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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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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저자명 : 김진석
서지사항 : 인문(철학)|304쪽|신국판|2009년 3월 25일
가 격 : 16,000 원


도서소개

이 책은 ‘한국사회의 니체 읽기’에 대한 비판적 비평이다. 한편으로는, 저자 김진석(인하대 철학과 교수)이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간 자신의 주제로 삼아온 니체를 집대성한다는 의의를 가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동안 읽어온 니체가 니체의 참모습의 1/2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차분하게 논증해준다는 의의를 갖는다. 저자의 주장을 거들기 위해선, 짜라투스트라의 말을 빌려야겠다. “니체는 너무 일찍 왔다. 니체의 때는 아직 오직 않았다.”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소개되지 않은 니체의 나머지 절반 중에서, 저자는 특히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니체의 비판을 비로소 꺼내든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회의가 동시에 표출되며, 거리의 정치와 국회의사당의 정치가 각각 판이한 주장을 펼쳐대는 이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체제 자체를 거부했던 니체의 입김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그 천박한 취향
니체는, 20세기의 대철학자 니체는 민주주의를 대놓고 빈정댔다. 니체가 민주주의에 가졌던 반감은 “너무 커서 그를 반민주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이 책, 17쪽)였다. 우리가 상식처럼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반대하고 비난하다니? 더군다나 니체는 현대사상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 학자 아니던가.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저자 김진석은 1980년대 중반 독일 유학생 시절에 본격적으로 니체 연구에 돌입했고 당시 그의 논문『Hermeneutik als Wille zur Macht bei Nietzsche(니체, 권력에의 의지로서의 해석학)』은 현지에서 출판되었다. 그리고 그는 한국에 돌아와 니체 사상을 우리말로 풀어쓰면서 우리 학자들이 니체의 반민주주의적 태도를 소홀히 다룬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한국의 니체 연구자들에게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이렇게 중요한 사실이 어떻게 기존의 니체 해석이나 니체 읽기, 아니 현대철학사에서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것인가? 우연히 그 사실이 간과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은폐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혹시 구조적이고도 복잡한 여러 요인들이 그 맹점이 니체 텍스트를 뚫고 솟아나서 텍스트를 뒤흔들고 찢어놓는 것을 막았던 것일까?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이 책, 18쪽)
저자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진 니체 연구를 더욱 꼼꼼히 들여다보면 찾을 수 있다. 혹자는 니체를 민주주의의 적이자 서양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전파자라고 간주(박홍규,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니체를 차이와 다원성에 대한 존중을 설파하는 탈정치적 사상가로 간주(이진경,『노마디즘 1』)하기도 했다. 결국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은 채 ‘반민주주의’의 텍스트로만 혹은 ‘현대 이전에 현대를 꿈꾼’ 포스트모더니즘으로만 해석되어온 셈이다. 저자는 ‘니체의 철학적이며 정치적인 위험성’이 현대 민주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음을 지적한다. 결국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니체를 수용했던 방식을 버리고 니체의 정치 비판을 제대로 다뤄야만 그의 사상 전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니체는 정치적으로 왜 ‘불온하고 불길한 증인’인가?

니체, 민주주의의 불온한 증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니체가 민주주의를 폄하한 내용을 하나씩 뜯어본다.

“인간의 타락 형식이며 왜소화 형식”(18쪽)

“인간을 동등한 권리와 요구를 주장하는 난장이짐승으로 만드는” 짐승화의 한 형태(이 책, 20쪽)

“겉으로만 보면 평화적이고 일을 열심히 하는 민주주의자들과 혁명주의자들, 더 나아가면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면서 ‘자유로운 사회’를 원하는 멍청하면서도 철학자인 체하는 자들과 (…) 본능적인 적대감 속에서 그들은 모두와 한마음이다.”(22쪽)

“현대성의 비판, ― 우리의 제도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23쪽)

“민주주의적 취향과 그것의 ‘현대적 이념들’을 가진 수다스럽고 글 쓰기 좋아하는 손가락을 가진 노예들”(25쪽)

