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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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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노무현, 왜 그러는 걸까?
저자명 : 이진
서지사항 : 정치·사회|국판변형|반양장|392쪽| 2005년 12월 10일
가 격 : 12,000 원


도서소개

노 대통령이란 ‘섬’과 국민이란 ‘육지’ 사이에 소통의 다리 놓기

취임 초기 70%대를 넘나들던 지지율이 임기 2년 8개월을 지나는 지금 겨우 20%대를 턱걸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열혈 지지자들조차 이젠 그 지지를 거둬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아마도 일반 국민들의 가슴에 담겨 있을 질문은 ‘노무현,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일 것이다. 어느 정권이든 늘 비판이야 받게 마련이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그리하여 오로지 민중의 힘으로 집권이 가능했던 노무현 정권의 상징적 가치와 의미에 비춰볼 때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임기중 지지율로서는 최악’이란 현실은 새삼 낯설기만 하다. 도대체 왜 이리 된 걸까?
‘통합의 정치’를 기조로 밀고 나가면 ‘분열의 정치’를 조장한다고 맞받아치고, ‘수평적 리더십’이 정착되어가는 과도기적 현상이라 해명하면 정책 조율의 아마추어리즘으로 인한 ‘난맥상’이라 치받고,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신뢰의 문화’를 외치면 ‘너나 잘 하세요’식의 비아냥만 되돌려주는 이 비생산적인 대립의 현실 속에서 국민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원인을 누구는 노무현 정권의 무능과 오만에서 찾고, 누구는 권력금단증상에 젖은 수구기득권세력의 극렬한 저항에서 찾는다. 과연 어느 게 진실일까?
이 혼돈의 와중에서 때로 자신이 ‘고립된 섬’ 같다고 말하는 노 대통령, 그는 이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해왔고 또 어떤 해답을 마련해가고 있는 걸까?

노 정권 1기의 투명한 국정일지
저자는 참여정부 출범시부터 2년간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으로 일하며 특별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것은 “국정 운영의 막전, 막후에서 노 대통령의 ‘생각과 판단’을 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구술받고, 현장을 취재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생각을 기록하는 일종의 개인 기록비서로서, 저자는 대통령을 최근접 수행하며 참여정부 국정1기(정권 출범에서 탄핵 국면까지) 동안 보고 들은 사실만을 최대한 국외자의 시각에서 관찰하여 정리했다고 말한다. “청와대 안 사람들에겐 외부 사람이고, 청와대 바깥 사람들에겐 내부 사람”으로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지 못하는 이발사의 심정”으로 지켜본 국정1기를 정리하면서, 저자는 접했던 사안사안들에 대해 어떠한 분석도, 해명도, 설득도, 주장도 하지 않는다. 이 책은 단지 국정 관찰기로서, 그 집필 의도의 하나가 “노 대통령이라는 ‘섬’과 국민이라는 ‘육지’ 사이에 다리를 놓아봄으로써 섬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려는 데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이 책에 대해 어떤 이들은 저자의 위치 때문에도 그저 ‘객관을 앞세운 교묘한 노비어천가’에 불과하다고 폄훼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개적이고 투명한 국정운영에 대한 노 대통령의 철학과 소신에서 비롯된, 이 전례가 없는 파격적 실험에 대해 최종적 판관의 몫은 역시 국민들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 대통령의 고백과 생각의 편린들
이 책은 마치 노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청와대 다큐멘터리 대본을 보듯 속도감 있게 읽힌다. 모노톤의 객관적 내레이션처럼 저자의 레토릭과 감정을 극히 자제한 서술로 일관하며 청와대 현장을 카메라로 비추듯 보여주기만 한다. 그런 가운데 노 대통령의 ‘생각과 판단’은 물론, 정책 결정의 과정과 그것이 외부에 알려진 바 사이에 일정 정도 괴리가 있는 것도, 몰랐던 새로운 사실도 확인된다. 특기할 만한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치자금 및 나라종금 사건에 대한 고해가 미뤄져온 과정과 재신임 발언까지
(제주도에서) 노 당선자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다. “국민 앞에 털어야 할 것이 있다면 미리 다 털고 갑시다.” 노 당선자의 선거캠프 허물들을 먼저 털어놓고 매를 맞겠다는 의미였다. 허물은 두 가지였다. 정치자금과 나라종금 사건. 안희정과 이광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 당선자로부터 숙제를 받은 두 사람은 제주도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조용히 서울로 돌아왔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고해성사를 할 것인지 골몰하기 시작했다.(본문 32쪽)

