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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독도를 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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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박정희, 독도를 덮다  독도밀약의 실체와 독도문제의 해법
저자명 : 이재석
서지사항 : 정치, 사회|232쪽|변형국판|2016년 7월 30일
가 격 : 14,000 원


도서소개

한일 수교를 위해 희생된 독도
‘미해결이란 해결책’의 교훈

이 책은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먼저, 소문만 무성한 독도밀약설이 실제로 있던 것인지 진위를 가리는 것이다. 한일회담 당시 독도의 영유권을 놓고 양국이 비밀리에 일종의 협을 맺었다는 독도밀약설이 나온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그동안은 특별히 주목받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말만 있었을 뿐 물적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일본 외무성에서 공개한 문서 『일한 국교 정상화 교섭의 기록』(2008년)와 직접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얻은 「일한 비공식 절충에 관한 건」(2015년) 및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 진상에 다가선다.
다음으로, 이 ‘독도밀약’의 의미를 분석하고 평가하면서 그것이 “그동안의 두 나라 독도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독도 갈등과는 어떻게 연관되는지, 앞으로 우리가 택할 대응 방식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살피고자 한다”.
독도 문제는 한국과 일본 모두 물러서지 않으려 하는 첨예한 문제다. 한국 사람들은 당연히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확신하지만, 일본도 ‘다케시마는 우리 땅’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두 주장이 부딪히면 한일간의 관계는 험악해진다. 한쪽이 독도를 포기하거나 독도를 반으로 쪼개 가지기 전까지 이런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물론 어느 나라도 그럴 마음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우리가 아무리 목소리 크게 외치고 증거를 제시해도 일본이 독도를 스스로 포기할 리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독도 영유권을 지키면서도 독도 문제를 평화롭게 풀어나갈 현실적인 방법이다. 일본과 독도를 두고 비밀스러운 논의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독도밀약은 부정적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저자는 그 안에서 우리가 앞으로 참고해야 할 점을 찾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일본 외무성 문서로 확인한 독도밀약
다음이 세간에 알려진 ‘독도밀약’의 내용이다.(시마모토 겐로의 2005년 『일한협력』 기고문, 『월간중앙, 2007년 4월자 「한일협정 5개월 전 ‘독도밀약’ 있었다」, 노 다니엘의 2008년 작 『독도밀약』이 구체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노 다니엘은 김종락과 시마모토 겐로를 각각 인터뷰해 책을 썼다.)

① 두 나라가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며, 동시에 그것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② 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할 경우 두 나라가 독도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긋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③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늘리거나 새로운 시설을 증축하지 않는다.
(35쪽)

일견 충격적인 내용이다. 한국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일정 정도 인정해주는 것으로도 읽히며, 이 때문에 ‘박정희가 독도를 일본에 넘겼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 독도밀약의 내용을 공개한 사람은 둘이다. 협상의 한국 측 대표였던 김종필의 형 김종락과 참관인이었던 당시 요미우리신문 특파원 시마모토 겐로인데, 이 둘은 언론 인터뷰와 기고문 등으로 독도밀약을 증언하긴 했지만, 물적 증거는 내놓지 않았다. 지금 이 둘은 모두 사망해 더 이상 사실관계를 따져볼 수는 없다.
저자는 일본 외무성 문서를 통해 그 진위를 추적한다. 그래서 정말로 한일 양국의 밀사가 서울에서 비밀리에 만나 독도 문제 처리 방안을 논의한 일이 있었음을 밝혀낸다. 외무성 문서에 기록된 막후교섭의 참석자들과 그들이 만난 장소와 일시 모두 김종락과 시마모토가 밝힌 독도밀약설의 내용과 일치한다. 저자는 그들이 만났던 장소 또한 실존함을 확인했다. 외무성 문서에는 독도밀약 조항이 언급되진 않으며, 중요 대목은 먹칠이 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내용들이 일치하는 걸 봤을 때 그 내용 역시 사실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사라진 독도밀약, 살아남은 독도 공감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독도밀약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처럼 분명한 효력을 지닌 비밀 조약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영토 문제에 대한 한일 수뇌부의 공통된 인식을 확인하는 자리였고”, 그래서 ‘밀약’이라는 말보다 ‘막후교섭’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합의한 내용과 양국 수뇌부의 공감대는 이후 30년 가까이 독도를 둘러싼 한일 두 나라의 정책을 결정짓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독도밀약, 혹은 한일 막후교섭에서 두 나라가 합의한 내용은 현실이 되었다. 먼저 ①각자가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반론했으며(1995년까지 서로 영유권 주장을 담은 외교문서를 주고받음) ②독도 주변 바다에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수산자원을 관리하는 공동수역을 설치했고(1996년과 1998년의 어업협정) ③독도에 더 이상의 시설을 증축하지 않았다(한국 내에서 독도 개발계획을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탄압함).
독도밀약의 ‘정신’은 양국이 한일협정에서 맺은「분쟁 해결에 관한 교환 공문」에도 살아 있다. 양국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담은 합의안인데, 이에 대한 해석은 두 나라가 다르다. 공문은 “양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는 것으로 하고 이에 의하여 해결할 수가 없을 경우에는 양국 정부가 합의하는 절차에 따라 조정에 의하여 해결을 도모한다”라는 짧은 문구다. 일본은 여기서 말하는 분쟁에 독도가 포함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한국은 독도라는 말이 없으니 포함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연히 결론은 안 난다.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주장을 한다는 점에서 독도밀약의 내용과 같지 않은가?
이렇게 우리는 한일 두 나라의 지난 독도 정책에서 독도밀약의 그 기본 틀과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미해결의 해결’, 묘수인가 악수인가?
이 지점에서 저자는 ‘독도밀약’의 실체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독도밀약은 간단히 말하면 일종의 신사협정 내지는 휴전협정이었다. 결판이 안 나는 문제니 더 이상 싸우지 말고 그대로 두자는 판단이었다. 독도밀약의 내용은 얼핏 보기에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일본은 독도밀약이 있기 전이나 후나 변함없이 독도가 자기들 땅이고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한국도 그 전이나 후나 독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건 변함이 없다. 독도 주변 바다는 당시 국제법이 12해리까지만 영해로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너머의 바다는 공동 관리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피했다. 따지고 보면 사실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양국 모두 독도 문제의 뚜렷한 해결을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독도 문제를 덮은 것이다.
이런 처리 방식은 조속한 한일협정 체결을 바란 박정희정부가 찾은 묘수 내지 꼼수라고 할 수 있다. 일본과 협정은 맺어야 하는데, 독도 영유권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니 다른 논의가 진전될 수가 없었다. 일본은 지금 주장하는 것처럼 그때도 ICJ(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서 누구 땅인지 결론을 내자고 했지만, 이미 독도를 지배하고 있는 한국은 당연히 이를 거부했다. 결국 지금 상태로 남겨두자며 갈등을 봉합한 것이다. 이런 ‘미해결의 해결책’으로 양국은 독도 문제를 우회하여 한일 국교 정상화를 이룰 수 있었다.

