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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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이 책 『블루골드: 지구의 물을 약탈하는 기업들과의 싸움』은 제목 그대로 '블루골드(black gold)'에 관한 책이다. 여기서 '블루골드'는 가격이 매겨진 물, 다시 말해 '사유화(私有化)된 물'을 의미하는데, 아직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사실 '워싱턴 컨센서스'에 근거한 '세계화'의 논리를 물에 적용한 것이다.
'물의 사유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공공 서비스로서의 물 서비스, 그러니까 상하수도 서비스를 공기업이 아니라 민간기업이 제공하는 것이다. 이 책 본문에서 사용하는 '물의 민영화'라는 개념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데, IMF위기 이후 구조조정이란 명목하에 진행되었던 공기업의 민영화를 볼 때, '물의 민영화'가 우리에게 전혀 낯선 개념이 아니며, 앞으로 곧 닥치게 될 사안임을 알 수 있다.
둘째, 기업이 지방자치단체나 지역주민에게 대가를 지불하고서 그 지역의 물(하천, 호수 등등)을 사들이는 것이다. 사들인 물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져 판매되거나 또는 그 기업의 공업용수로 사용된다. 이를 다시 '물의 상품화'라고 규정할 수 있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생수'가 바로 이 경우의 일부분에 해당한다.
이러한 '물의 사유화' 개념은 지난 2000년 3월 헤이그에서 제2차 세계 물 포럼(World Water Forum)이 개최되었을 당시, 각국 정부대표에 의해 공식적으로 천명되었다(물론 이러한 천명을 이끌어낸 실질적인 세력은 거대 다국적기업이었다). 물 부족 위기가 임박하였으며,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물을 민영화 및 상품화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다시 말해, 물을 시장(규제 없는 세계시장)에 맡겨두면 시장의 합리성으로 인해 물 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블루골드』의 저자인 모드 발로와 토니 클라크는, 물의 사유화로 인해 더욱더 가속화된 물 위기 및 그로 인해 초래된 인간 기본권 침해에 관한 수많은 사례를 제시하면서, 결국 물의 사유화는 경제 세계화를 주도하는 기업들과 국제 무역·금융기관에 의해 자행된 전 지구적 물 약탈 및 인권 유린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그들은 늘 상품과 매매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인권이 상품이 되었다면 그 상품은 매매되는 것이 아니라 약탈되고 유린되는 것이다.'
약탈과 유린
약탈과 유린의 가장 직접적인 사례는 바로 물 민영화 이후의 수도요금 인상이다. 세계 물 다국적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가운데, 민영화된 지역의 수도요금이 계속 인상되어 빈곤층에서는 이를 감당하기가 힘들게 되는 것이다. 물 민영화 이후 수도요금 인상률은, 1989∼1995년 노섬브리안의 경우 110%, 프랑스에서는 150%, 잉글랜드에서는 1989∼1995년에 106%를 기록했다. 잉글랜드에서는 이러한 가격폭등으로 물 공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의 수는 50%나 증가했고, 인도의 일부 가정은 자그마치 수입의 25%를 물에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처해 있다. 또한 요하네스버그 알렉산드라 지역에서는 수도요금을 내지 못한 빈곤한 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물 공급이 중단되었는데,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한 알렉산드라 사람들은 콜레라와 설사에 시달려야 했고, 어느 주에서는 주민 네 명이 콜레라로 사망하기도 했다.
이러한 직접적인 인권 유린뿐만 아니라, 물의 사유화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물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데, 물 상품화의 논리에 따른 대형 댐과 저수지 건설, 운하 건설, 하천의 수로 변경, 지하수의 무분별한 남용, 물 수출 등으로 수질을 오염시키고 지하수를 고갈시키고 결국 물 순환 자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힘으로써 절대적으로 유한한 지구의 민물 양(식수로 사용 가능한 민물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물의 0.5%에도 미치지 못하며,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양은 태초에 존재한 물의 양과 동일할 뿐만 아니라 물 그 자체도 태초에 존재하던 바로 그 물이다)을 더욱더 빠르게 감소시키고 있다.
이러한 결과가 초래되는 이유는, 일단 물이 민영화되고 나면 정부의 권한이 대폭 축소되어 수도요금 및 수질, 수자원 보호 등에 관한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즉 "민영화는 불가피하게 공적 책임의 실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151쪽)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사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물 위기가 임박하게 된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화라는 거대한 힘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한다. 그럴 때만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135쪽)
현재 진행 중인 경제 세계화의 핵심인 워싱턴 컨센서스의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은, 자본과 상품 그리고 서비스는 정부의 간섭이나 규제 없이 세계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하는 환경규제조차 자유로운 교역을 저해하는 장벽으로 분류되고 만다. 물론 분류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세계무역을 규정하는 모든 협정 및 기구들, 즉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세계무역기구,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 북미자유무역협정과 미주자유무역지대 같은 지역 연합들, 그리고 수많은 양자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들은 모두 워싱턴 컨센서스의 원칙을 따르고 있는데, 만일 정부가 이 규정들을 위반할 경우엔 국제교역 원칙을 위반한 혐의로 제소되어 엄청난 보상금을 물거나 가혹한 경제제재조치를 감수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이러한 무역 규정들은 사실상 각국의 헌법을 초월하는 것이다. 정부는 자국의 물을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소위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실체는 이러한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근 몇 년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부채 상환을 재조정해주는 조건으로 다른 무엇보다도 물과 위생시설의 민영화를 내세웠"는데, 그와 동시에 "차관을 빈곤층에게 물 서비스를 보조하는 데 사용하지 말도록 지시했다."(241쪽)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사실상 인권을 상품화하는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저항
그러나 모드 발로와 토니 클라크는 단지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데 머무르지 않으며,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나갈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한다. 그 근거는 바로, 정부마저 힘을 잃은 상황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지역사회의 자발적 저항들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저항은, 민영화된 시의 물 서비스를 다시 공적 관리로 되돌리려는 지역사회의 투쟁으로, 볼리비아의 코차밤바에서 일어난 물 민영화 반대투쟁과 프랑스 그르노블 시에서 민간기업의 관리 아래 놓인 물 서비스를 되찾고자 10여 년에 걸쳐 전개된 투쟁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와 더불어, 남아프리카공화국·가나·우루과이 등에서 전개된 물 민영화 저지운동, 미국 위스콘신과 미시간에서 전개된 물 수출 반대운동,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질오염을 막기 위한 싸움, 하천 되살리기 운동, 댐 건설 반대운동 등은 모두 지역사회의 힘으로 일궈낸 승리이자 새로운 희망의 근거이다.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모드 발로와 토니 클라크는 다음과 같은 원칙, 즉 물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공통 원칙을 제시한다.
1. 물은 지구와 모든 생물종에게 속하는 자원이다
2. 물은 가능한 그 자리에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3. 물은 항상 아껴 써야 한다
4. 오염된 물은 반드시 정화해야 한다
5. 물은 자연상태에서 가장 잘 보호될 수 있다
6. 물은 공공관리 대상으로, 정부의 모든 조직이 동원되어 지켜야 한다
7. 깨끗한 물을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권리다
8. 물 보존에 가장 앞장서는 사람은 지역 공동체와 시민들이다
9. 일반인들도 정부와 동등하게 물 보존에 참여해야 한다
10. 경제 세계화는 물을 지속적으로 보존하는 정책이 될 수 없다
저자소개
옮긴이 이창신: 연세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욕망의 식물학The Botany of Desire』 등이 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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