 주장한다. 즉 상대적으로 사회적 효용이 낮아진 노인에 대한 차별, 노년 세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 육체적으로 불편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 일생을 통해 낮은 삶의 질에 허덕이는 억압계급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생명연장반대론의 더 결정적인 주장은 인구과잉과 자원의 한계에 근거한 것이다. 즉 생명연장으로 인해 한정된 자원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어 인류 전체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원의 한계가 매우 중요한 사안임을 인정하면서도, 과연 아직 존재하지 않는 먼 미래세대를 위해 현재의 삶을 당연히 포기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는 의심스럽다고 반박한다. 그 외에도 연장된 삶이 가져오는 권태의 문제 등 반대론이 포함하고 있는 여러 주장들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비판한다.
더 오래 살아야 할 권리 -생명연장옹호론
“삶에서 가장 불공평한 것은 그것이 끝나는 방식이다. 삶은 고될 뿐 아니라 무척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만든다. 그 결과 당신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죽음이다. 그게 무슨 보너스라도 되는가?”
저자가 서문에서 인용한 익명의 인터넷 글이다. 생명연장이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생을 통해 한 개인이 영위하는 ‘삶의 질’이 기득권 계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는 데 있다. 더 오래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생면연장옹호론의 주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옹호론은 무조건적인 생명연장, 예를 들어 의식불명 상태에서 의학적 처치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생명연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랜 시간이 주어진다면 개인의 자아실현이 가능한 ‘건강한 생명연장’을 지지한다. 하지만 저자는 옹호론이 ‘생명의 본질적 가치’나 ‘천부적인 삶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건강한 생명연장’이란 단지 생명 그 자체가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복지권’으로서 삶의 권리를 말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적극적 생명연장옹호론’이라고 명명한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수명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원, 연구, 서비스를 이끌어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수명을 극대화하도록 접근하고 사망률을 억제한다. 즉 노화와 같은 부정적인 증상을 제거하거나 완화하고 마지막까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함으로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건강하게 살도록 해준다.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고령자들은 이미 인생에서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가정은 잘못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현재 평균수명이 낮은, 사회적으로 불리한 집단의 구성원들(여성, 장애인, 가난한 사람들, 소수인종들)의 수명을 증진시키는 데 특별히 중점을 두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도와주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한다. 노인들은 결국 젊은이들의 부모, 조부모, 친구, 동료 이외의 ‘다른’ 집단이 아니다. 그리고 누구나 언젠가는 노인이 되어 도움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만약 생명연장이 바람직하다고 한다면 과연 어느 정도까지가 바람직한 것일까? 영원한 삶도 바람직한가? 저자는 마지막으로 영생의 문제를 다루면서, 생명연장반대론에 근거한 무조건적인 반박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아직 영원한 삶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현재 사실상 문제가 되는 것은 현실적인 맥락 안에서의 생명연장이며, 기술적 전망만 보았을 때 아직 평균수명 120세가 최대 한계치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는 생명연장의 논의를 다루면서 연장된 노년의 삶, 소외받는 계층의 삶, 불평등한 사회구조 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지, 생물학적으로 무한한 생명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 책이 단지 인간의 수명 연장에 대한 논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질’과 ‘평등’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죽음을 인식하는 것은 곧 삶을 인식하는 것인 셈이다.
저자소개
옮긴이 김영범: 김영범은 현재 서울대학교 미학과 대학원에서 예술 이론을 전공하고 있으며, 번역과 집필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체 게바라와 마오쩌둥』 『그림으로 이해하는 동양사상』(근간)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상호부조론』 『악마 4부작』 『끝나지 않은 여행』 등이 있다. 안재진 안재진은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일의 발견』 『타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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