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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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오늘날 세계는 날마다 미국을 먹고(맥도날드 햄버거를), 마시고(스타벅스 커피를), 입는다(리바이스 청바지를). 미국에 관한 것이라면 대통령 선거이든 할리우드 스타의 스캔들이든 늘 세계의 관심사가 되며, 미국이 뭔가를 결정하면 그것은 곧 이 지구제국의 룰이 된다. 이토록 막강하고 유일무이한 힘과 영향력을 지닌 미국이 망해가고 있다? 과연 그런가? 어떤 쇠망의 징후가 있기에? 그렇다면, 종말의 길로 들어서게 된 원인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고 있는 이 책은, 탁월한 정치사상사 연구로 대학에서 정치사상사가 독립된 학제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닐 우드Neal Wood가 숨을 거두기 직전 탈고한 마지막 저작이다. 저자의 저작 중에서도 가장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이 인상적 에세이는, 미국 사회를 새로운 참주정(僭主政, tyranny) 체제로 규정하면서 거기에 잉태된 ‘종말의 씨앗’을 낱낱이 지적해 보인다. 결코 미국은 따라가야 할 미래 모델일 수 없다는 경고와 함께.
'자본주의’에 관한 최대의 사기극
19세기 이후 현재까지 경제를 작동시키는 원동력이자 개인들의 상호의존, 나아가 사회적 통합의 진정한 기반이라고까지 여겨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탐욕’이 아닌 ‘이익’이라는 말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인간행동 최악의 특징이며 사회질서 유지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여겨왔던 탐욕은 이제 점잖은 옷을 차려입고 전혀 다른 것으로 변장하게 된 것이다. ‘탐욕’은 멋진 양복을 걸쳐 입고 ‘이익’의 개념 뒤에 숨어서, 탈선적인 인간행동은커녕 정상적이며 또 정당한 사물의 질서가 되었다. 이제 자본주의적 심성이 거침없이 달려 나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된 셈이다. (62-63쪽)
구 소련의 몰락과 중국의 시장개방 이후, 미국의 자본주의는 이제 만고불변이요 최선의 당위명제인 양 공고화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익’의 미덕에만 매몰되도록 그 이면의 탐욕과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재난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않게 만드는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심성에 대해 격렬한 비판을 쏟아낸다. 자유시장, 최소 정부, 산업자본주의 경제와 같은 개념을 통해 마치도 자본주의를 지지해주는 이론적 근간의 하나인 양 상찬되는 애덤 스미스의 학설들도 무지막지하게 단순화된 채 왜곡 선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곳곳에 보이는 “자기 이익만 좇는 행태에 대한 분노에 찬 언급”들이 보여주듯,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애덤 스미스가 생각했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자유와 정의의 자연적 체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것이다. (47-64쪽: 왜곡 선전되어온 애덤 스미스)
자본주의에 잡아먹힌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절차적 측면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람에 민주주의의 내용에 있어서 결정적인 성격이 뒷전이 되어버렸고 대중들에게나 식자들에게나 민주주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가장 중요한 경제적 기능은 자본주의에, 정치적 기능은 그 파트너인 민주주의에 배당하는 식의 기묘한 노동 분업을 통해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부하로 전락해버렸고, 자본주의의 정치적 반영물이 되어버렸다. 민주주의는 점차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다른 모습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사회적 평등, 정치적 평등, 심지어 법 앞에서의 평등(절차로서의 민주주의의 특징이라고 그렇게도 떠들어온)마저 내다버림으로써, 민주주의는 이제 완전히 거세된 것이다. (86쪽)
저자는 자본주의의 심성이 형성되면서, 이제 민주주의란 “정기적인 자유선거로 뽑힌 인민들의 대표들에 의한 정부”라는 정도의 의미로 변해 개나 소나 그럴듯한 포장용으로 갖다붙이는 용어가 되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공통점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황당하게도 이 둘이 똑같은 것이거나 서로가 서로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공화주의’라는 알맹이를 거세한 ‘이빨 뽑힌 민주주의’로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은폐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
거세된 민주주의와 괴물이 된 자본주의에 장악된 미국이란 제국은, 긍정적 의미의 ‘외부의 공포’를 갖지 못한 로마제국이 멸망의 길에 들어섰듯이, 더 이상 어떤 경쟁자도 없는 유일의 초강대국이 됨으로써 스스로 종말의 싹을 잉태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미 계급사회로 굳어진 미국의 빈부격차와 범죄율 등의 수치들을 낱낱이 들추며 그 징후들을 읽어내면서 가장 주목할 것은 무엇보다 미국 정치의, 민주주의의 급격한 쇠퇴 혹은 타락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예들 가운데 하나로 든, 이번 미국 대선을 통해 비로소 그 막강한 힘이 세계에 알려진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문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예견을 접하면서 저자의 통찰력 있는 경고의 의미를 새삼 주목하게 된다.
미국 정치의 암담한 상태를 잘 보여주는 것은 기독교 우파가 전국적 차원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 미국은 이제 전 지구의 강대국이 되었는지라 악마의 주요 타깃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이 처한 여러 골치 아픈 문제들의 원인은 악마라는 것이다. 이 악마의 공격을 물리치고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모두 함께 종교로 돌아와서 기독교적 신념과 가치를 강화하여 우리 스스로를 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이러한 기독교 우파의 극단적인 보수주의와 종교적 근본주의는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악마들이(주로 진보주의로 변장하여 나타나는데 최근 심각한 위협이 되도록 창궐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미국적인 소중한 가치들에 대해 공격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악마들과 맞아 싸우기 위해 이들은 미국 남부와 로스앤젤레스, 미국 북서부에 걸친 도시 교외지역 등에서 공화당 조직에 확실하게 침투했다. (194~195쪽)
저자소개
옮긴이 홍기빈: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외교학과 대학원을 거쳐 현재 토론토 요크 대학 정치학과에서 일본의 지배블록, 소유구조, 금융체제의 변화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가 있고, 편역서로는 칼 폴라니의 『전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조나단 닛잔과 심숀 비클러의 『권력자본론: 정치와 경제의 이분법을 넘어서』 등이 있다. 종종 『프레시안』『대자보』 등의 온라인 매체와 『월간 말』지 등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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