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입은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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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오페라’라고 하면 왠지 넥타이에 정장을 차려 입고 가야만 할 것 같은 ‘고급 예술’의 이미지가 강한 게 사실이다. 그렇듯 선뜻 다가서기에 어쩐지 부담스럽고 멀게만 느껴지는 오페라를, 저자는 청바지 입고 팝콘 먹으면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예술 장르로 우리 곁에 다가오게 한다. 우리의 손을 잡고 친근한 구어체로 대화하듯이 조근조근 이야기를 건네며, 소박한 오페라 하우스 속으로 우리를 살며시 끌어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각 오페라 작품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제목에 얽힌 이야기는 작품의 윤곽을 슬쩍 드러내어 읽는 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본격적으로 작품을 접할 마음가짐을 준비시킨다. 그리고 저자는 1막을 열어젖히면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추이를 섬세하게 따라가고, 인물들이 부르는 아리아를 소개함으로써 그러한 정서가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출되는지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작곡가와 시대적 배경 등을 작품과 연결지어 소개함으로써 해당 오페라의 총체적인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오페라와의 대화 1: 등장인물과의 대화
오페라와 가까워지는 길은 ‘오페라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질문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예를 들어 다른 인종의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인종의 보편적인 특성에 대해 질문하기보다는 구체적인 한 사람과 친구 관계를 맺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처럼 오페라도 한 작품씩 접해가는 것이 오페라와 친해지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페라 작품 하나와 친해진다는 것은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가는 과정이 된다. 작곡가 ․ 지휘자 ․ 연출가 ․ 가수 등 우리가 만나야 할 대상은 수없이 많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삶의 희로애락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드러내주는 등장인물과 먼저 가까워지길 권한다.
등장인물이 자라난 환경, 지금 그가 처한 상황 등을 이해하다 보면 오페라라는 장르가 그 사람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으며, 오페라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에 대한 관점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곧 작품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고, 개개의 작품들에 대한 이해는 오페라에 대한 이해로 확장된다. 오랜 연출 경험 통해 저자가 풀어놓는 인물들의 이야기, 사람에 대한 고집스런 애착으로 곰삭혀온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오페라를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처럼 느끼게 된다.
오페라와의 대화 2: 시대와의 대화
등장인물들의 환희와 격정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갈 즈음 저자는 우리로 하여금 시대와 만나게 한다. 그 시대와 공간의 문제, 고뇌, 정신들과 조우하면서 우리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조건들이 어떻게 악수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충돌하는지 깨닫게 된다. 로시니의 《세빌랴의 이발사》의 경우 프랑스혁명과 그 작품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접점을 이루고 있는지 보여준다. 전통적인 사회가 해체되어 나가면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맹렬히 경쟁하던 시대, 특히 엄청난 활기를 가지고 떠오르던 신흥계급이 새 사회의 주인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이 작품은 ‘피가로’라는 인물을 통해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을 통해 군대식 지배체계와 상업자본의 전통사회로의 침입이라는 19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상황을 읽어내기도 한다.
이처럼 저자는 작품의 줄거리를 차분하게 펼쳐놓으면서 제목과 등장인물, 시대적 배경에 이르기까지 친절한 안내를 통해 독자들의 ‘오페라 즐기기’를 도와준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줄거리 중심의 사진자료는 마치 객석에 앉아 직접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독자들에겐 오늘의 ‘나’와 그 시대 속의 ‘그(녀)들’이 행복하게 때로는 진중하게 만나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을 지냈던 故 문호근의 3주기(5월 17일)를 맞아 그의 저서 『내가 사랑한 음악 속의 사람들』(1997년 출간)을 개정증보하여 펴낸 것이다. 97년 당시 책에 담지 못했던 4편의 글(토스카/마탄의 사수/운명의 힘/마술피리)을 추가하고 관련 공연사진자료를 대폭 보강했으며, 아내 정은숙(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이 문장을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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