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의 영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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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지난 월드컵 때, 유력한 우승 후보인 영국 팀(잉글랜드)이 본선에 올라 경기를 치르는 동안에도 우리는 정작 영국의 국기 '유니온 잭(Union Jack)'을 볼 수 없었다. 다소 낯선 잉글랜드(흰 바탕에 붉은색으로 된 '성 조지 십자가') 고유의 국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드컵 본선에 앞서 우리 대표팀과 평가전을 치렀던 영국 팀(스코틀랜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파란 바탕에 흰색으로 된 '성 앤드루 십자가') . 이렇듯 국제대회에서도 공식 국기 대신 자기 고유의 깃발을 당당히 내세우는 모습은, 거꾸로 지리적인 이유로든(섬나라) 역사적인 이유로든 독자성과 독립성이 강한 내부 그룹들 간의 대립과 갈등을 추스르는 '타협과 조정의 기술'의 제도화가 무엇보다 요긴했던 영국사 특유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가 통합되어 만들어진 국가이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영국은 내부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세력들 간의 충돌과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조건에 처해왔다. 외부적으로도 세계 최대의 식민지 보유국의 지위에서 서서히 물러나면서 여러 나라들과의 외교 문제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국에서 '타협과 조정의 예술'이라는 정치, 특히 의회정치가 탄생하고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대립과 갈등의 조정에 미숙한 우리에게 영국사는 한갓 남의 나라 역사로 그치는 게 아니라 여러모로 시사점이 많은 '모범'으로서의 의미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변화가 혁명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진화적이었다는 것이다. 각종 제도 및 사회구조가 변화된 환경에 별다른 무리 없이 정착되었다는 것은, 1688년 명예혁명 이래로 반란이나 혁명을 겪지 않고서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정치조직이 유지되어왔음을 의미한다. (…) 대다수의 영국인들은 현상유지를 지지하거나, 아니면 변화가 필요할 경우에도 폭력보다는 설득이라는 방법을 선호했다. -'머리말' 중에서
영국사를 보는 관점
이 책은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으로 소위 영제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이 성립된 시점으로부터 1970년대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한 시점에 이르기까지 약 3세기에 걸친 영국 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간 영국사를 보는 관점은 대체로 세 가지로 나뉘어왔다. 휘그적(자유주의적) 관점, 토리적(보수주의적) 관점, 마르크스주의적(사회경제적) 관점. 이 책의 저자 스펙은 대표적인 휘그사가이다. 휘그적 관점은 '진보와 지속'을 중심 개념으로 해서 영국사를 '자유'의 발전 과정으로 파악하면서 의회를 그 주도 기관으로 인식한다. 즉, 의회를 중심으로 국민들이 국왕과 귀족세력에 대항하여 '자유'의 신장을 위해 투쟁한 덕분에 영국사는 세계의 모범이 될 만한 '성공사례'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도 선거권 확대를 위해 참정권 운동을 벌이는 등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국민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국민 대 국왕과 귀족세력이라는 대립구도는 지배계급 대 노동계급의 형식으로 드러난다.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의 요구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비록 위협을 느낀 지배계급이 결속을 강화하고 인민헌장에 확고하게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지만, 노동계급의 요구조건 중 일부는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항은 1847년 제정된 10시간 노동법Ten Hours Act이었다. 이는 애쉴리 경Lord Ashley과 리차드 오스틀러Richard Oastler와 같은 복음주의적 토리들, 존 필든John Fielden과 같은 급진적 개혁가들, 무엇보다도 차티스트들이 한 세대 이상 줄기차게 시행해 온 캠페인 덕분에 얻게 된 값진 성과였다. 10시간 노동법이 의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접한 마르크스는 "처음으로 중산계급의 정치경제가 노동계급의 정치경제에 굴복했다"고 말할 정도로 이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4장' 중에서
또한 20세기 들어서 발생했던 하원과 상원의 잦은 대립도 의회를 중심으로 한 국민들의 국왕과 귀족세력에 대한 빈번한 권리에의 요구에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들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비록 1910년 1월에 실시된 일련의 보궐선거에서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었지만, 자유당은 예산안 문제와 관련하여 상원과의 대결양상을 확고히 했고 이들이 내세운 안을 새로 구성된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상원의 권한 범위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미결된 채로 남아있었다. 교육법안이 부결된 이후 상원의 거부권을 제약하기 위한 계획들이 마련되었지만 결국에는 무산되었다. 1911년 이것은 의회법안으로 부활되어 마침내 재정문제에 대해 상원이 갖고 있던 거부권을 박탈할 수 있었다. 이제 상원은 하원에서 다수결로 통과된 법안에 대해 단지 2년 동안만 시행을 지연시킬 수 있었다.-'7장' 중에서
그러나 저자는, 상대적으로 의회 중심의 정치사적 서술에 집착하는 전통적인 휘그사가들과는 달리 매우 융통성 있는 접근태도를 보여준다. 사회의 흐름과 변화를 중앙 정치무대에 국한된 단선적 과정이 아니라 국민들과 의회의 부단한 상호작용에 보다 주목하면서 읽어간다거나, 이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인 요인에 대한 관찰 역시 폭넓게 수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열린 휘그사가'라 할 수 있다.
