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좋아도 한국민족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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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저자 이토 준코는 대학 1학년생이던 1980년, 보도를 통해 '광주항쟁'을 접하고서부터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관심은 곧 한국어 공부로 이어졌고, 그러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는 아예 한국으로 건너와 살았다. 지금도 그는 프리 저널리스트로서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일하고 있다.
사실 한국에 머문 적이 있거나 살고 있는 외국인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모저모를 두루 얘기하는 책은 많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관찰기'나 '체험기'류와는 좀 다르다. 10년 넘는 한국 생활을 통해 갖게 된 '한국의 고질병, 민족주의'라는 문제의식으로 자신이 보고 겪고 느낀 점들을 차분히 재구성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일본인임을 확인하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독도는 우리 땅!" 하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질리게 만드는 한국 민족과, 고베 지진이 났을 때 눈물을 흘리며 일본인들의 안녕을 걱정해주던 한국인. '민족'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앞뒤 설명도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해대지만 개인적인 문제에서는 정이 넘쳐 부담스러울 정도의 호의을 보이는 모습이 이 일본인 저자에게는 매우 낯설게 보였고, 바로 그러한 경험들이 한국인을 사로잡고 있는 '민족주의'의 망령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주위의 외국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까지도 면밀히 관찰해 보여주고 있다. "한국이 50년만 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으면 지금보다는 더 나았을 텐데," "서울은 할렘가보다 무서웠어," "한국 사람들은 도무지 감각이 없어." 저자가 전해주는 외국인들끼리 나눈 이런 대화는 알게 모르게 젖어 있는 우리의 지나친 '민족주의적 성향'이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물론 그런 얘기들이 일반화할 수 있을 만큼의 대표성을 갖느냐와는 별개로, 낡은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채 아직도 근대의 문턱을 헤매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뼈아프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이 제국주의 중에서도 삼류 제국주의라 할 일본에게서 근대를 배웠지만, 일본의 국수주의적 성향까지 배우지는 말라고 충고한다.
민족공동체의 이율배반: 제 자식을 버리면서 '민족'을 외친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운운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 세계에서 유일한 단일민족 국가인 한국과 한민족의 우수성을 설파하는 내용으로 첫머리를 시작하는 중학교 국사교과서. 이렇듯 군사정권의 개발독재와 동원체제 이데올로기 세례로 점철된 우리의 왜곡된 현대사에서 한국인들의 유별난 '민족 사랑'의 원인을 찾기도 하지만, 그것이 한국의 배타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용납해줄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 피해가 바로 한국인 자신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가난한 조선족에게는 차갑고 모질기가 그지없고, 그 조선족 중에서도 성공하여 그 존재가 두드러진 이들에게는 유난히 같은 민족임을 내세우는 걸 보라. 조선족을 상대로 한 수많은 사기사건과 조선족3세 록가수 최건에 대한 요란한 환대가 그 예이다. 재일동포 일반에 대한 무관심과 일본에서 성공한 작가 유미리에 대한 열띤 관심을 비교해보라. 이는 그야말로 변형된 '자민족 우월주의'에 다름 아니다. '세계 고아 수출국 1위'는 또 어떤가. 고아들을 '그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미명으로 해외로 입양시키는 건 혈통을 지키기 위해 혈연 버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과 진배없다.
'단일 민족'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환상: 정작 '남북 통일'에는 걸림돌이 될 수도
저자는 우리의 가장 아픈 부분인 '분단 상황'에 대해서도 피해가지 않는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었을 때는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듯한 분위기였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민족통일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빠져나와 엄연히 독립된 국가로 50년 이상 살아온 남북의 현실을 냉철히 바라볼 것을 우리에게 권한다. 필요 이상으로 '단일민족'과 '민족공동체'가 강조되는 분위기 아래서는 타민족을 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차단된다. 그러한 정서가 굳어진다면, 정작 통일이 되어서도 반세기를 넘게 이질적으로 살아온 북한 동포들과 어우러져 원만한 통일국가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란 충고인 셈이다.
이미 한국은 세계 속에서 베풀어야 할 위치에 있는 나라이지, 결코 돌봄을 받을 형편에 있는 나라는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세계화 추세 속에서 이제는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와 의식도 세련돼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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