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풍경 참견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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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  스포츠로 읽는 한국사회문화사
저자명 : 정희준
서지사항 : 역사|264쪽|153*225|2009년 2월 2일
가 격 : 15,000 원


도서소개

만약에 이명박 대통령이 롯데팀의 열혈팬이었다면?

‘오바마 모자’가 만들어져 시판된다? 오바마 열풍이 아무리 거세다고는 해도 현직 대통령의 모자가 팔린다는 것은 금시초문의 일이다. 물론 오바마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의 프로야구팀 화이트삭스의 열혈팬이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2005년 그가 상원의원이던 시절에 이미 개막전 시구까지 했으니, 그가 즐기던 야구모자라는 컨셉트로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도 한편으론 이해할 수 있다. 이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스포츠가 한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또한 스포츠가 다른 사회 분야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엿볼 수 있다.
같은 상황을 우리나라에 대입해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약 우리나라의 현직 대통령이 어느 프로야구팀의 열혈팬이었다면? 오바마의 모자처럼 그의 모자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시판될 수 있을까?

이 책 『코리아 스포츠 판타지―스포츠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를 읽은 독자라면 위의 질문에“글쎄, 쉽지 않을 걸”이라는 식으로 답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한국사회가 스포츠와 언제부터,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를 역사적으로 되짚어보며 그 해답을 유추해간다. 다만 그 시선은 한국 체육사(體育史)의 틀에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근대 이전의 숭문(崇文) 사상에서부터 근대 바로 직후의 상무(尙武) 정신, 해방 이전의 전시행정과 이후의 박정희 병영사회와 전두환 3S 정책, 4․19와 5․18까지를 두루 탐색하며 스포츠가 만들어낸 판타지, 바로 그 어처구니 없는 근현대 사회문화사를 극적으로 재현해낸다. 결국 독자들은 스포츠가 한국사회에서 단순한 오락물이 아닌 ‘환상’을 만들어낸 도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그 환상 즉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의 역사를 돌이켜본다.

저자 정희준(동아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은 「책을 펴내며」에서 이 책의 출간의도를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가 걸어왔던 길을 되새겨보자는 당연한 의도와 함께, 매우 ‘한국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스포츠 현상들의 원인과 그 작동방식을 들여다보겠다는 욕심에서 출발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제까지 스포츠 근대사를 다룬 기존의 책 대부분이 업적 나열의 스포츠 찬가로 일관하며 자기만족을 넘어 자아도취의 모습까지 드러내는 것에 대한 반작용도 이 욕심을 부추겼”고 “여타 대중문화에 비해 스포츠에서는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바라보기’가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 ‘분석’의 대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져감에도 유독 스포츠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용납이 되지 않는 사회를 관찰하며, 저자 스스로 동시대의 체육인으로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영욕(榮辱)의 역사를 들춰본다.

스포츠, 그 영욕의 역사를 들춰보니
해방 이전
양반은 양반이라 안 뛰고, 천민은 먹은 거 꺼질까봐 안 뛰고, 할머니들은 “배 꺼진다. 뛰지 마라”며 뛰는 손자를 붙들어 세우던 시절, 조선이 어떻게 일약 육상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 책, 25쪽)

‘숏다리’ 혹은 ‘농다리”라는 식의 농담에 우리는 왜 이리 민감한가. 저자에 따르면, 근대화 이전에 우리는 석전(마을간 돌 던지기)과 활쏘기 등을 제외하곤 뛰는 것 자체를 상스럽다고 도외시하던 민족이었다. “양반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선 다리가 짧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여러 스포츠가 도입되자 전국 각 지역에서 운동회가 활성화되고 그 집단적 열기가 두려워진 일제가 운동회를 금지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게 된다. 또한 근대화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여긴 당대의 지식인들은 조선인들이 다리가 길어지고 튼튼해져야 한다는 ‘강한 조선인’의 강박관념을 여러 매체를 통해 피력하곤 했다. 또한 저자는 “물론 당시 지식인들이 체육을 중시하고 경쟁을 장려하면서 조선인들의 눈에 마라톤이 획기적인 유행상품으로 다가설 수 있었겠지만 그 기저에는 다양한 ‘달리는 직업’의 등장이라는 사회적 변화도 한몫하고 있었다”며 당대의 생활사 한 장면을 들춰낸다. 당시 사회적인 수요가 늘면서 “등짐장수, 물장수, 인력거꾼, 신문배달부 등이 등장하면서 젊은이들이 시내를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이들이 달리기대회에 출전해 상을 타기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가 육상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해방~1960년대
우리 조선에만 있다고 볼 수 있는 철학인 ‘남에게 져라. 때리거든 맞아라. 남을 때리지 마라’ 하는 이런 놈의 철학이 어데 다시 있겠소. 오직 망친 조선만 있는 철학입니다. (이기형, 『몽양 여운형』(실천문학사, 1984), 307쪽. 이 책 49쪽에서 재인용)