이런 태도는,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경제 재건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들여오려 했을 때 영국 국민들이 이민자들을 거부하다가 결국엔 인정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저자는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여유가 있던 영국인들이 이민자들에게 자기 몫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쫓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영국의 경제가 극도의 침체기에 빠졌을 때 대규모의 노동자 시위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도 그들에게 제시된 복지정책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만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클럽문화를 발달시킬 여유가 있었던 것이 주된 요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공존' 의 역사 그리고 참여민주주의의 힘
이 책을 통해 본 영국사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로 '진보와 보수의 공존'을 꼽을 수 있다. 18세기 초에 영국의 역사는 보수적인 성격의 토리당과 자유주의적인 성격의 휘그당이 종교와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은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세기에는 보수당, 자유당,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노동당이 등장해 교육 문제, 계급 문제, 보호관세 문제 등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이처럼 영국의 정치 구조는 진보와 보수의 경쟁과 이들의 타협을 중심으로 변화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의회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통해 영국의 정치 구조는 군주정에서 의회정으로, 일당 독재에서 양당 통치로, 양당 통치에서 3당 통치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당대의 흐름에 적응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단지 의원들만의 이합집산이나 세력 다툼에 의해서가 아닌 '국민투표'나 '의회투표'의 결과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크다. 내각에 대한 불신임을 국왕에 요청할 수 있는 제도와 의회 내 투표로 상대방의 정책을 기각할 수 있는 조건은 다양한 정치 세력들 간의 불안정한 긴장 상태를 지속시켰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왕과 의회 그리고 '국민투표'로써 의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국민들 간에 적절한 세력 균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각 정당이나 정치 세력들은 상대방에 대한 섣부른 모략보다는 책임 있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면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적 토리', '자유-통합파'와 같은 절충된 입장을 제시한 세력들이 등장해 국민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이것은 각 정치 세력들이 원칙이나 기득권에만 연연하지 않고 밖으로 열려 있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서로의 정책에서 배울 점을 찾는 등 '공존의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컨대 보수당, 자유당, 노동당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정책방향과는 다른 정책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포스터의 교육법은 그동안 불간섭의 원칙을 천명해 온 자유당의 노선변화를 알리는 조치였다. 교육에 관한 한 그동안 자유주의자들은 자발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일부 영향력 있는 자유주의자들은 자발성의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1860년대 말까지 영국이 적합한 교육제도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했다.-'5장' 중에서
보수당은 이전에는 관여하지 않았던 중요 사안들을 처리하며 1840년대 이래 처음으로 진정한 힘을 발휘했다. 실제로 1874년 사회문제를 다룬 법들이 다수 제정되었다. 영국의 소작인들에게 소작기간 중에 자신이 이루어놓은 경작지 개량에 대해 보상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농지보유법Agricultural Holdings Act은 글래드스턴이 제정한 아일랜드 토지법을 모방한 것이었다.(…)-같은 장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주의자들로 구성된 노동당 정권이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던 우려는 빠르게 감소되었다. 영국의 기존 정치 구조를 전복시킬 것이라던 염려와는 반대로 램지 맥도날드의 노동당 정부는 체제순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재무부 장관 필립 스노든이 준비한 예산안은 어떠한 세금도 신설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존의 세금 부과율을 인하하기까지 했다.(…)-'7장' 중에서
또한 저자가 책의 절반 정도의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 20세기 부분을 살펴보면 이 때는 크게 보자면 '의회와 국민 간에 밀접한 관계가 형성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진보와 보수의 공존'을 이뤄낸 힘을 의회와 국민의 부단한 상호작용이었다고 본다. 진보나 보수 어느 세력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만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었던 점은 두 진영으로 하여금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를 추구하게 했다. 국민들의 이러한 적극적인 정치 참여는 각종 선거법 개정과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영국 국민들이 의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됨으로써 촉발된 것이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의회와 정부의 정책 결정이 자신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국민들은 자신들의 투표권을 적극 행사하고자 했다. 이로 인해 종종 70∼80%를 상회하는 높은 투표율을 보였으며, 이것이 의회에 긴장요소로서 작용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그러한 상호작용이 영국의 참여민주주의를 일궈내고 진보와 보수의 공존이라는 정치 구조를 일궈냈다.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 시리즈
역사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의 콘사이스 역사 시리즈는 각국사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그간의 연구성과를 압축해 각 나라별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 시리즈는, 다양하고 풍부한 사진·지도·표 등이 곁들여져 있어 독자들을 보다 생생한 역사의 무대로 안내할 것이다.
『분열과 통일의 독일사』
메리 풀브룩 지음/김학이 옮김
『미완의 통일 이탈리아사』
크리스토퍼 듀건 지음/김정하 옮김
『혁명과 반동의 프랑스사』
로저 프라이스 지음/김경근·서이자 옮김
저자소개
옮긴이 이내주: 영국 서식스(Sussex)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육군사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다. 영국사학회와 한국 서양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서양의 지적 운동』(공저),『세계문화사』(공저)등이 있으며,역서로『20세기의 역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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