제주도에서 숙제를 받았던 안희정은 결심을 굳혔다. 대통령 취임식 이전에 기자회견을 통해 나라종금 사건의 전모를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기자회견 날짜는 1월 둘째주로 잠정 잡아두었다. (…) 털어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과, 그로 인해 대통령에게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이 머리 속을 헝클었다. 결국 안희정은 정해두었던 기자회견 이틀 전에 결심을 접었다.(본문 38-39쪽)

(국회에서의 첫 국정연설) 준비 과정에서 ‘서동구 사건’보다 더 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뻔한 내용이 있었다. 노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통해 나라종금 사건의 전말을 밝히려 했던 것이다. 노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정치권의 ‘자기 고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이 두 사안은 참모들의 만류로 국정연설에서 공개되지 못했다.(본문 71-72쪽)

“나라종금 건은 나와 관련이 있다 해도 개의치 말고 수사해 주십시오.” 3월 14일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검찰수사의 빗장을 풀었다. 검찰은 2002년 대선 기간중 잠깐 나라종금 사건에 손을 댔다가 사건 관련자가 미국에 있는 이유로 그동안 수사를 중지한 상태였다. 검찰은 ‘덮었던’ 수사를 재개했다. 자연히 안희정이 수사의 초점이 되었다.(본문 121쪽)

오전 10시를 조금 넘겨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노 대통령이 춘추관으로 향한 것이었다. 전말 밤 늦게까지 노 대통령과 기자회견 문제를 논의하고 시기상조임을 주장했던 문재인 수석이 급히 청와대로 달려왔다. 노 대통령의 측근 참모 한 명이 부속실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쳤다. “막아요! 대통령님 춘추관 못 가시게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막아요!” 대변인으로부터 노 대통령이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기자들은 회견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 노 대통령은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해서 그동안에 축적된 여러 가지 불신에 대해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습니다.”(본문 260-261쪽)


*대미전략의 복안
방미 직전 청와대에서 열린 마지막 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참모진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솔직합시다. 우리 처지는 지금 우리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앞에는 강이 있고 뒤에는 절벽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제 느낌을 비굴하지 않게, 그러나 솔직하게 전달하겠습니다.” (…) 노 대통령의 대미 전략은 일련의 순서를 가지고 있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었던 3월에는 한미동맹관계를 우려하는 여론에 개의치 않고 분명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미국이 ‘평화적 해결’을 천명하기를 기다렸다. 4월에는 이라크 파병을 통해 미국에게 도움을 준 뒤 미국이 대북 관련 ‘평화적 해결 방침’을 확고히 밝히자 비로소 동맹관계 수습에 나섰다. 5월 방미 기간 동안 노 대통령의 (굴욕외교 논란에 올랐던) 미국에 대한 신뢰 표명은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북핵위기설은 한미 정상외교를 기점으로 급격히 잦아들었다.(본문 112-113쪽)

*도덕적 결벽증
SK 비자금건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들에 관한 수사 내용을 접하면서 심각한 심적 고통을 느꼈다. 노 대통령은 당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항상 문제의식을 가지고 강요되는 상황에 저항해왔다. 그러나 가장 저항하지 못했던 것이 정치자금, 돈에 관한 것이었다. 저항을 시도했지만 자유롭진 못했다. 도덕성은 국정운영에 큰 힘이 되는 자산이었는데 그걸 잃어버렸으니… 걱정스럽고 힘들다.’ 문재인 수석은 뒤에 노 대통령의 고통을 이렇게 술회했다. “대통령은 도덕성에 대해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의 결벽증 같은 것을 갖고 있다. 도덕성이 훼손되는 것에 대한 심적 부담감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컸다.”(본문 250쪽)

정대철 대표는 청와대에 적잖은 배신감을 느꼈다. 그는 참여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이자 당 대표이면서도 검찰조사 과정에서 청와대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검찰과 사전 조율이 오갔을 사건이었지만, 청와대는 검찰조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입장은 두 가지였다.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대선자금을 포함한 정치자금 문제를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과, 검찰의 수사권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노 대통령은 7월 21일에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대선자금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로 하고, 홍보수석실과 회견문을 만들었다. (…) 노 대통령은 이를 정무적 시각에서 보았다. 정대철의 ‘공개적 압력’에 대한 노 대통령 특유의 도덕적 결벽증도 작용했다.(본문 182-184쪽)


*자신의 집권이 갖는 의미에 대한 노 대통령의 생각
노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이 전대 대통령들의 그것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까지가 군사독재의 연장선이었다면, 김영삼과 김대중의 집권은 민주화 투쟁의 결과로서 민주세력이면서 독재와 싸운다는 선명한 대결구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노 대통령의 시대에는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대결구도가 분명치 않았다. 노 대통령은 생각했다. ‘나는 싸울 상대가 분명하지 않다, 김영삼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영웅이 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죽을 각오가 영웅을 만든다. 그러나 이 나라는 이미 민주화 투쟁을 하기엔 너무 진보했다. 내가 싸울 상대는 무형의 것이다, 그것은 제도이다. 정책이다. 정책의 투명성, 제도의 합리화가 내 싸움의 상대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것들은 내 시대 내게 빛과 영광을 주지 못할 것이다.’(본문 318쪽)

