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신․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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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타자성’의 문제는 현대 서구 철학이 직면하고 있는 최대 스캔들 중의 하나이다. 근대 서구 사상사와 주류 문화를 이끌어왔던 합리적 ‘이성’의 신화, 즉 타자를 자기 안으로 흡수시키고 동화시켜온 동일자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늘 이성의 그늘로 황급히 모습을 감추어야 했던 ‘타자’가 해명해 내야 할 수수께끼로 당대 사상사의 무대 전면에 당당하게 등장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커니는 타자성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우리 인간들이 정상성(normality)을 구성하고 그 범주 안에 ‘나’와 ‘우리’를 포함시키기 위해 어떻게 ‘그들’, 즉 타자를 만들어내고 배제시켜왔는가를 추적해 들어감은 물론, 현대 주요 사상가들의 타자성에 대한 연구성과를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서구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신화 및 종교, 인류학, 문학, 철학의 영역을 종횡무진 넘나들면서 20세기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레비나스 ․ 데리다 ․ 리오타르 ․ 크리스테바 ․ 지젝 ․ 하이데거 등이 수행한 타자성 연구의 성과를 보여준다. 여기에 이들 사상가들의 선배 격인 칸트와 프로이트도 등장한다. 커니는 타자성 연구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이들 독창적이며 이질적인 사상가들을 매우 능숙하고 노련하게 다룬다. 현대 대중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와, 우리로 하여금 타자가 재현되는 방식을 가장 자극적인 방식으로 몸소 체험하게 해줬다고 할 만한 미국 뉴욕에서의 9 ․ 11 테러 사건도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벗어나지 못함은 물론이다.
서사적 이해의 필요성
저자는 우리가 제대로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히 ‘서사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서사, 즉 ‘이야기’는 인간의 실존 근거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한자로서의 스스로의 한계를 아는 존재이자 선과 악, 신성과 악마성의 경계에 선 자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경계에 서 있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재구성하고 설명함으로써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왔고,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저자는 특히 타자성의 주요 키워드로 이방인 ․ 신 ․ 괴물을 드는데, 그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 우리 인간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모습들의 투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로 완전히 다른 외양을 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다른 의미를 부여받고 있는 이방인 ․ 신 ․ 괴물의 모습을 서사적 이해의 방식으로 접근하여 그 이면에 감추어져온 타자성의 ‘진실’을 해석학적으로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타자성의 수수께끼를 풀어 바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사적 이해는 서로 적대적인 양극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사닥다리를 얻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고자 저자는 고대 신화와 종교에서부터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등 고대와 현대의 희생양 서사들을 망라하며 자신의 논의를 이어간다. 이것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중도의 길로서의 '판별의 해석학'
타자 혹은 타자성에 대한 접근방식에는 크게 레비나스 등으로 대표되는 절대적 외재성과 크리스테바 등의 접근방식인 완전한 내재성 둘로 나눠 볼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 극단적인 양자 사이에 제3의 길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 길을 통해 타자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중도의 길로 제안하는 것이 바로 판별의 해석학이다.
저자는 고대 미노타우로스에서 중세의 괴물, 그리고 포스트모던한 이방인들까지 흥미로운 예들을 통해 인간의 자아 그 자체가 자주 기괴한 요소들을 담고 있음을 논의한다. 책 전체를 통해 저자는 이방인과 신, 괴물이 단지 신화나 판타지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문화의 무의식의 중심부를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가 우리 내부에서 타자가 어떻게 깊이 반향하는지 더 잘 이해하기 전까지는, 우리 자신의 가장 기본적인 공포와 욕망이 외부 세계에 어떻게 명백하게 드러나는지 이해할 수 없고, 또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배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열쇠는 우리의 괴물들을 죽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에 있다는 말이다. 거기에 괴물들이 결국 스스로와 화해하고 타인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멈추게 만들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누구라도, 그 싸움의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아포리즘에 동의하면서도, 그러나 동시에 괴물을 포용한다는 것이 그들을 우리의 평온한 저녁식사에 초대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환대’할 필요가 있는 괴물들도 있지만, 그 괴물들은 다른 이들의 투쟁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타자가 무조건적으로 환대해야 할 대상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거부해야만 하는 악은 분명 존재하며 따라서 그러한 악을 판별해 내는 것은 타자성을 다루는 모든 연구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차이’는 계속해서 논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저자소개
옮긴이 이지영: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방송대학교 강사이다. 역서로는 『펼쳐라 철학』등이 있으며, 2000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소설 부문)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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