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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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사람들마다 가슴속 한켠에는 환상의 자리가 있다. 그 ‘환상’이야말로 꽉 막힌 듯 느껴지는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숨은 힘인지도 모른다. 니체에 따르면, 환상은 현존재(자)를 절망과 허무(vide)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다. 환상을 “속임수이자 오류이며 동시에 신비한 작용”이라 특징지으면서도 단순한 착각과 구별하려는 것은, 이처럼 환상이 우리 욕망(desire)의 한 부분(몫)이자 이를 만족시키는 수단이기도 한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환상은 미혹에 사로잡힌 생각이 아닌 허깨비 같은 이미지다. 우리를 환상(幻想)으로 이끄는 데에 환상(幻像)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현실과 교접하는 문화의 이면에 또아리를 튼 환상(幻想)이 허한 글과 휘한 그림으로 토해낸 환상(幻像)의 힘 때문일 것이다. 통상 글과 이미지가 공존할 때 사람들의 시선은 분산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저자는 “상상의 분산, 관념의 확대”라고 해석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이 가득했던 중세 성경과 불경의 예에서 보듯이, 분산되는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은 천국도 지옥도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와 도상을 통해 독자에게 말을 건다. “자, 이제 당신 마음속의 환상을 펼쳐봐!”라고.
이미지와 도상으로 읽는 문화사
장소도 따로 필요 없고 전기세를 지불할 필요도 청소를 할 필요도 없는 지상(紙上) 박물관. 이곳에서는 총 6개관에 걸쳐 39가지 테마전(展)이 펼쳐진다. 첫번째 관은 ‘상상관’.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잉태되어 현실의 삶에까지 뿌리를 얻게 된 ‘요정’ 이야기부터 깨달음으로 가는 신비한 음료 ‘소마’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상상력이 힘을 발휘한 주제들을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저자의 전방위적 지식과 이에 짝을 이루는 도판들로 풀어낸다. 상상관을 지나 예술관에 이르면, 아돌프 뵐플리를 비롯한 이른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통해 환상 공간이 펼쳐진다. 20세기 아웃사이더 아트의 최고 걸작이자 어쩌면 인류 미술사와 문학사를 다시 쓰게 할지도 모를 총 1만5145쪽 분량의 헨리 다거의 『비현실의 왕국에서』를 소개하며 저자는 자신의 도상상에 대한 생각도 함께 풀어놓는다.
전쟁이 끝나고 ‘비현실의 왕국’에는 평화가 와서 세상은 낙원이 된다. 어쩌면 그가 평생 꿈꾸었던 세상,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인지도 모른다. ‘도상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도상학은 언어가 잡아내지 못하는 인간의 추상적인 사념(思念)을 읽어내어 감추어진 진실을 밝혀낸다. 그러나 그 진실은 ‘비현실적 낙원’이어서 언제나 아득하기만 하다. (본문 95쪽)
계속해서 이어지는 지역관, 역사관, 종교관, 문화관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종로’ ‘풍수’ ‘복권’ ‘다방’ ‘샤머니즘’ ‘프리메이슨’ ‘테러’ ‘엽기’ ‘문신’에 이르는 테마전들을 접하다보면, 독자들은 예로부터 바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화사의 이면에 새겨진 ‘비현실적인 낙원에 대한 동경’의 섬세한 무늬들을 마주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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