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시대의 농업통상법
페이지 정보
본문

도서소개
지난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우리나라는 ‘예외 없는 관세화’ 원칙에 대한 특별취급을 적용받아 쌀 개방을 10년간 유예받았다. 물론 의무수입물량에 해당하는 외국쌀을 1995년 5만1000톤부터 2004년 20만5000톤에 이르도록 수입해야 했다. 그뒤 10년, 현재 우리나라는 지난 5월 6일부터 워싱턴에서 미국을 시작으로 쌀시장 개방 재협상을 하고 있다. 우리는 쌀시장을 개방하든지(관세화) 의무수입물량을 늘리든지 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서 있다. 사실 두 가지 경우 모두 한국쌀의 수요를 줄이고 쌀가격을 떨어뜨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국내 쌀값은 국제가격의 4.9배 정도 더 비싼 편으로 국제시장에서 자유경쟁 아래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여 공식적으로는‘관세화 유예 연장’의 입장을 밝힌 정부의 고민과 관세화를 막기 위해 억센 팔뚝을 걷어붙이고 ‘농업 사수’를 외치는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맞는 통상법 개념이 절실함을 느꼈고,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농업통상법의 해석 및 적용사례 등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을 때 쌀 협상뿐 아니라 이후 농산물과 관련된 협상에서 보다 기민하게 우리 농업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쌀시장 ‘자동관세화론’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쌀시장 개방 재협상을 2004년 내에 타결하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관세화로 가게 되어 쌀시장을 개방해야만 하는 법률적 관계에 놓인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해석의 타당성에 이의를 제기한다. 농업협정 부속서의 원문을 직접 인용하여 조목조목 따져가며 자동관세화론이 근거 없는 해석임을 드러내고 있다. 즉, 관세화 예외의 계속 여부는 협상 당사자의 의지에 달려 있지 시간의 흐름과 같은 비의지적 요인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해석은 우리가 직면한 국제시장의 압력에 대응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며, 앞으로 우리 농업을 살리기 위한 정책 마련에도 기여할 것이다.
WTO 농업통상법의 유래
저자는 WTO 농업통상법이 자본의 논리에 따른 대량생산 체제인 ‘고투입농업’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1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950년대부터 등장한 고투입농업은 흙과 물을 더럽히고 농약과 성장호르몬이 잔류한 식료를 생산했다. 대량생산을 위해 외부자본을 끌어들이면서 농업과 지역사회의 유대를 끊어버렸다. 여기에 농산물의 낮은 가격탄력성으로 인해 공급이 늘어 가격이 떨어졌음에도 수요가 늘지 않아 농장의 소득이 불안해졌다. 이것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 바로 미국과 유럽연합의 농업법이다. 저자는 2,3장에서 미국과 유럽연합의 농업법을 다루면서, WTO 농업통상법이 고투입농업 구조에 따른 과잉생산물 처리라는 이해관계에 얽힌 미국과 유럽연합의 갈등과 타협의 소산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WTO 농업통상법의 해석과 적용
4장에서 7장은 WTO 농업통상법을 국내 지지, 수출보조금, 시장진입, 그리고 식료 및 동 ․ 식물 위생검역조치라는 네 가지 전통적 틀을 좇아 해석하고 이를 통상 분쟁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판례를 통해 살피고 있다.
첫째, 국내 지지 규정은 WTO 회원국이 자국의 농업지지정책을 금액으로 환산하여 그 액수를 줄여나가는 틀이다. 이렇게 WTO 농업협정에 국내지지 감축 의무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연합은 종합지지총액을 정하는 데 있어서, “생산제한을 조건으로 지급하는 직접지불금을 집행”하며 이를 예외로 두어 종합지지총액 계산에서 제외시켰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연합은 국내지지 감축 규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둘째, 수출보조금은 자국의 수출 활성화를 위해 국가가 수출업자에게 직 ․ 간접적으로 금전적인 혜택을 주는 것이다. WTO 농업통상법이 공정한 무역에 의한 소비자의 복지를 늘리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면, 모든 수출보조금이 전면 금지되는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농산물 수출보조금제도를 가장 먼저 폐지해야 했다. 그러나 WTO 농업협정은 국제 농산물시장을 교란하는 주범의 하나로 평가되는 미국의 여러 수출보조금제도를 WTO의 이름으로 합법화했다. 그리고는 종래 수출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나라들이 새로 농산물 수출보조금제도를 신설하는 것은 금지했다.
셋째는 시장진입이다. WTO 농업통상법은 모든 농산물을 관세화 했다. 이제 농산물의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시장진입에 혁명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다. 다만 관세화에 있어 두 가지 예외가 있는데, 흔히 세이프가드라 부르는 긴급수입제한조치와 특별취급이 그것이다. 우리의 ‘쌀’이 특별취급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개발도상국이 주식으로 삼고 있는 식량에 대해서는 일정 여건 아래에서 관세화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규정이다. 현재 한국 쌀에 대해 특별취급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앞에서 설명한 대로, 쌀시장을 전면 개방해 관세화로 갈 것인지, 특별취급 아래 의무수입물량을 늘릴 것인지) 쌀 수출국들과 국제협상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위생검역조치이다. 광우병 ․ 조류독감 ․ 구제역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질병과 유해 동 ․ 식물의 침입을 막는 첨병 역할을 해주는 위생검역조치는 매우 중요하다. 각 나라들은 자국의 환경에 맞는 위생검역정책과 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코덱스가 정하는 식료표준이 식료에 대한 위생검역 기준이 되고 있어, ‘정당하지 않은’ 위생검역조치에서 나오는 무역제한을 철폐하거나 크게 줄이려 했던 미국의 목적대로, 이제 더 이상 WTO 회원국들의 독자적인 위생검역조치는 크게 위축되었다.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하여
8,9장은 고투입농업에 대응하는 개념인 ‘지속 가능한 농업’의 눈으로 WTO 농업통상법과 우리의 정책 등을 살핀다. 지속 가능한 농업이란 더 많은 생산과 더 많은 소비를 추구하는 주류경제학의 세계관을 떠나 인간의 요구와 자연자원 보전 간의 조화를 꾀하는 농업이다. 유럽 공동농업법 등은 점차 환경과 지역사회에 친화적인 농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저자는 우리의 농업정책과 법률의 적용 역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가 2002년 중국의 휴대폰 수입금지라는 보복에 굴복하여 중국 마늘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를 포기한 것이나, 지역 농산물을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게 하는 학교급식법 개정을 WTO 농업통상법을 들어 반대하는 것과 같은 태도가 이러한 새로운 농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서술한다. WTO 체제하에서 우리의 환경과 농업과 지역사회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질문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당신의 아이들의 아이들이 그들에게도 마땅히 필요할 흙과 물과 공기와 먹을거리와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당신에게 묻게 될 때, WTO에 맡겼다고 답할 것인가?
저자소개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