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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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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  악플러의 탄생과 디지털 공론장 붕괴의 드라마
저자명 : 정지혜
서지사항 : 사회.교양 / 135*205 / 272쪽 / 2023년 3월 10일
가 격 : 17,000 원


도서소개

지금 댓글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2000년대 초 온라인 게시판에 나타나기 시작한 댓글 시스템은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에서 손꼽을 만한 사건이었다. 댓글창은 게시물 원문의 질을 향상시키고 이용자 간 유익한 토론 기회를 만든다는 긍정적 기대로 출발했으나, 실제로는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증오하고 공격하는 공간이 된 나머지, 댓글은 ‘손가락 간접살인 무기’라고 불릴 지경이다. 이러한 댓글 저널리즘이 작동하는 환경을 보면 현재의 댓글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오염되는지 알 수 있다. 뉴스 생산자 입장에서는 댓글을 대중의 주류 정서라고 여겨 쉽게 무시할 수 없고, 뉴스 소비자는 댓글창에 나타나는 주류 감성을 확인하며 안전하게 군중 속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댓글 여론을 형성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재미에 중독된 소수 댓글러와 이들을 움직이는 세력이 똬리를 틀게 된다.
  네이버 뉴스에 댓글을 쓰는 이는 1000명에 세 명 정도이고,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의 경우 1%의 사용자가 전체 분쟁의 70%를 일으키고 있다는 통계는, 소수가 극단적 의견을 과대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본문 20, 23쪽) 이것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댓글 알바를 동원하는 사이버 여론조작의 유혹이 자라난 뿌리다. 네이버가 2004년 뉴스 댓글 기능을 선보인 뒤, 댓글의 영향력이 커지자 급기야 국가기관마저 댓글 여론조작에 가담하게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국정원과 경찰청이 나선 댓글 공작 사건,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등이 그것이다. 또 ‘악플 여론’을 정치적으로 활용해, 혐오로 무장한 댓글부대와 결탁한 일부 정치권은 젠더 갈등이라는 키워드를 띄우고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악플이 단순히 댓글놀이 수준이 아니라 ‘사회적 살인’이라 불릴 만큼 무서운 이유는, 극단적이고 과잉된 감정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집단광기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때 타깃이 되는 누군가를 마녀사냥하듯 죽도록 패는 몰매의 성격을 띤다. 이른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폭력적 행위)이라는 문화다. 이는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2022년 배구선수 김인혁과 인터넷 방송인 잼미님, 2020년 배구선수 고유민, 2019년 여성 가수 설리와 구하라, 2008년 배우 최진실 등이 사이버 집단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악플러는 누구이며 어떻게 탄생했을까

