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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군인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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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실록 군인 박정희
저자명 : 정운현
서지사항 : 정치·사회|대국전판|224쪽|2004년 10월 15일
가 격 : 15,000 원
비 고 : 절판


도서소개

‘박정희 실체’ 있는 그대로 보자!

곧 10․26이다. 박정희 사후(死後) 4반세기가 흐른 셈이다. 그럼에도 아직 박정희는 죽지 않았다. ‘박정희 향수’ ‘박정희 신드롬’이란 말이 시사용어가 되다시피 한 그간의 과정에서는 물론이요, 최근만 해도 ‘친일진상규명법 공방’ ‘국사교과서 편향 서술 파동’ ‘국보법 개폐와 관련한 국가정체성 논란’ 등에서 여전히 박정희의 그림자가 어른거림을 볼 수 있다. 또한 거기에는 ‘가난을 구제한 민족의 지도자’에서 ‘폭압적 권력욕의 화신’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두 시각의 충돌이 동반되곤 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선 언제나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는 박정희, 그는 무덤 속에서조차도 영면(永眠)할 수 없는 것일까?

발로 뛴 취재, 철저히 사실에 기초한 기록
무릇 역사적 인물의 공과를 논하자면 무엇보다 ‘공정한 자세’가 기본이다. 그 공정한 평가의 첫걸음은 바로 ‘사실 확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힘든 일부 학술적 연구를 제외하면, 일반 대중에게 인식되고 있는 박정희 담론이 호의적 접근이었든 비판적 접근이었든 박정희에 대한 막연한 ‘신화적 이미지’에 기댄 것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사람에 따라 자신이 선 자리와 환경적 차이로 인해 혼란상을 내보이는 박정희의 실체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관점도 최대한 배제하는 가운데 철저히 당시대를 산 주변인들의 증언과 검증된 사료를 토대로 한 ‘실록 박정희’를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경북 구미(의 박정희) 생가를 비롯해 그가 졸업한 대구사범, 교사로 근무했던 문경시절 등을 모두 취재했다. 그의 고향 친구, 대구사범 동기생, 교사시절의 제자를 만나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그가 돌연 1939년 만주행에 오르면서 일생의 중대한 전기를 맞게 되었는데, 필자는 그가 졸업한 만주 군관학교를 답사하고 동기생과 선후배 등 예비역 장성 20여 명을 만나 그의 만주시절을 복원할 수 있었다. (-머리말에서)

‘군인’ 박정희에 보다 주목한 이유
‘대통령 박정희’의 권력은 근본적으로 군인 권력에서 나왔고, 그의 사상적 모태 역시 죽을 때까지 ‘군인’이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박정희는 꼬마시절부터 군인을 꿈꿨고, 그 꿈을 위해 당시로선 보장된 자리였던 교사직을 버렸으며, 사관학교에서도 모범생이었다. 대구사범 시절 학과 성적이 ‘꼴찌’였던 그가 만주 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본 육사를 다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것은 기본적인 ‘머리’의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가 ‘꿈꿔온 일’에 정진하고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와 관련해 늘 논쟁의 대상이 되는 ‘친일과 좌익 전력’도 바로 이 군인시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군인시절의 박정희 복원작업을 통해 저자는 ‘박정희의 비밀광복군설’이나 ‘박정희의 독립군 토벌설’, 그리고 ‘박정희의 좌익 전력의 실체’에 대해 객관적 사실자료로써 소상히 밝혀놓고 있다. 더불어 ‘철모를 쓴 황군 장교 박정희 사진’ ‘대구사범 시절의 수학여행 사진’ ‘해변에서 수영복 차림의 박정희 사진’ 등 그간 전혀 공개된 바 없는 사진자료들을 발굴, 게재해 놓았다. 이는 독자들에게 박정희의 실체를 구성하는 또다른 면모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소개

정운현 친일문제 및 현대사 연구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해온 지은이는, 『중앙일보』와 『대한매일』 기자를 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으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 『호외, 백년의 기억』 『증언 반민특위』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친일파 죄상기』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일제침략사 65장면』 등의 공(편)저가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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