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노희락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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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사상의학은 오독(誤讀)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사상의학은 점점 더 앙상한 인간유형론으로 전락하고 있다. 물론 유형론이라 할지라도 그 유용성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유포되고 있는 사상의학 관련 지식들은 대부분 너무나 형식적이고 단편적이며, 더구나 사상의학(四象醫學)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을 빼먹었기 때문에, 그것을 바탕으로 사상체질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동무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사람의 마음 씀이 내부 장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서부터 시작되는 의학이다. 따라서 우선 사람들의 마음 쓰는 방식이 기본적으로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하고 나서, 이를 바탕으로 임상의학을 전개해나간다. 다시 말해 사상의학의 체질이란, 흔히 생각하듯 몸으로 드러나는 어떤 현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씀의 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애노희락의 심리학』은 바로 이 마음 씀의 방식이라는 지점에서 서 있다. 저자는 동무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전반부에 실려 있는 이 마음 씀의 방식에 관한 내용을 이른바 ‘사상심학(四象心學)’이라 칭하면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예들을 통해 이 ‘심학’을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는 현대적인 심리학으로 풀이해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러한 접근 방식이야말로 사상의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며, 그 진가를 유용하게 받아들이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체질을 아는 것은 출발점을 아는 것이다
물론 이제까지의 사상체질론 역시 마음을 언급하고 있다. ‘태양인은 독선적이다’ ‘소양인은 겉모양만 신경 쓴다’ ‘태음인은 집착이 강하다’ ‘소음인은 소극적이다’라는 둥의 이야기들은 분명 마음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급들은 모두 마음을 고정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즉 마음 씀의 출발점이나 혹은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 드러나는 한 현상을 마치 그 마음의 전부인 양 표현함으로써, 마음을 고정적인 것으로, 인간을 고정된 것으로, 사상체질론을 단순한 인간 유형론으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무 이제마는, 태양인,소양인,태음인,소음인의 마음 씀의 출발점으로 각각 애성(哀性),노성(怒性),희성(喜性),락성(樂性)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각각의 체질이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세 체질의 마음 씀의 방식을 어떻게 배워나가게 되는지, 또한 그 과정에서 올바른 배움은 무엇이고 잘못된 배움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따라서 체질을 안다는 것은 곧 마음 씀의 출발점을 안다는 것, 그리고 이 출발점으로부터 다른 마음 씀의 방식을 배워나가는 방향성을 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체질을 알면 갈등이 풀린다
“이 책은 갈등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씌어졌다.” 『애노희락의 심리학』의 서두에서 저자는 이 책의 집필 의도를 ‘갈등 해소’로 집약하는데, 이는 다시 말해 갈등의 원인이 체질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갈등의 해소가 마음의 안정과 더불어 건강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알았어”라는 아주 간단한 말을 사용할 때에도 체질의 차이가 드러난다. 태양인은 “네 의도를 알았다”, 소양인은 “네 기분을 알았다”, 태음인은 “네 의견을 일단 접수했다”, 소음인은 “네 주장에 동의한다”라는 의미로 각각 “알았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일수록 이러한 차이가 쉽게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이 체질의 차이는 곧 마음 씀의 방식의 차이다. 즉 체질에 따라 세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대해 자신을 표현하는 근본적인 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아주 사소한 말 한 마디에조차 내재해 있다. 따라서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체질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 저자가 이 책의 결론을 “사람 사이의 관계란 노력한 만큼 좋아지는 법이다”라는 말로 요약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도움을 주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면 흔히 내 스스로 내켜하지 않는 부분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행동에 대해서도 노력이 필요하기는 역시 마찬가지다. 어려움에 처한 상대방을 도와주었는데 되레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느냐’는 볼멘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주는 도움과 상대방이 받고자 하는 도움이 서로 틀린 것이다.
소양인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위로나 공감을 원하고, 태음인은 구체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제시해주거나 일의 한 부분을 대신 맡아주기를 원한다. 또 소음인은 ‘상황의 정리’를, 그리고 태양인은 ‘동참’을 바란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려할 때도 이렇듯 자신이 바라는 방식의 도움을 제공하려 한다. 그러니 아무리 마음에서 우러나왔다 하더라도 이렇듯 서로 다른 도움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배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자녀에게 ‘너 그 옷 입고 나가면 남이 흉본다’라고 말하는 것은, 소양인의 입장에서는 배려이다. 아이가 모욕을 받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음인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런 말들이 모두 주체성을 무시하는 간섭이다. 그리고 소음인 아이의 입장이라면, 논리적 근거가 없는 강요이자 언어적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자녀교육도 체질에 따라 달라야 한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는 한 누구나 자기와 다른 체질의 기운을 배우려 하게 된다. 이때 잘못된 배움의 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기운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잃지 않고 꾸준히 유지해 나가는 것인데, 이를 방해하는 최초의 장해물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부모로부터의 교육이다(물론 올바른 길을 찾아줄 수 있는 최초의 가능성 역시 부모의 교육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아이의 체질에 따른 교육이야말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문제인지도 모른다. 자녀의 체질에 따라 유의해야 할 점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태음인 자녀의 경우, 속도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태음인은 지식의 폭을 확보해감으로써 핵심을 찾아내게 되는 성향을 갖고 있는데, 만일 속도를 강요하게 되면 단순히 잡다한 지식을 쌓거나 특수한 경험을 쉽게 일반화하려는 경향을 갖기 쉽다. 반면 소음인 자녀에게는 경쟁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 나름대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소음인에게 대중교육에서의 경쟁은 아무래도 버겁게 마련이다. 또 소양인 자녀에게는 ‘틀렸다’ ‘나쁘다’라는 말을 최대한 줄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렇지 않을 경우 소양인 자녀는 자기 주장을 지키려고 무리하게 논리를 끌어들이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태양인 자녀의 경우는 자존심을 살려주고 자녀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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