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본색(美術本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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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얼마 전 ‘문학권력 논쟁’에서 문학권력 비판론자들을 향해 “왜 문학 텍스트 안으로 들어와 싸우지 않느냐”는 식의 맥락도 모르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토마스 쿤이 과학자 사회를 과학 안으로 끌어들인 이래, 더 이상 어떠한 분야도 사회학의 연구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즉, ‘텍스트 바깥’을 빼놓고서는 제 모습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텍스트’만이 존재하고, ‘텍스트’만으로 얘기되는 게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듯 여겨지는 영역이 바로 ‘순수’ 혹은 ‘아름다움’ 등과 같은 어떤 고상한 이미지와 함께하는 예술 분야다. 그래서 간혹 볼 수 있는 상식의 선을 넘어선 예술가 개인의 행동도 그 이미지로 인해 고귀한 ‘예술가적 기행(奇行)’이 되어 버리고, 종종 터져 나오는 예술계의 비리도 그 이미지 덕에 금세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엄연히 ‘예술’과 구별되어야 할 ‘사회’로서의 ‘예술계’마저 그 이미지를 뒤집어쓴 채 버젓이 ‘예술’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미술계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미술본색』은 바로 한국 미술계에 덧씌워진 이러한 이미지를 벗겨내고 그 본색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 내용 중 가장 격렬한 비판의 모습을 띠고 있는 제1부 「스타가 되는 아주 쉬운 방법」에서 저자 윤범모 교수는 ‘역설적 비판’의 방법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이미지와의 싸움을 염두에 둔 전략이다. 일그러진 모습 속에 나타나는 ‘사회’로서의 ‘미술계’는 단지 ‘미술계’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우리 ‘미술’의 본모습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전략 말이다.
'속물은 순간이고 스타는 영원하다’―스타양성 훈요십조
모두가 오로지 ‘인정받는 작가’‘잘 팔리는 작가’‘대접받는 작가’만을 향해 치달리는 곳에서, 온갖 작품 외적 요소가 작품 그 자체의 질까지도 규정해버리는 곳에서 진정 ‘위대한 작가’와 ‘스타 작가’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가로 그림이냐 세로 그림이냐에 따라, 바다풍경화일 경우 배가 한 척 그려졌나 여러 척 그려졌냐에 따라 그림값이 천양지차로 벌어진다면? 대부분의 항일투사 동상이 친일 미술가들의 손에 제작됐다면? 그리스,로마 시대의 석고 데생으로 미대 신입생을 선발하는 나라가 전세계에서 대한민국뿐이라면? 이 모두가 ‘가정’이 아니라 ‘실제’인 곳이 한국 미술계이며, 이 황당한 난센스들의 상징적 극점에서 저자는 ‘역설적 스타론’을 끄집어낸다. 이름하야, ‘스타양성 훈요십조.’
제1조 역사의식 같은 것은 쓰레기통에 버려라
제2조 무조건 대국(大國)의 유행을 따르라
제3조 무표정의 장식그림만이 살 길이다
제4조 무슨 짓을 해서든 유명해져라
제5조 패거리를 이뤄 인맥을 관리하라
제6조 경력을 관리하라
제7조 전업작가보다는 대학교수 쪽을 택하라
제8조 책을 읽지 마라
제9조 그림값은 멋대로 불러라
제10조 작가정신과 속물근성을 맞바꾸라
스타가 되기 위한 이 10가지 지침은 결국 속물근성과 동의어가 되고 만다. “개처럼 스타 되어 정승처럼 폼 잡자”는 저자의 이 역설적 경고는 우리 미술계의 현주소가 어디쯤인지를 웅변하고 있다.
한국 미술의 정체성은 어디에
『미술본색』의 제2부는 모두 7편의 논고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논고들은 모두, 한마디로 말해, 한국 미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비판 및 제언이다. 20세기 한국 미술명품 20선을 선정,제시한 「나의 상상미술관」은 다소 미술 텍스트 자체에 대한 설명의 글로 읽힐 수도 있으나, 그 선정 기준에서 현미술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 즉 탈보수와 탈외세로 대변되는 한국 미술의 정체성에 입각한 시각이 뚜렷이 드러난다. 「미술대학 교육, 제대로 되고 있는가」는 제목 그대로 미술대학 교육 전반에 대한 치밀한 비판을 담고 있는데, 제1부 「스타가 되는 아주 쉬운 방법」이 역설적 비판이라면, 이 논고는 그에 상응하는 직설적 비판으로 자리매김된다. 이밖에 1980년대의 민중미술운동을 되돌아봄으로써 그 운동의 현재적 가치를 모색하는 「민중미술, 한때의 유행이었는가」, 세계화 시대의 우리 미술이 지향해야 할 바를 담은 「세계화 시대의 우리 미술」과 「광주비엔날레와 정체성의 문제」, 반인권적 미술행정의 작태를 고발한 「반아파르트헤이트전 왜곡 사건」이 수록되어 있으며, 마지막으로 남북 미술교류의 지향점을 제시한 「발전적 남북 미술교류를 위한 제언」은 현단계의 문제점을 꼼꼼히 지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측에서 추진해야 할 사항들과 더불어 북측이 추진해야 할 사항까지 하나하나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방식으로 제시함으로써, 북한 미술에 대한 저자의 전문가적 식견을 유감없이 펼쳐 보이고 있다.
<한국문화의 딜레마> 제1권
개마고원의 ‘딜레마총서’는 현재 <한국사회의 딜레마> 시리즈와 <한국정치의 딜레마> 시리즈가 출간되고 있으며, 『미술본색』은 그 세번째 시리즈인 <한국문화의 딜레마> 시리즈 제1권으로 기획되었다. <한국문화의 딜레마> 시리즈는 향후 ‘우리 성문화의 이중성’ ‘우리의 지나친 차별문화’ 등을 다루는 책들로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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