노 대통령은 조기숙 교수가 오기 전에 그(정동영 의장)에게 탄핵기간 내내 고심하며 연구했던 ‘거버넌스의 시대’를 화두로 던졌다. “지금 민주주의 발전 단계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아니라 거버넌스의 시대입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 세계는 이것을 먼저하는 국가가 선진국가입니다.” (…) 이것은 연합정부에 대한 노 대통령의 구상과도 연관이 있는 말이었다. (…) “이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 원칙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당의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본문 384쪽)


*민주당 분당과 지역구도 극복
“신당 창당에는 일절 관여하지 마십시오.” 노 대통령은 청와대 정무라인을 ‘개점 휴업’시켰다. 유인태 수석은 정치권으로부터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는 비난에 시달렸다. 민주당 신주류 의원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 노 대통령은 신당 문제를 자신의 숙원인 지역구도 극복과 연결짓겠다는 생각이었다. ‘호남으로는 호남의 역사를 만들지 못한다. 민주당이 깨져야 한다, 영남당을 깨는 방법은 호남당을 먼저 깨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로 이길 수 없다.’ 문제는 호남 민심이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신당 창당 과정에 잘못 발을 디디면 호남인들의 배신감과 위기감이 증폭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나라당과의 문제에 있어서도 신당 창당에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신당과 함께 있으면 한나라당은 나를 공격함으로써 당을 공격하고, 당을 공격함으로써 나를 공격하는 것이 된다. 내가 신당과 분리되어 있어야 조준을 집중해서 할 수 없게 된다. 곧 변화의 기회가 올 것이다.’(본문 191-192쪽)

총선을 앞두고 남은 변수는 노 대통령이 언제 민주당을 탈당할 것인가였다. (…) 궁금하기는 청와대 내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참모들의 질문을 받은 노 대통령은 여전히 침묵했으나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명분의 문제이다. 국민들은 두 가지 잣대를 함께 가지고 있다. 민주당에 왜 몸담고 있느냐고 하다가 막상 떠나면 의리 없이 그럴 수 있느냐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 간다면 뜻하지 않게 당이 내게 야박한 공격을 하게 될 것이다.’ 마침내 민주당 구주류가 노 대통령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노골적인 불만과 불평이 쏟아져 나왔고, “차라리 나가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본문 214쪽)

“지금은 재신임 문제로 코너에 몰려 있어서 생각이 복잡하네요.” 노 대통령은 또, 야당에게 권력을 넘겨주더라도 ‘선거제도를 고친다’는 전제를 달아 지역구도를 극복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노 대통령의 모든 정치전략의 출발점이자 종점은 ‘지역구도 극복’이었다. 노 대통령이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거정부로 갈 것이냐 (재신임 카드를) 확 던져버릴 것이냐, 하는 것은 그때 가서 판단해봐야 합니다.(본문 345쪽)


*실용주의, 탈권위주의
공무원 사회의 경직된 서열문화는 참여정부 이후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노 대통령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 “나는 자리가 비어 있는 데도 서열 때문에 앉지 못하는 사회를 가장 야만적인 사회라고 생각해요. 정 어려우면 일단 앉아서 회의를 하다가 높을 사람이 왔을 때 내주면 되잖아요. 제발 이리들 와서 앉아요, 제발!”(본문 240-241쪽)

“이번 방일에 관련하여 제가 가장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굳이 국빈 방문을 고집하는 바람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외교통상부로서는 방문의 성격은 국빈 방문으로 해야겠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일본 국왕 내외의 스케줄과 맞추다보니 방문일자가 그렇게 된 것이었다. (…) “앞으로 외교를 하든 국내 의전을 하든, 형식을 통해 위상을 높이려 하지 말고 실질적인 내용으로 승부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클린턴이나 부시 대통령을 보십시오. 미국 대통령들은 아침식사 하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는데 한국 대통령은 뭘 그렇게 요란하게 준비하고….”(본문 133쪽)


