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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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혼란'과 '위기'. 최근 우리 사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아니, 단지 말뿐 아니라 우리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정말 '혼란과 위기의 사회'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엔 묘한 비약이 있다. '누가 이야기하는' 혼란과 위기인지, 도대체 '누구의' 혼란과 위기인지 따져보는 과정은 생략된 채, 사람들은 그저 흔히 듣는 대로 우리 사회를 '혼란과 위기의 사회'로 낙인찍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생략은 과연 무방한 생략인가? 혼란과 위기는 진정 존재하는가?
혼란과 위기는 건강성의 징표일 뿐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정란의 두 번째 산문집 『말의 귀환』은 이러한 '혼란'과 '위기'가 허상에 불과함을 직시한다. 그것은 단지, 이제껏 다양성을 억누름으로써 우리 사회에 단일하고 획일적인 가치를 덧씌워온 체제 수호자들이 유포한 혼란과 위기이며, 바로 그들의 혼란과 위기일 따름이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혼란'과 '위기'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다양성, 즉 우리 사회의 건강성이 회복되어가고 있다는 징표로 해석된다.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왔던 단일한 반공 극우적 멘탈리티가 깨어져 나가면서, 작은 말들이 무수하게 솟아나오고 있다. (…) 반『조선일보』 운동은 아주 힘차게 돌아오고 있는 말의 현상 중 하나이다. 말이 돌아오는 현장은 겉으로는 혼란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우리 사회가 말의 건강을 회복해 가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머리말」)
저자가 안티조선 운동을 "조선일보라는 거대한 말의 바스티유"(「왜 반조선일보 운동인가?」)를 허무는 일에 비유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가 말하는 '혼란', 즉 다원화의 구체적인 모습은 '말의 귀환'이다. "나는 이 국면을 '말의 귀환'으로 바라본다. (…)가치의 다원화는 바로 말의 다원화이다. 억압되어 있던 말들이 자기의 권리를 청원하면서 말의 난장 속으로 떠밀려 들어오고 있다."(「머리말」) 다시 말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거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은 결국 "말의 문제"로 귀결된다. "존재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언어적 분절에 의하여 구축"되는 것이며, "따라서 말을 장악하는 자는 세계를 장악"(「말의 난장과 언론정국」)하기 때문이다.
말의 난장에서 말의 광장으로
그러나 말이 돌아오는 자리는 결코 '난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난장'을 지나 '광장'에 이르러야 한다. 진정한 의미를 생성해낼 수 있는 열린 광장으로. 물론 간과될 수 없는 사실은 난장을 지나지 않고서 광장에 이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난장을 지극한 정성으로 통과해야만"(「머리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지극한 정성은 누구의 몫인가? 저자는 일차적으로 지식인을 지목한다. 물론 난장은 일반 시민들 스스로의 자생적 힘에 의해 펼쳐진 것이 분명하지만,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오로지 시민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광장에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지식인들의 정성이 필요하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의 몫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지식인은 오로지 침묵할 뿐이다. 침묵뿐 아니라 오히려 힘겹게 펼쳐진 나장마저 걷어치우지 못해 안달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과연 지식인인가?
저자는 현대사회의 지식인의 처지를, "권리는 별반 없고 의무만 잔뜩 져야 하는 피곤한 위치"(「말의 난장과 언론정국」)으로 묘사한다. 이는, 이제 지식인은 더 이상 지식의 독점적 소유자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는 변함없이 지식인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의 위기'운운하며 법석을 떨어대는 소위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독점적 지위의 고수만을 희망할 뿐, 이제 비로소 형성되고 있는 말의 난장을 말의 광장으로 이끄는 일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말의 광장이 열리는 것을 막으려 안간힘이다. "민주주의는 말의 광장에서 이루어진다. 말의 광장을 혼란과 두려움으로 인지하는 정신은 민주주의에 맞지 않다. 말의 광장을 두려워한다면, 왕 혼자 말하던 전근대로 돌아갈 일이다."(「말의 광장」)아니, 그들은 아직도 전근대인들이다.
실천적 글쓰기로서의 저작
저자 김정란이, 스스로 안티조선 운동이나 문학권력 논쟁 등 우리 사회에서 펼쳐진 가장 민감한 '말의 난장'의 한복판에 서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말의 귀환』은 바로 그러한 난장 속에 놓여왔던 저자의 삶과 인식의 산물이다. 저자 스스로 이야기하듯, 이러한 작업은 저자 스스로에게 "큰 충족감을 주"는 "미적인 글쓰기", 소위 '시인이자 평론가'의 글쓰기는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기꺼이 자신의 개인적 충족감을 포기했다. 왜? 지금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완결성을 갖춘 '미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실천적 글쓰기', 바로 '지식인의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위 귀환』을 통해 언론·사회·정치·문화·여성·일상적 삶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얼어붙어 있던 말이 녹아내리고 있음을, 그것이 말의 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음을, 그래서 이제 그것이 말의 광장으로 인도될 수 있도록 물꼬를 트는 작업이 요구됨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지식인들이여, 입을 열어 말하라. 길이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말이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식의 글은 늘 그렇게 입을 열어 말하는 자들에 의해 만들어져왔다."(「말의 난장과 언론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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