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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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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촌놈들의 제국주의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저자명 : 우석훈
서지사항 : 경제·사회|278쪽|신국판|2008년6월5일
가 격 : 12,000 원


도서소개

동북아 3국간의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중국-일본 간의 전쟁이라니……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그러나 이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도, 일종의 비유적 표현도 아니다. 경제학적 근거들에 의해 내려진 결론이자, 명백히 예측되는 무력 전쟁에 대한 경고이다. 즉, 저자는 국제경제학과 발전경제학의 시각 위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와 도넬라 메도우의 이론을 가져다 동북아 3국의 국민경제를 분석하여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한국이 ‘제국주의 국가’라고?
한국은 그간 극단의 대외 의존적 수출주도형 경제를 굴려왔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 자본주의가 그 내부적 모순과 불균형을 특단의 대안 없이는 제어하기 어려운 단계, 즉 식민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그러나 식민지를 만들어낼 능력도, 식민지 경영의 경험도 없으면서 생존의 돌파구는 식민지가 요구되는 제국주의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한국 자본주의를 저자는 ‘촌놈들의 제국주의’라고 명명한다. 한국 경제의 제국주의적 전환을 보여주는 주요한 변곡점 몇 가지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라크 파병 김대중 정권기에 씨앗이 뿌려지고 노무현 정권기에 싹을 틔우기 시작한 제국주의화 경향은 ‘이라크 파병’에서도 확인된다. 한국 경제가 원하는 국익들에는 전쟁도 하나의 선택지로 포함되어 있다는 게 이라크 파병으로써 명백히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강요에 마지못해 따른 게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가 해외에서의 군사활동을 강력히 원했고, 무엇보다 절반 이상의 국민이 한국 군대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을 원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파병 결정이 민주적 절차 측면에서 심각하게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논의가 다소 일방적으로 흐르긴 했지만, 법적 절차에서 정부는 한국 자본주의가 원하는 전쟁을 결정했고, 국회는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이 파병에 동의한 것이다. (…) ‘국익’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추상적이긴 하지만, ‘국익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논의 자체가 파병과 전쟁이라는―일반적인 경제적 범주에서는 잘 포함되지 않는―특수한 관계로까지 연결되는 것은 다분히 제국주의적인 현상이다. 이익이 있어도 대부분의 국가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여전히 대의와 명분 같은 것으로 참전 혹은 파병 같은 일을 결정한다.
(본문 70~71쪽)

한미FTA 제국주의는 시장과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경제적 장치로 식민지를 추구한다. 그러나 식민지의 특징과 제국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한국의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는, 경제영토의 확장이란 기치를 앞세운 한미FTA의 특수한 성격에서도 그 모습이 뚜렷이 드러난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해외에서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식민지에 해당하는 다른 나라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러 경제협약 중의 하나일 뿐인 한미FTA에 노무현 정부가 그토록 집착한 것은―그리고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국민들이 이를 열렬히 지지한 것은―일종의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가 이로써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며, 이것이 사실상 국정홍보처가 얘기한 ‘경제영토’의 실질적 의미일 것이다. 그들은 ‘오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정확히 현실을 짚었던 셈이다. 미국을 등에 업은 ‘경제영토’의 확장, 그것이 바로 ‘촌놈들의 제국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랴.
(본문 98쪽)

남북경협 지난 10년 동안 ‘DJ 독트린’(햇볕정책)이 격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것이 단순히 북한에 대한 인도적 배려 차원을 넘어서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남한의 자본 및 기술이 결합됨으로써 열리게 될 한국 경제의 ‘마지막 비상구’에 관한 얘기였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에서 이제 북한이라는 존재는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경제적 의미로 ‘식민지’에 가까워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다른 먼 나라에 외부식민지를 갖기 어려운 한국 자본주의 입장에서 북한만큼 가깝고도 만만한 식민지가 또 있을까? (…) DJ 독트린의 외형은 물론, 그 안의 내용도 변한 것은 없지만, 한국 자본주의 자체가 변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이에 대한 일관된 설명일 것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찬/반 입장의 차이는 북한을 내부식민지로 전환시키는 데에서 상대 정부를 그대로 두고 식민지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상대 정권을 무너뜨리고 일종의 총독부처럼 직접 관리할 것인가에 있는 셈이다. 여기에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 언젠가 새로운 평화 독트린에 의해 대체되기 전까지 DJ 독트린은 그 패권적 속성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본문 122~123쪽)

