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로 읽는 한국사회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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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이 책은 광고사(廣告史)가 아니다. 일제시기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단지 광고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다. 광고란 정보와 오락성을 담은 커뮤니케이션의 하나지만, 동시에 상업적 발언인 광고는 해당 시기의 소비욕망뿐만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정서, 생활상의 필요, 경제적 여건, 문화적 욕구 등을 반영하며 또 그것들로부터 제약될 수밖에 없다. 즉, 당대 삶의 흔적, 특히 그 욕망을 가장 예민한 촉수로 잡아내는 광고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확인하게 되는 ‘그때 그 시절’은 우리 근현대사의 또다른 측면에 대한 유쾌한 회고를 선사해준다.
물론 광고에 구현된 현실(또는 이미지)은 실제 현실의 한 측면을 특화 ․ 과장해낸 ‘가상 현실’이기 십상이므로, 이를 매개로 당시의 현실 사회문화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본원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가상 현실은 그것의 재료가 된 실제 현실을 거꾸로 되짚어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는 역설 역시 성립된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따라서 특정 시기의 공익광고에서 당시의 지배적 가치관을 읽어내거나, 행진곡 풍의 진로 CM송에서 개발독재기의 동원 이데올로기와 그에 대한 자기 위안을 엿듣거나, 어렵던 시절의 추억과 정서를 자극하는 쌍용그룹의 기업이미지 광고에서 보릿고개를 넘긴 이의 여유 속에 녹아 있는 ‘경제 성장’을 확인해내거나 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한국 공익광고의 역사는 매우 불행했다. (…) 정부와 관료들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전파하고 강요하는 수단이 되었고, 행정부가 국민을 직접 조직화하고 관장하거나 정권의 안정을 공고히 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 1980년대 군사정권 아래 공익광고의 주제로 가장 많이 다뤄진 것이 ‘질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대체로 은근한 목소리로 바른 말을 하고 있으니 반박할 여지가 없을 듯하지만, 사실 그 이면의 현실을 가려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 단골메뉴인 교통 ․ 예절 ․ 환경 모두가 근대화 과정에서 파생되는 문제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근대화의 부산물, 악영향에 대한 책임을 시민에게만 추궁하는 뉘앙스를 띤다.(201-206쪽)
탈근대의 ‘N세대’로 되살아난 근대의 ‘모던 뽀이’들
소비문화의 첨병이라 할 광고는 유행과 기호의 변화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감대이다. 유행이라는 광범위한 사회적 동조행동 현상에는 필시 그것을 가능케 한 대중 심리와 사회적 배경이 녹아 있게 마련이며, 그러한 광고의 이면을 탐색한 이 책이 일종의 생활사나 풍속사로도 읽힐 수 있는 이유이다.
근대의 개명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던 ‘모던 뽀이’‘모던 걸’이 오늘날 탈근대의 욕망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는 ‘X세대’‘N세대’로 다시 되살아난 모습에서 그러한 세태 변모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아름다운 근대의 무지개”로 칭송되면서 동시에 ‘모던 걸’이 ‘못된 걸’로 비아냥되었듯, “21세기를 이끌어갈 무서운 아이들”로 불리는 동시에 ‘X세대’에 대해 ‘오렌지족’‘낑강족’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야유되던 것도 닮았다.
‘근대의 계몽’에서 ‘탈근대의 욕망’까지
저자는 “우리 광고들 중에서 당시 영향력이 컸던, 혹은 인구에 회자한 개별 광고들을 모은 후 당시 상황과 맥락에 따라 줄기를 잡아”“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서술에 실어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부분적으로는 테마별 서술인 대목에서 엇갈리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가급적 통사적 배열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렇게 구성된 1부 ‘근대의 새벽’, 2부 ‘보릿고개를 넘어’, 3부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에서 각기 특징적인 대목 하나씩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1부(계몽이 절실했던 시절의 한 광고): 33-34쪽
“한국인은 병인(病人)이오 한국 세계는 병세계”라는 진단이 널리 퍼지면서 약을 지어 동포에게 먹여야 한다는 은유가 일반화되었는가 하면 (…) 국가의 원기를 회복하는 데 약이 필요하다면 “나라를 맛튼 자”인 나에게도 의당 약이 필요할 터였다. (…) 그래서 구토 ․ 소화불량 ․ 멀미 등에 특효가 있다는 약에 ‘자강단(自彊丹)’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동포(我同胞)의 자강정신을 배양하기 위하여” 특별히 제조했다고 광고하기까지 했다.
* 2부(배고팠던 시절을 돌아볼 만큼의 여유가 생긴 시절의 한 광고): 139-142쪽
쌀보다 보리가 더 많이 섞여 거무스름한 양철도시락에는 대각선으로 밥에 파묻힌 젓가락과 단무지가 담겨 있다. 한 줄의 헤드라인 카피는 “오늘은 속이 불편하구나”다. (…) 스승의날 광고이면서 스승의날이라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고, 쌍용의 광고이면서 쌍용이라는 단어는 전혀 안 들어간 광고 (…) 이 광고는 그 당시 집행된 그 어떤 기업의 광고보다 월등히 높은 주목률과 기억도를 불러일으켰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담담한 대화처럼, 우리가 지나온 시절의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주었을 뿐이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한 편의 광고가 시보다, 소설보다 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 3부(청소년이 소비자로 등장한 시대의 한 광고): 282-283쪽
광고를 봐선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광고들이 등장했다. 앳된 남녀 학생들이 도리도리를 하는 광고가 있는가 하면, 뚱뚱한 얼굴 없는 인형이 문틈에 끼어 해프닝을 벌이는 광고도 있다. (…) 신세대들에게 이동통신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휴대전화는 그들의 존재증명이며 그들의 아이덴티티이다. (…) 우리는 바야흐로 매체가 생활을 바꾸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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