  악플러 심리와 성격 연구에 따르면 나르시시즘, 마키아벨리즘, 사이코패스 기질이 선천적 악플러와 연관성이 높다고 한다. 상대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이 세 가지 특징에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기뻐하는 심리)라는 인간의 본능이 더해지면, 타인의 고통에서 쾌감과 위안을 얻는 행위에 중독되는 악플러가 탄생하게 된다. 이런 악플러들은 불행해서 행복해지고 싶은 보통 사람들이지만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결국 ‘패배자의 삶’을 사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후천적 악플러를 길러내는 핵심 요소는 우월감, 반사회성, 반지성주의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해 사회화에 실패한 이들은 객관적 사실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판단기준으로 삼는 미성숙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이 발달하게 된다. 한편 “요즘은 다수의 무리에 끼고 싶은 욕망에 자발적으로 굴복한 이들이 선동의 배에 올라타 악플러로 재탄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악플러 열에 여덟은 생각 없이 휩쓸리는 사람들”(50쪽)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듯한 의견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함으로써 군중심리에 불을 붙인다. 그러나 이런 악플러들은 결코 끔찍한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다. “낮에는 멀끔한 사회인이었다가 밤에는 열폭(열등감 폭발)하는 악플러로 변신하는 이들은 바로 우리 곁에 있다.”(본문 145쪽) 
  악플에 묻어나는 혐오와 증오의 칼끝은 쉽게 상대적 약자를 향하게 된다. 남성 중심 사회에다 성별 권력이 고착화한 우리나라에서 마음껏 공격해도 좋은 여성을 낙인찍어 마녀사냥하는 게임이 탄생한 이유다. ‘된장녀’ ‘김치녀’ ‘꼴페미’ 등 여성혐오적 악플을 다는 남성들이 늘고, ‘알파걸’ 같은 강한 여성의 등장에 과도하게 호들갑을 떠는 건 바로 그래서다. 심화하는 빈부격차, 양극화하는 사회구조 탓에 평범한 꿈마저 실현하기 힘들어진 청년 남성은, 권력 우위에 있는 남성집단에 강한 소속감을 부여해줄 사이버 세상의 원초적 남성사회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온라인에 모인 남성들은 ‘강한 남자’ 판타지를 추구하며 유대감을 쌓는 한편, 남자들이 더 살기 힘든 시대가 됐다는 ‘억울한 남자’ 프레임을 동시에 밀어올린다. 이것이 ‘기-승-전-군대’ 발언이 유행하는 배경이다. 저자는, 이런 청년 남성의 좌절감에 대해 “이들이 알파걸들에 밀려날까 봐 과보호하고 (…) 가부장적 남성성의 가치를 지켜내려 했을 뿐”(본문 64쪽)인 우리 사회의 책임을 거론한다.

왜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인가

  플레이어에게 도전 과제를 부여하고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게임의 속성은, 모든 소통을 승패가 갈리는 전투로 인식하게 만든다. 댓글창에서 공격적 행위를 하고도 죄의식이 없는 건 상대에게 타격감을 날리는 행위 자체가 효능감을 주기 때문인데, 사람을 가상의 캐릭터처럼 비인간화하는 경향은 인간을 리셋하면 그만인 게임처럼 보는 탓이다.
  뉴스도 댓글처럼 재미와 흥행에 몰두하는 시대인만큼 포털이라는 플랫폼이 좌판을 깔면 언론은 여기에 입점해 본격적인 호객행위용 기사를 선보인다. 댓글러가 참전할 수 있도록 대중이 물어뜯어도 좋을 사냥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재미없는 게임은 할 필요가 없듯, 자극이나 흥미 요소가 덜한 기사는 선택될 확률이 낮아진 세상에서는 언론도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 대중의 감정 에너지를 건드릴 만한 서사를 공급하게 된다.
  ‘밈’ 놀이도 게임적 세계관에 젖은 댓글 문화의 핵심 구성요소다. 인터넷에서 특정 맥락을 갖고 유행하는 사진·영상·댓글 등의 디지털 콘텐츠를 이용자들이 재가공하며 퍼뜨리는 행위 ‘밈’. 이를 유행시키기만 하면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국 정치판에 페미, 멸공, 좌파, 종북 같은 ‘밈’들을 유행시켰다. ‘밈’ 놀이에 더욱 빠져들게 하는 건 필터 버블(filter bubble: 자신의 취향과 성향에 맞는 콘텐츠만 추천하는 알고리즘에 의해 걸러진 정보가 거품처럼 이용자를 가둔다는 개념)과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이용자가 선호하는 내용만 반복적으로 소비함으로써 반향실에 갇히는 원리) 효과다.(본문 129쪽) 두 개념 모두 관점의 확장이 아니라 기존 입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므로, 이용자의 사고를 점점 더 극단화한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와 ‘그들’의 구분은 뚜렷해지고, 상대를 향한 적의와 혐오 수위는 끝없이 올라갈 뿐이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해야 내가 휘두르는 폭력이 정당화된다. 이를 알아챈 선동 유튜버, 인플루언서, 정치인 등은 사람들이 죄책감 없이 칼춤을 출 수 있도록 타깃의 악마화에 온 힘을 쏟는다. 그 분노와 혐오의 종착지가 바로 댓글창으로, 이 공론장을 변질시키는 주체는 ‘프로보커터(provocator: 선동가)-트롤(troll: 관심 구걸꾼 혹은 깽판꾼)-적극적 방관자-소극적 방관자’로 구조화되어 있다.(본문 135쪽) 프로보커터의 역할은 사람들의 분노를 결집시키고 불을 뿜어내도록 타깃을 조준해주는 것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악의적 댓글을 다는 이들은 트롤이다. 트롤 군단은 프로보커터가 의제를 만들어 던지면 댓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전전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많은 게시물을 쏟아낸다.
이들의 행위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 이에 관한 조회수 낚시 기사를 써대는 언론, 이와 관련한 여론 동향 파악에만 신경 쓰는 정치권, 공론장의 건강함을 유지하도록 노력할 책무가 있는 지식인 등은 적극적 방관자에 다름 아니다. 낚시용 기사를 무비판적으로 클릭하고 소비하는 사람들, 댓글창의 폭력성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팔짱만 끼고 있는 우리 모두는 소극적 방관자이자 댓글 폭력의 공범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디지털 공론장을 망가뜨린 토양은 무엇인가