니체는 민주주의라는 제도에서 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으로 치닫는”(26쪽) 모습을 간파하고 자유민주주의자들의 평등이라는 구호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니체는 그들이 타인을 동정하여 만인의 평등을 내세우는 태도의 이면을 지적하며, 그들이 고통을 겁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조롱했다. 결국 민주주의란 인간의 고통 자체를 폐기하려는 시도에 불과할 뿐이므로, 니체는 도리어 “우리는 잔혹함과 폭력성 (…) 인간에게 있는 모든 악의적인 것, 무서운 것, 폭군적인 것”(26쪽)이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 덕목이 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바로 그의 ‘권력에의 의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저자는 니체가 “그의 삶 중반기를 넘기면서 표어처럼 떠받드는 권력-의지”(27쪽)가 민주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적 성격을 띠며 등장했음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 1부를 통해 ‘권력-의지’를 비롯하여 니체가 제시한 중요한 개념인 ‘위대한 정치’(2장), ‘강자의 고귀함’(3장), ‘격차의 열정’(4장)을 차례대로 제시하며 니체의 민주주의 비판의 키워드들을 하나씩 재정립한다. 니체가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증오했던 뿌리를 찾아 내려가 보면, 결국 서구 철학의 역사 2천 년의 종착점, 플라톤에게까지 이른다. 니체가 단순히 민주주의를 증오하는 극단적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는 여기에서 신빙성을 잃게 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당대 민주주의를 오해할 수밖에 없었던 니체의 속내를 드러내준다.

플라톤 이후의 형이상학적 이상주의와의 철학적 싸움에 집중하다보니, 니체는 그 이상주의가 왜곡된 사제(司祭) 권력을 유발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더 비판하다보니, 인간을 ‘약하게’ 만들 것처럼 보이는 모든 도덕적 가치도 비판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민주적 사회의 존재방식에 대해 오판한 듯하다. 그는 정치권력을 작게 나누고 인간관계를 평준화하는 경향 등이 민주주의 사회의 특징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개인이나 집단의 의지 혹은 본능이 전반적으로 쇠퇴하고 몰락한다고 생각했다.(112쪽)

포스트모더니즘, 니체의 화려한 귀환
1990년대 초반 한국사회에서 니체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저자는 당시 스스로도 니체의 탈현대성을 부각하는 일에 뛰어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니체 읽기는 한때 붐을 일으킬 정도로 활성화되었고 여전히 그 탈현대적 관점은 유효해보인다. 여기서 저자가 아쉬워하는 것은 탈현대적 니체 읽기가 니체 자신이 바라던 실천적 역동성을 가지지 못 했다는 한계를 갖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탈현대적 관점 자체가 제기하고 강조한 맥락들과 결론들이 그 내부에서조차 그것의 실천성에 관하여 제대로 숙고되거나 충분히 실행되지 못한 점이 있다.”(127쪽)
들뢰즈가 쓰고 이진경 등이 우리말로 옮긴 ‘노마디즘’이라는 용어에 대한 비평도 빼놓지 않는다. 저자는 노마디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론적 독법이 “신선한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시대의 변화를 예측하고 예고”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현재의 관점에서는 사회적 변화를 서술하는 일을 지나치게 상징화하고 추상화할 위험을 내포한다”(이 책, 130쪽)고 지적한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간과한 것 중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는 우리나라에서 아예 ‘힘에의 의지’로만 번역이 되고 있으며 이는 니체의 정치철학 텍스트를 고스란히 박제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며 비판한다.
그렇다면 니체의 탈현대성에 주목했던 학자들은 니체의 핵심을 무엇으로 읽은 것일까. 우선 들뢰즈는 니체의 아포리즘이 ‘분열증적 웃음과 아이러니’를 가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이 ‘분열증’이라는 개념이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코드화에 대비할 수 있는, 즉 탈코드화와 맥이 닿는다고 결론지으며 이를 자신의 이론에 적극적으로 대입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김진석은 들뢰즈의 결론에 반대하며 이 책의 5장을 통해 니체의 작업이 반드시 탈코드화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내고 ‘노마드(nomad)'의 개념이 지금처럼 탈색되어 상품화된 데에는 들뢰즈를 비롯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탈코드화의 전복적 성격에 과도하게 집착했던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한다.
저자의 이러한 비판은 2000년대 초반에 한국에서 유행했던 파시즘론에까지 미친다. 이 책의 7장에서, 저자는 들뢰즈의『반오이디푸스(L'Anti-Œdipe)』를 예로 들며 그들의 파시즘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과거 좌파로 유명했던 지식인들이 말했던 대로 파시즘이 정녕 “‘우리 모두 안에 있고 우리의 정신과 일상행위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를 지배하고 부려먹는 바로 그것을 욕망하는’ 것이 그 파시즘이라면, 거기서 벗어나는 길은 분열증밖에 없는 것”(이 책, 193쪽)이라는 들뢰즈의 결론이 일견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분열증이라는 탈출구가 일반인들의 현실적 실존 차원에서는 그 가능성이 의심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이를 반박한다. 저자의 표현 그대로 우리가 “힘,폭력,권력에 의지하는 일(…)을 깨끗이 포기할 수 있을까?”(이 책, 193쪽).

