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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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발행부수로만 따지자면 『조선일보』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1등신문’이다. 그런데 그 ‘1등신문’만 보는 사람들은 대선 국면이 한창인데도 대한민국에서 두번째로 큰 정당 대통령 후보의 인터뷰 기사를 단 한 번도 접할 수 없다. 우째 이런 일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는 신문과의 인터뷰를 거부하다니?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싸움이 갖는 의미
이 책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는 바로 이 특이한(?) 현상, 즉 유력한 대통령 후보 노무현과 ‘1등신문’ 『조선일보』와의 싸움에 관한 것이다. 저자 유시민은 머리말에서 “노무현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욕을 먹고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굳이 『조선일보』와 싸우는 것일까?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자칭 ‘대한민국 1등신문’의 싸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여기에 어떤 사회 정치적 배경이 있으며, 이 싸움의 결과는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라고 질문을 던진 후 이렇게 대답한다.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싸움에는 대한민국을 반세기 동안 지배해온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목숨이 걸려 있다. (…) 국민은 6월항쟁을 통해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민주화의 문을 여는 데는 성공했지만, 강고한 동맹을 맺은 극우언론과 극우정당의 사상적 정치적 지배에서 사회를 전면적으로 해방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조선일보』를 상대로 한 노무현의 전쟁은 바로 ‘앙시앵 레짐’의 해체를 겨냥한 것이다. 노무현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무관하게 이 싸움은 그런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7~8쪽)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에 대한 노무현의 대답 역시 이러한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조선일보』가 반민주적인 특권집단이라는 본질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조선일보』의 권위와 신뢰를 높여주는 어떠한 인터뷰도 응할 수 없다. (…) 『조선일보』의 특권과 공격에 짓밟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 도리 차원에서도 『조선일보』의 인터뷰에는 응할 수 없다. 『조선일보』는 민주화과정에서 남은 마지막 특권세력이자 성역이며, 이 특권세력을 실질적 법치주의의 지배 아래 놓이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민주화운동이다.”(95쪽, 『한겨레』 11월 19일자에서 재인용)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특권은 ‘이상(以上)’이 아니라 ‘이하(以下)’다
노무현은 『조선일보』를 단순한 신문으로 보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수구세력의 선봉이며, 스스로 “『조선일보』식 정치구도”를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상대로 한 싸움은 “개혁세력 방어를 위한 전략이며 몸부림”이 되는 것이다.
『조선일보』 역시 스스로를 단순한 신문으로 보지 않는다. ‘신문 그 이상의 신문’으로 본다. 그러나 ‘그 이상’이 반민주적 특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조선일보』의 제 이름은 ‘신문 그 이상의 신문’이 아니라 ‘신문 그 이하의 신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민주적 특권세력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던 그간의 정치와 비교할 때, 노무현의 싸움은 ‘정치 그 이상의 정치’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고 있기라도 하다면 말이다.
저자 유시민은 1991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신문 그 이하의 신문’과 ‘정치 그 이상의 정치’ 간의 싸움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전개과정을 거쳐 왔는지, 풍부한 자료를 배경으로 조목조목 짚어간다. 또한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유―노무현은 민주화 운동가이며, 북한을 미워하지도 않는데다가 개혁을 부르짖는다― 및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죽여온’ 방식―노무현은 위선자이고, 경박하고, 빨갱이이며, 김대중의 양자이다―뿐만 아니라 노무현이 『조선일보』와 정면대결을 펼침으로 인해 유발된 정치적 효과까지 면밀하게 분석한다.
공정하게 편파적으로
그러나 이 싸움의 전개과정에 대한 서술에서도, 그리고 이 싸움이 갖는 의미에 대한 서술에서도 유시민은 결코 ‘객관성’을 가장하지는 않는다. 유시민은,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우리는 대단히 편파적이다. 그러나 편파적이 되는 과정은 대단히 공정하다”는 말을 빌어 스스로의 편파성을 드러내고는, ‘마구만’이라는 네티즌의 말을 빌어 그 편파성의 의미를 갈무리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불공정, 비중립은 두 인물이 같은 행동을 했음에도 ‘자신의 정치적 비중립성으로 인하여’ 다르게 평가하거나, 다른 행동을 했음에도 ‘같은 원인으로’ 같게 평가하는 것이다. 공정하게 편파적인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이며, 편파적으로 공정한 것이 가장 편파적인 것이다.”
이러한 공정성의 기준을 바탕으로, 유시민은 결국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싸움을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으로 규정하면서, 독자에게 어느 편을 택할 것인가 라고 묻는다.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은 결코 중용의 도를 벗어나는 것도 아니며 ‘편 가르기’라는 비난과도 무관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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