해방 직후 암살된 여운형의 위와 같은 한 마디는, 해방 이후 좌우파 모두 스포츠를 통한 강한 국가 만들기에 혈안이 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당시엔 “나라의 존재를, 코리아라는 이름을 알리는” 통로는 스포츠가 거의 유일했다. 해방 직후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이 우승한 사건이, 다음 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UN이 공인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에피소드는 신생국의 스포츠 판타지를 더욱 키워주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국가는 ‘세계 속의 한국’을 목표로 세계대회 입상에 목을 매달고 달려들게 된다.
또한 휴전 협정 직후부터 시작된 남과 북의 체제 경쟁에서도 스포츠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남과 북이 갈라진 이후 첫 번째 공식적인 이산가족 상봉이었던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의 ‘신금단 부녀의 상봉’은 당시 냉랭했던 남북간의 현실을 드러내주는, 슬픈 사건이었다.

신금단 부녀의 상봉은 온 국민을 눈물 흘리게 했다. 이산의 아픔이 남한을 휩쓸면서 결국 이산가족 상봉 열기가 남한 사회에 가득 차게 된다. 한복남이 곡을 만들고 황금심이 부른 <눈물의 신금단>이 히트를 치기도 했다. 그러더니 드디어 신문이 통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급기야 후에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 의원의 주도로 ‘남북 가족면회소 설치에 관한 결의안’이 만들어지게까지 된다. 김영삼․김대중․박순천․박준규․조윤형 등 여야 의원 46명이 발의한 법안이었다. 그러나 이는 바로 우리 정부에 의해 진압(?)된다.
(이 책, 81쪽)

1970년대
박정희는 “체력은 국력”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1963년 발매가 시작된 한 종합비타민제의 첫 광고문구이기도 했다. 전 사회가 한 개인의 체력에 무한한 관심을 쏟던 때가 바로 이때였다.

박정희가 보기에 태권도는 여러모로 ‘이쁜 자식’이었다. 그래서 군대에 보급했고, 또 당시 새마을운동, 성웅 이순신, ‘국기에 대한 맹세’, 「국민교육헌장」만큼이나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활용했다. (…) 자주국방을 위한 강군양성에 기여할 뿐 아니라 예의범절 길러주지, 명령에 복종케 하지, 도장 드나들 때마다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하며 국가관을 길러주는 등, 이만한 다목적 국가장치는 드물었다. (이 책, 113쪽)

1970년대는 온 국민이 “수출 100억불, 1인당 국민소득 1000불”을 향해 뛸 때였다. 고군분투하는 시대에 즐길 만한 여가는 역시 스포츠만 한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레슬링과 복싱 그리고 축구는 당시 시대와 잘 어울리는 스포츠였다. 특히 “스트레스 해소나 대리만족의 측면에서 복싱의 효율성을 따라갈 스포츠는 없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김일의 레슬링, 박스컵(Park’s Cup) 축구대회와 함께 수많은 세계타이틀 챔피언을 배출한 시기가 바로 1970년대였다. 단적인 예가 바로 ‘4전5기의 신화’ 홍수환이다. 당시 자살을 결심했다가 홍수환의 소식에 마음을 고쳐먹고 사업에 재기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단골 뉴스였고 명절날 TV에서는 성룡영화 뿐 아니라, 홍수환의 경기가 수없이 리바이벌되었다. 국가와 스포츠가 이렇게 호흡이 척척 맞았던 적은 1970년대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1980년대
88올림픽이 한국사회 근대화의 완성이자 탈근대 진입의 신호탄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80년대 중반의 이른바 ‘3저 호황’이 찾아오기 이전부터 ‘소비입국’의 조짐은 뚜렷했다. 70년대 고도성장의 결과, 이제 자가용은 부자들만의 소유품목이 아니었다. ‘마이카’라는 새로운 단어가 일상용어로 등장했다. 오로지 ‘절약’만을 미덕으로 알고 살던 이들에게 ‘소비’도 미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새롭게 강조되었고, 사람들은 수많은 유흥거리에 돈을 쓰기 시작했다. 스포츠는 그러한 소비문화 확산의 핵심이기도 했다. (이 책, 154쪽)