  2021년 한 해 동안 네이버 뉴스 모바일 편집판 ‘랭킹’ 카테고리에 포함된 기사 총 51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는 참담하다. 100만 뷰를 넘은 기사들이 많지만, 조회수 50위 이내 뉴스 대다수가 연예인·유명인 관련 사건·사고와 온라인 커뮤니티 발 논란, 성적인 코드를 담은 것이었다.(본문 151쪽) 기사를 클릭해야 내용을 볼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더 많은 조회수를 유도하려고 ‘제목 장사’에 나선 언론이 스스로 초래한 결과다. 여론을 조작, 선동하려는 악플러일수록 댓글 활동에 열성적인 탓에 언론 입장에서 이들의 존재는 필요악이다. 이들을 끊어내기보다 적절히 활용하는 편을 택했다는 점에서 악플러와 언론은 서로를 먹여 살리는 공생관계가 되었다.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인 탈진실(post truth)이 횡행하는 시대상도 공론장을 망가뜨린 토양이다. 댓글창에서 벌어지는 ‘아무 말 대잔치’는 탈진실 시대를 구성하는 대안적 사실이 객관적 사실의 영역을 침탈하면서 이제는 1인칭 관점의 진실이 버젓이 뉴스가 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여기다 혐오 과몰입 정서가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세태도 디지털 공론장을 망가뜨리는 데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한국 사회가 불안·분노·혐오를 층층이 쌓이게 하는 고밀도 사회여서 스트레스 유발 요소 투성이이고,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 만드는 초연결 사회의 과시 문화가 팽배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 남과 비교해 내가 못 가진 것에 비관하는 사람들, 가망 없는 자신의 현생을 돌보기보다 가상현실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댓글 활동에 중독되고 악플러가 되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포퓰리즘이 파고든다. 어딘가 소속되길 갈망하는 불안한 영혼들은 포퓰리스트에게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 이들은 위기·불안·두려움을 극대화해 외로운 사람들을 혐오라는 감정으로 묶고, 소수자 계층에 대해 혐오 발언을 하도록 대중을 선동한다는 점에서 매우 큰 문제다.
  오늘날 온라인 공론장을 우리가 제대로 지키지 못한 데는 한국 사회의 시민성이 단단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플랫폼과 언론의 책임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포털-뉴스-댓글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한국의 독특한 뉴스 댓글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댓글에서 기대되는 순기능이 발휘되기 힘들게 만든다. 플랫폼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지 뉴스 콘텐츠를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는 핑계로 포털은 책임지는 상황에서 빠져나가지만 “뉴스와 댓글은 알짜 수입원이며, 댓글창에 불이 날수록 움직이는 돈의 규모 역시 커진다. 댓글창을 포기할 이유가 없”(본문 203쪽)는 것이다. “반대로 독이 든 성배를 마신 언론은 점점 더 포털에 종속됨으로써 독립의 기회에서 멀어지고, 포털과의 거래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힘들어졌다. 남은 것은 포털 좌판에서 기사를 팔겠다며 밤낮으로 혐오를 전염시키다가 기레기 혐오를 돌려받는 업보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황폐해진 공론장을 재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오늘날 온라인 공론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악플과 처참한 댓글에 환멸을 느낀 시민은 자신만의 밀실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자기 의견이 소수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면 결과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견은 실제로 소수의견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렇기에 대항 발언(counter speech)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혐오·증오 표현에 맞서는 전략을 의미하는 대항 발언이란 모욕적인 발언을 맞받아치기, 전복하기, 해체하기 등을 말한다.
