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한국사회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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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요즘 운위되고 있는 ‘한국영화 100주년’이란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 영화가 품어온 ‘우리네의 한 세기’가 한번쯤 되짚어짐직한 때인지도 모르겠다(물론 저자 이효인은 한국 영화의 기점을 1903년의 첫 대중 상영에 두는 시각에 반대한 바 있지만). 그러나 이 책은 영화사(映畵史)도 아니며, 그렇다고 영화에는 당대 사회가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라는 ‘반영론’의 궤적을 그저 따라가고 있지도 않다. 그보다는 영화 보기의 즐거움에 당대 사회문화를 포개놓은, 말하자면 해방 이후의 한국사라는 뼈대에다 영화라는 소재만으로 살을 붙여본 책인 셈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영화 속으로 들어가서 역사의 표면에 도착한 후 다시 영화 밖으로 되돌아와서 말을 건네는” 작업인 것이다.
물론 우리네 삶을 영화라는 단일 매개를 렌즈로 하여 들여다본다는 한계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지닌 풍부한 서사성으로 인해 또다른 역사 읽기의 가능성과 즐거움을 얻게 된다는 점을 외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런 측면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영화들이 꼭이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일 필요는 없었다. 이는 각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당대 사회문화 자체의 흐름과 영화에 담겨 보여지는 사회문화적 현상들 사이의 접점에 보다 주목했기 때문이다.
쾌락 * 근대 * 강박 * 여자
역대 한국 영화라는 접근로를 통해 가로질러 들어가본 우리 사회는 쾌락 * 근대 * 강박 * 여자의 4가지 코드로 포착되고 있다(저자는 각 코드별로 그 하위를 대체로는 연대기순의 서술이 되게끔 함으로써 사적 접근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여기서의 ‘쾌락’이란 희열을 향한 본능적인 태도가 아니라, 어지러움과 고통으로 점철된 근대의 세월을 견디거나 회피하는 방식의 하나로 본 은유적 개념이다. 반면 ‘강박’은 우리 근현대사를 짓눌렀던 일제 강점기의 기억으로부터 6.25전쟁, 80년 광주 등 민족적, 이데올로기적 상처를 보듬는 개념이다. ‘근대’라는 개념은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빠르게 변해온 한국사회 내부에서 끊임없이 갈등해온 산업화와 민주적 가치의, 유교적 질서와 서구적 문명의 충돌 등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쾌락 추구라는 은밀한 동기를 가진 것이라고 할 때,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시대의 뒤틀린 욕망을 대신 충족(혹은 소비)시켜주는 희생양이었다는 반성적 시각의 자리에 놓인 ‘여자’가 있다.
근대와 전근대의 충돌과 분열상
해방 이후 막 근대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을 때부터 ‘탈근대’ 운운하던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좌충우돌 걸어온 자취를, 저자는 당대의 영화들을 추적해가며 ‘전근대적 가치와 근대적 가치의 충돌과 그 모순적 분열상’으로 관통시켜 내고 있다.
70년대 초, 유신헌법이라는 도끼에 찍힌 이 땅의 젊은이들은 최인호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별들의 고향>에 열광했었다.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는 세련되지도 날카롭지도 못했지만, 대중문화 차원에서는 은유적인 반항과 도피문화를 즐기던 당대 젊은이들을 위로해주었던 것이다.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지나치게 비약된 영화 내용과 영화 전반에 흐르는 전근대적인 정조에 코웃음 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여기서 시대에 굴종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 그 시절 한국 남자들의 열패감과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추출해낸다. 또한 ‘복고 영화’들이 때로 인기를 누리는 데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순수’를 열망하는 정서가 보편적인 것임을 읽어내거나, 이른바 ‘깡패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을 통해 90년대적 풍요 속에서 사람들의 ‘쾌락의 수용기제’가 폭력이란 코드에 맞춰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데로 나아가기도 한다. 또한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여주인공에게는 전근대적 인습에 대한 도전과 저항이 겹쳐지기도 하지만 기실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로 위장한 여성 학대극에 가깝다거나,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순애가 보여주는 행동과 관념의 이율배반 역시 그러한 혼란과 모순의 분열상에 다름 아님을 아프게 확인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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