팽창하는 민족주의가 자원전쟁의 마당에서 충돌하다
로마클럽보고서 『성장의 한계』로 유명한 경제학자 도넬라 메도우는, 공급 확대에도 불구하고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자원 부족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되기도 전인 2030년 즈음부터 벌써 자원 갈등으로 인한 국지적 전쟁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저자는, 자원 의존형 경제구조라는 점에서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동북아 3국의 현재에 그 예측을 적용해 보여준다. ‘세계의 공장’으로 기능하며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 그리고 왕년의 제국이 아닌 새로운 제국의 탄생을 알리는 팽창적 중화주의는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성화 봉송 폭력사태도 그 숱한 징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천황제를 고수하고 있는 일본은 어떤가? 패전 후 이른바 평화헌법 아래 ‘평화국가’로 강제되었던 일본은 이제 자위(自衛)를 빌미로 군사대국화의 길을 열어두는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리하여 “아프리카에 일본 자위대가 자신들의 ‘에너지형 경제특구’를 지키기 위해서 원정길에 나서는” 걸 보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이미 한중일 세 나라는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주요 유전에서 잠정적 경쟁자로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너지와 자원의 확보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소위 자원수송로다. 보통은 해상수송로와 파이프라인 두 가지 형태로 자원수송로가 만들어지는데, 사실 한중일의 전쟁 개연성을 가장 높이는 것은 이 자원수송로의 확보를 둘러싼 군비경쟁이다. (본문 201~202쪽)

이런 상황에서, 건설자본을 축으로 제어되지 않는 팽창을 보이는 한국 자본주의 역시 남북경협이나 통일문제에서 나타나는 패권적 민족주의 정서에 얹혀 일종의 한국형 경제패권주의를 탄생시키고 있다. 통일근본주의와 민족패권주의가 한국형 제국주의 버전으로 등장한 사례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경우, 좌파 혹은 진보를 자임하다 ‘중도’라는 독특한 정치지형으로 이동한 뒤,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평화경제’ 주장을, 점차 북한을 출발점으로 하는 ‘북방대륙 개척론’으로 바꿔갔다. 북한을 관통하여 러시아를 지나 유럽까지 가는 길만이 국민경제가 번영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중심국가론’이 이제 평화경제론을 넘어 북방 진출로 업그레이드되었던 것이다. 당시 정동영 후보의 연설 일부분만을 발췌해서 편집한다면, 19세기 후반 혹은 20세기 초반 어느 제국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적극적인 해외 진출과 식민지 개척의 필요성을 강변한 연설문이라 해도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 정치적인 레토릭과 국내경제에서의 대칭적 주장을 제외하고 국제경제라는 시각으로 보았을 때, 민노당 권영길 후보의 주장도 사실 이런 정동영식 소제국주의론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본문 104쪽)

대안은 평화 인프라의 구축에 있다
언제나 불안정한 임시적 균형상태일 뿐인 평화는 너무 당연하게도 평화로울 때 가꿔가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각기 민족패권주의의 기운에 몸을 실은 채 제국주의적 자원전쟁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는 한중일에게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저자는 여기서 ‘전쟁 없는 경제’를 위한 평화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는 유럽의 경험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EU형) 경제통합이 추진될 수 있었던 정치적 배경에는 두 번의 큰 전쟁을 겪고 난 뒤 ‘전쟁 없는 유럽’에 대한 사회적 열망이 있었다. 또한 이 통합에 속도를 붙인 경제적 배경에는 1980년대 후반의 경제적 위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거대한 미국 경제권에 맞서기 위해 어느 정도는 규모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던 터에, 당시 속도감 있게 진행되던 일본 경제의 유럽 진출 역시 경제통합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켰던 것이다. (본문 239쪽)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평화로부터 이익을 얻는 평화산업, 평화에 기대어 비로소 월급을 받거나 경제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시민들로 국민경제의 절반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역내 사회구성원들에게 평화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학습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장치를 마련해가야 한다. 특히 지금의 십대가 사회적 의사결정의 중추세력이 되었을 때, 그들이 전쟁보다는 평화를 외칠 수 있도록 ‘에라스무스 프로그램’(본문 244쪽) 같은 평화 인프라를 적극 개발하고 실천해가는 것이야말로 지금 기성세대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일 것이다. “‘전쟁 없는 상태’가 열정의 대상이 되고, 그것 자체가 하나의 파토스가 되는 그런 문명 혹은 그런 사회”는 가능하다!



저자소개

우석훈: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인생의 4분의 1을 독일ㆍ프랑스ㆍ영국ㆍ스위스 같은 외국에서 지냈고, 유엔(UN) 기후변화협약의 정책분과 의장과 기술이전분과 이사를 마지막으로 국제협상과 공직생활에서 은퇴했다. 그 시절에 만들어낸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이한동 총리 때의 「기후변화협약 2차 종합대책」이다. 이후 ‘가난한 자유’를 통해 삶의 평온을 찾았고, ‘명랑’으로 행복을 배웠다. 현재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고, (주)한국서부발전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늘 자신을 C급 경제학자로 소개한다. 지은 책으로 『아픈 아이들의 세대』『음식국부론』『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그리고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첫째권 『88만원 세대』와 둘째권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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