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疏外)에서 소내(疏內)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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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하나의 (문학)작품을 통해서 어떤 의미들을 건져내는가 하는 문제는 어부가 어떤 그물을 엮어 바다에 던지는가에 달려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끌어올리는 의미들은 하나같이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삶의 애환이다. 그는 도대체 어떤 그물을 던지고 있을까?
이 질문의 핵심에는 저자의 조어인 소내(疏內)라는 개념이 있다. 그리고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이전 저작인 『초월에서 포월로』에서 포월(匍越)의 뜻을 곱씹어보는 일이 필요하다. ‘초월’이란 말그대로 한계와 표준, 그리고 현실을 훌쩍 뛰어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삶을 하나의 언덕에 비유한다면 초월하는 사람은 인간이라는 한계와 범속함이라는 표준, 그리고 ‘지금’ ‘여기’에 주어진 현실을 툭툭 털어버리고 그 언덕을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넘어간다. 그러나 포월하는 사람은 그 범속함을 가지고, 인간된 한계 안에서 버둥거리며, 주어진 현실 안에서 상처받고 도망가고 싸운다. 그는 삶의 언덕을 기어서[匍] 넘어가는[越] 것이다. 현실에 밀착해 고통과 치욕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이렇게 포월하는 과정 속에서 ‘소내’한다.
이 소내는 소외(疏外)라는 개념과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소외를 확장하고 보완하는 개념이다. 인간이 이상적으로 초월하지는 못하고 현실 바닥을 기어 넘어간다면, 바로 그 기어 넘어가는 자리에서, 사람은 그저 소외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방식으로 소내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난 200년 동안에 사상사가 낳은 가장 예리한 개념의 자리에서 가장 상투적인 개념의 자리로 이동한 소외 개념의 한계를 먼저 지적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개념은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과 상처를 서술하기에는 너무나 맹목적이고 공허하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소내하는 인간은 소외의 부정성 속에서 기어가면서도, 그 부정성을 넘어간다. 소외됨의 지독한 부정성을 껴안으며, 또한 그것을 긍정적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사람은 바깥으로부터 소외되어 안전한 안으로 숨어드는 것이 아니라, 내부조차도 언제나 분열되어 있으며 그것을 감내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감내함을 넘어서 슬픔과 상처에 투정부리지 않고 즐겁게 싸우는 인간의 모습이다. 이제 기어 넘어가는 일은 그저 포월(匍越)에 그치지 않고, 소내함을 통해 거칠고 팍팍한 현실을 껴안고 넘어가는 일[抱越]이 된다. 그리하여 저자가 작품 속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절절한 모습은 소외‘되’는 피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소내‘하’는 능동성을 그 바탕으로 한다.
소내하는 문학들
한 예로, <소내(疏內)하는 한의 문학: 박경리>를 보자. 저자는 『토지』라는 바다를 향해 소내의 그물을 던져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건져낸다. 기존의 비평들이 주로 대하소설 ․ 역사소설이라는 투망을 사용하여 『토지』속의 수많은 자잘한 흐름들과 줄기들을 통합하고 도도하게 흐르는 강을 인위적으로 형성하게 했다면, 저자의 작업은 그와 같은 인위성을 비판하고 수많은 지류들이 함께 흘러가고 뒤엉키고 끊어지고 흐트러지는 ‘다하(多河)’소설이 『토지』의 본성임을 드러낸다. 등장인물들 각자의 삶을 역사와 같은 큰 흐름에 포섭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현실 속에서 피땀 흘려가며 안팎에서 싸워나가는 사람들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작업을 통해 소외되었지만 소내하는 수많은 인간들이 하나하나의 작은 강을 이루며 흘러가게 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초월에서 포월로』를 쓸 무렵부터 시작하여 『이상현실 ․ 가상현실 ․ 환상현실-초월에서 포월로 3』까지의 기간에 쓴 글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문학과 관련된 정치적인 현실이나 폭력적인 권력을 분석하고 또 그것과 싸우는 과정에서 씌어진 글들이 한 무리를 이룬다. 이 책에 담겨진 시론과 소설론, 그리고 평론으로 이어지는 총 17편의 비평의 밑바탕에는 소내라는 저자의 시선이 깔려 있다. 이러한 저자 특유의 시선을 음미한다면 독자들은 문학과 세계라는 바다에 던질 또하나의 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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