니체는 왜, 감히 민주주의를 비판했는가
현대의 민주주의, 정확히 표현하여 ‘시장과 결합한 자유민주주의’는 점점 위세를 발휘하고 있다. 또한 그 와중에 “자유민주주의의 궁극적 승리를 선포하려는 움직임들이 끊이지 않는다.”(이 책, 291쪽) 민주주의를 등에 업고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을 비판하는 좌파들의 작업은 이런 점에서 유의미하다. 다만 좌파들이 만인의 평등을 강조하며 민주주의의 불완전성을 비판하는 것과 니체의 민주주의 비판은 그 차이가 확연하다. 니체는 거꾸로 “만인의 평등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민주주의를 비판”(291쪽)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묻는다. 좌파들이 말하는 것처럼, 만인의 동등한 권리가 실제로 현실에서 달성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저자는 그들의 비판이 매우 원론적인 데에만 그친다는 점을 지적하며 좌파들의 주장에서는 “추상성과 기만성이 (…)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근본적 회의를 감추지 않는다. 이는 곧 저자 자신의 민주주의론으로 이어진다.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을 펼치면, 김진석이 니체에게서 어떤 맥락을 찾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아직도 불완전하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유민주주의자도 그렇게 말할 수 있고 평등주의자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불완전함은 서로 다른 색 속에서 아롱거린다.
나는 말한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위험하다고. 폭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아직도 멀쩡하지 못하지만, 폭력의 힘을 조금이라도 과도하게 빌릴 경우에도 위험하다. 폭력에 전혀 손을 내밀지 않아도 위태롭고, 과도하게 내밀어도 위태롭다. 위험한 증인, 니체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이 위태로운 균형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증언을 빌려 우리는 민주주의의 폭력적인 과거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며, 지금도 여전한 폭력들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폭력에 대한 위험한 증언은 쉽지 않았다. 그는 ‘선악의 너머에서’ 위험한 증인이고자 했는데, 그 와중에 결국 위악을 떠는 증인이 되고 말았다. 위선에 빠지지 않는 증언을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슬프게도, 위악을 무릅쓰는 일이었다. 감히 민주주의에 대해.
(300쪽)



저자소개

김진석: 인하대학교 철학과 교수. 계간 『황해문화』 편집위원.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철학을 하고자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지만, 대학은 매력이 없었다. 1980년 5월 군 입대. 군대는 10여 년 동안 악몽을 꾸게 만든 지독한 경험이었다. 제대와 함께 미련 없이 학교를 자퇴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철학 교수의 탈을 쓰고 살고 있다. 철학자와 문학비평가의 길을 가며 텍스트를 분석했지만, 텍스트 해석만으로는 세상이 보이지 않았다. 정치로서의 삶과 직면해야 했다. 계간 『사회비평』 편집주간, 『인물과 사상』 편집위원을 하면서, 우파와도 부딪치고 좌파와도 부딪쳤다. 자신의 철학적 개념을 세상에 내놓고 있지만, 갈수록 말과 글의 허장성세를 견디기가 힘이 듦을 느끼고 있다.

저자의 다른 책들 『Hermeneutik als Wille zur Macht bei Nietzsche』 『탈형이상학과 탈변증법』 『초월에서 포월로』 『니체에서 세르까지―초월에서 포월로 2』 『이상현실․가상현실․환상현실―초월에서 포월로 3』 『폭력과 싸우고 근본주의와도 싸우기』 『소외에서 소내로』 『포월과 소내의 미학』 『기우뚱한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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