*분노
“적어도 대통령이면 장관이 억울하게 당하는 데 대해서 최소한의 저항은 해주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상처를 입을 때까지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고위 공무원들에 대한 신뢰입니다.” 김 장관이 초기부터 국회에서 수모를 당해왔다는 사실을 잘 아는 노 대통령이 참았던 속내를 털어놨다. 일순간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김두관 장관이 지방대학 나와서 동네 이장 하다가 장관 된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기득권적 시각에서 볼 때 가장 기분 나쁜 장관이라는 것 아닙니까? 꼴랑 군수 따위가 장관이라고, 그런 것이 암암리에 작용한 것 아닙니까? 정치,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저는 굴복하더라도 한참 싸운 뒤에 하겠습니다.” 노 대통령은 국민들이 사안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김 장관의 생각은 달랐다.(본문 218-219쪽)

민정수석실의 첫 보고에서 ‘부적절한 처신’ 정도를 이유로 양길승의 사표를 받아야 한다고 했었다. 그 ‘부적절성’의 구체적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던 노 대통령은 “잘못이 없으면 적당히 처리할 수 없다”며 사표 수리를 승낙하지 않았었다. 그랬는데 새로운 내용들이 보고되자 노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냈다.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자네들은 참 이상한 놈들이야. 날 잘 알잖아. 내 성격을. 그러면 판단자료를 잘 조사해서 보고했었어야지. 그런 자료도 안 주고 나한테 판단하라고 했던 건가?”(본문 196쪽)


*개혁의 원칙과 혁신
4월 17일 오전, 정부개혁추진전략회의에서 진대제 장관은 삼성이 겪었던 개혁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건희 회장이 아내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을 주장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안 바뀌다가 IMF 터지니까 그때야 바뀌었습니다.” 이날 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몇 가지 개혁 원칙을 내놓았다. 국민동력을 얻어낼 수 있는 사업은 부차적으로 가고 꾸준히 밀고 갈 수 있는 총체적 전략과 목표를 세운다. 당장 제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설비와 구조의 문제를 먼저 푼다. 중앙부처 정부 차원의 혁신부터 실현한다는 것이었다.(본문 82쪽)

노 대통령은 짧은 새해 연휴를 신년 구상을 하면서 보냈다. ‘나는 공정성 개혁에 대해서는 점진적 개혁을 했고, 효율성 개혁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개혁을 했고, 민주주의 개혁에 대해서는 내 뼈를 깎는 개혁을 했다. 내가 가장 방점을 두었던 개혁은 정부의 효율성이었다. 효율성은 합리성이다, 절차와 시스템을 따르고, 평가에 공정한 공무원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공무원 업무를 표준화하고 축적, 재활용하는 전산시스템 구축에 관해서도 생각했다. ‘업무 과정 전산화는 지도자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없으면 안 된다. 강력한 리더십만이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올해에는 공무원들에 대한 혁신 드라이브를 더 세게 걸어야 한다.’(본문 309쪽)


*연정 구상
노 대통령은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했을 경우 국정 혼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해 한 달째 고민중이었다. “동거정부로 갈 가능성이 높은데 내각제에 가까운 동거정부가 될 공산이 큽니다. 또 대통령 주도보다 총리 주도의 동거정부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정이 매우 혼란스럽게 됩니다. 이것은 전술적인 것이 아니라 국민의 평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몇몇 참모들에게 언급했던 실질적 책임총리제를 말하는 것이었다. “내각 주도의 동거정부는 대통령이 대폭적으로 권한을 이양해주지 않는 한 순조롭게 가지 못합니다. 파격적인 양보를 해줘야 하는 일입니다.” 노 대통령은 탄핵안이 현실화됐을 경우 그 이후에 벌어질 혼란한 국정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탄핵을 받았을 경우, 받지 않았을 경우, 총선에 승리했을 경우, 실패했을 경우의 수에 대한 개별적 상황을 분석한 뒤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옛날로 돌아가지 않는 근본적인 개혁이 되게 생겼습니다. 거기에 마지막 쐐기를 박는 것이 총선입니다. 총선에서 국민이 이대로 가라 하면 제도적 마무리를 하는 것이고, 유야무야 덮어라 하면 들킨 사람들은 들킨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대로 그대로 가는 게 총선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본문 362-363쪽)



저자소개

이진: 92년 한국외국어대학 신문방송학과 졸업. 월간 『샘이깊은물』 기자를 거쳐, 미국 미주리 주립대 저널리즘 스쿨에서 ‘탐사보도’로 석사를 마쳤다. IRE 국제 보도 에디터, <불룸버그통신> 아시아 마켓 리서처, 웨스턴 켄터키 대학 강사를 지낸 뒤 2002년 귀국하여 <손석희의 시선집중> 외신 분석 패널과 <프레시안>의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이후 참여정부 출범 때부터 2년간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 취재기 『나는 미국이 딱 절반만 좋다』와 2002년 한국 대통령선거 취재기 『노무현의 색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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