두 나라 모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로 한 첫번째 공감대만을 강조하면, 당시의 독도 처리 방식은 지금 불거지고 있는 독도 갈등의 ‘불씨’이자 ‘원흉’이다. 대부분의 비판적 담론이 여기에 근거를 둔다. 그러나 동전의 다른 면을 보면, 그러니까 한국의 점거 상태를 그대로 두기로 한 또 다른 공감대를 표 나게 강조해본다면, 그때의 독도 처리는 한국의 실효 지배를 영구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보기 나름’인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내준 것은 ‘주장할 수 있는 권리’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내준 것은 ‘실제로 지배할 수 있는 권리’였다. 어떤 권리가 더 실질적이며 본질적일까.(175쪽)

갈등의 온도를 내릴 수 있는 새로운 버전의 독도 공감대
이런 방식은 한일의 독도 정책, 나아가 한일관계 전반의 기조이기도 했다. 두 나라는 싸움과 충돌을 가져올 수 있는 문제는 일부러 회피하면서, 협력을 강화해왔다. 그것을 위해 위안부 같은 민감한 문제는 내부적으로 억누르기도 했다.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면 일본과 독도를 놓고 국민들 모르게 어떤 협상을 했다는 것은 결코 좋게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인정해줬다는 내용은 국민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저자는 두 나라가 그런 합의를 통해 의도한 바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당시 두 나라는 한일간 갈등이 커지지 않기를 원했고, 독도 문제로도 부딪히려 하지 않았다. 현재는 반대다. 일본은 시시때때로 독도 문제로 도발하고, 한국 역시 강경한 대응을 하며 갈등을 키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두 나라 정부가 정치적 목적에서 그렇게 한 것이지만, 한일의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 어느 방향이 더 바람직할까. 위안부 문제처럼 묻어서는 안 되는 사안도 있지만, 독도처럼 조용히 관리해야 더 나은 사안도 있다. 이른바 ‘맞춤형 대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50년 전 일본이 결코 독도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듯이, 지금도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어쩌면 50년 후에도 우리는 ‘독도는 일본 땅’ 타령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내심과 미래를 내다보는 긴 안목이다. 이 책은 50년 전의 독도 막후교섭으로부터 독도 영구 지배로까지 이어질 한걸음 한걸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갈등을 일정 수준 아래로 끌어내려 관리하는 새로운 봉합의 전략은 독도에 대한 실효 지배를 견고히 다져가는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더 본질적으로는 한일 두 나라 사이 확대 재생산되는 증오의 메커니즘을 줄이고 평화의 메커니즘을 형성한다는 차원에서 더 중요할지 모른다. 50년 전 독도 공감대가 한일회담 속전속결을 위한 미해결이었다면, 지금 필요한 새로운 버전의 독도 공감대는 두 나라 시민들 사이의 평화를 위한 미해결이자 연대를 위한 봉합이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188쪽)



저자소개

이재석: ‘바람직한 사회는 논픽션이 많이 나오는 사회’라는 소설가 장정일의 지적에 동의하고 힘입는다. 팩트가 없는 글을 혐오하지만, 조각난 팩트만 나열하고 그것을 논픽션이라 우기는 것도 싫어한다. 사실이 아닌 진실은 때때로, 아니 자주, 다양한 진영의 영토 너머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말이 모든 지향과 가치에 대한 허무주의의 재료로 쓰이는 것에는 반대한다. 2005년 한국방송(KBS)보도본부에 입사해 기자로 일하고 있다. 한일 두 나라 막후교섭 팀이 독도와 관련해 은밀한 합의를 했다는 이른바 ‘독도밀약’의 실체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로, 2015년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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