  저자는 “직접 악플 피해자가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 사이버 공간에서 피해를 입는 현장을 숱하게 목격할 수 있는 시대”라면서 “여론을 조작하고 비겁한 마녀사냥에 나서는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혐오세력의 실체를 파악했다면, 이제는 정말 제대로 맞서야 한다. 그 시작은 우리 사회의 ‘혐오 인지 감수성’을 키우는 일”(본문 241쪽)이라고 강조한다. 즉 “개인의 의견과 악플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상황에서 단어보다는 내용과 맥락의 문제로 혐오를 구분해내는 인권 감수성이 따라와야 한다”(본문 242쪽)는 것이다.
  네이버 뉴스가 2022년 4월 기사에 대한 반응 버튼을 긍정 표현으로만 채우는 개편을 단행한 것만으로도 이용자의 악감정 표현 자체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등은 기사 주제를 벗어난 댓글, 누군가를 공격하는 댓글, 고의로 퍼뜨리는 허위 정보나 조직적 움직임이 포착된 댓글 등을 가차 없이 삭제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용자에게 책임을 다할 것을 당당히 요구하며, 룰을 준수한 이들에게만 공론장을 사용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저자는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고 공감하자’라는 건 하나 마나 한 말”이라면서 “공감이 오히려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역설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본문 249쪽)라고 말한다. 현재 온라인 공론장에서 이뤄지는 타깃 색출과 악플 공격의 밑바탕에 자리한 건 공감 능력 부족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친밀하게 느끼는 이들에게 편향된 과도한 공감이다. 즉, “현재 공론장의 근본적인 문제는 소통 과정에서 오직 ‘나’밖에 남지 않은 일방향성이 초래한 측면이 크다. (…) 점점 더 날이 선 공격적인 댓글창, 누군가를 저격하는 콘텐츠의 범람은 그 결과물”이라면서 “있는 힘껏 상대의 의도를 왜곡하고 이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한편, 오직 진실한 것은 나의 의도뿐이라고 고집부리는 메커니즘 속에 문해력 위기의 본질이 담겨 있다”(본문 255, 256쪽)고 말한다.
  악플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한 폭력행위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고와 인지를 뒤틀리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저자는 “댓글창에 자신의 동조 세력이 조금만 줄어들거나 상식적인 시민의 피드백이 늘어나면 악플 부대의 공격은 눈에 띄게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며 “댓글창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는 공론장을 망가뜨리는 최악의 적”(본문 257, 258쪽)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소개

중앙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015년 『세계일보』에 입사해 산업부, 국제부, 특별기획취재팀, 사회2부를 거쳐 현재 사회부에서 일하고 있다. 정보기술과 대중문화의 만남, 미디어 비평 등에 관심이 많으며 댓글문화에도 큰 흥미를 느껴 틈틈이 기록하고 분석해왔다. 악플과 사이버 테러를 일상처럼 겪는 한국의 많은 여성 기자 중 한 명이다. 기자로서는 성별 권력, 불평등 문제 등에 천착해왔으며 2020년 봄부터 불편한 진실을 주제로 한 칼럼 「정지혜의 빨간약」을 온라인에 연재하고 있다. 2018년 미투 운동을 접하며 교묘하고 뿌리깊은 한국의 여성혐오에 눈뜬 이후 보수적인 제도권 언론이 그동안 쓰지 못한, 여성주의적 시각의 기사를 써내고 있다. 「미투, 그 이후의 삶」 시리즈로 양성평등미디어상(2020년)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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