70년대가 스포츠의 국위선양 시대였다면, 80년대는 스포츠를 비롯한 대중문화, 예를 들어 3S로 대표되는 스포츠 소비의 시대였다. 저자의 말대로 “국위선양이 더 이상 스포츠의 최선이 아니었다.” 1980년 12월 1일, 컬러 TV 방송이 시작되면서 기업광고가 쏟아져나왔고, 바야흐로 광고전쟁 시대에 신문사들 또한 스포츠 면의 증편으로 대응했다. “특히 지하철 2호선이 개통(1980년)된 데 이어 3호선과 4호선이 개통(1985년)되면서 가판신문, 특히 스포츠신문이 직장인과 대학생들의 대표적 통근․통학 매체가 된” 시절이었다. 그야말로 스포츠는 “투자 대비 만족도에서 최고의 문화상품”이었고 스포츠신문을 읽고 툭 던져버리는 풍경을 보며 저자는 “아마도 이것이 ‘인스턴트’ 풍조의 시작이 아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80년대의 프로스포츠의 역할에 대해 저자는 “정치권력의 대중문화 활용, 그리고 이른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작동방식을 극명하게 보여준” 장치였다고 지적한다. 스포츠는 “성장과 억압이 범벅이 된 혼란스런 당시의 사회상 속에서 지배방식뿐 아니라 헤게모니의 역동성, 나아가 대중 동의의 전개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연구 사례로 적합하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80년대는 압축적으로 표현하여, 5․18 광주에서 시작되어 88올림픽에서 끝이 났다.

1990년대
사실 1980년대까지는 ‘스포츠’라기보다는 ‘체육’이었다. 즉, 성장기에 주로 이루어지는 교육적 차원에서의 신체활동이었다. 당연히 학교 울타리 안에서 행해지는 교과목의 성격이 강했고, 그래서 졸업하면 운동할 기회가 현격히 줄게 마련이었다. 학교 밖에서의 체육이라곤 초특급 부자들이 호텔 헬스클럽 드나드는 거, 아니면 김지하 시인의 「오적」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즐길 수 있는 골프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가 확 바뀐다. 학교 안에서만 머물던 체육이 학교 밖으로 나가면서 ‘스포츠’로 본격 변모한 것이다. 주로 청소년들에게 권하는 운동이 이제 청년, 장년, 그리고 노인층으로까지 번져갔다. 동네 곳곳에 크고 작은 헬스클럽이 생기고 겨울에 수영하는 사람들까지 특히 주부층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에 더해 외국에서 유입된 레저스포츠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 책, 218쪽)

90년대 이후부터 2009년 현재까지 한국 스포츠는 ‘압축근대’와 ‘고도성장’을 거치며 그 양과 질에서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발전을 보였다. 올림픽 등의 아마추어 경연에서는 이미 최상위의 성적을 내고 있고, 프로스포츠에서도 발군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씨름 등이 프로화되어 소비되고 있으며, “특히 축구는 월드컵 4강”에 “야구는 WBC 야구대회 4강”에 오르는 등 “우리를 쉴 새 없이 열광케 한 게 바로 스포츠”였다.

한국 스포츠, 상업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쌍발 엔진을 달다
저자는 한국 스포츠의 현재를 진단하며, 우선 스포츠산업의 기반인 상업주의가 “현대사회에서 스포츠의 최대 버팀목”이며 “미디어가 주도하는 스포츠 상업화는 그 끝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임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한국 스포츠는 어떻게 모색할 수 있을까. 저자는 “오늘날의 스포츠에는 상업주의라는 엔진에 더해 또 하나의 엔진”이 있다고 말하며 바로 민족주의를 거론한다. 한국 스포츠가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메가 스포츠이벤트”를 적극 활용하는 것을 관전해오며, 저자는 앞으로의 한국 스포츠에서 “상업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쌍발 엔진”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스포츠를 통해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데 지나치게 집착하는 우리를 자주 발견”한다며 추성훈과 하인즈 워드의 사례를 통해 배타적 민족주의가 스포츠에서 보여준 여러 가지 폐해를 보여준다.
성공한 이들만 배타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자칫 선악의 가치판단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며 이러한 논리가 과거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과 밀로 셰비치의 만행으로까지 이어진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국 한국 스포츠의 미래는 상업주의와 민족주의의 판타지를 버리고, 동시에 ‘인간의 얼굴’을 회복하는 것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문화사> 시리즈
이 시리즈는 영화․광고․스포츠․패션 등의 코드를 통해 해방 이후부터(사안에 따라서는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사회문화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사회문화사’라고 하지만 학술적으로 내용을 풀어가기보다는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교양서로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그야말로 ‘유쾌한 회고’에 가깝게 서술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학술적 엄밀함보다는 나름의 시각과 감각, 취향에 맞춰 써내려간 글들은 고급 에세이 읽기의 즐거움과 더불어 해당 분야를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01 악몽의 근대, 미몽의 영화 ― 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02 모던뽀이에서 N세대까지 ― 광고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저자소개

정희준: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와 미네소타대학교에서 각각 석․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이며, 스포츠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지은책으로는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공저) 가 있으며, 2009년 현재 한국스포츠사회학회 기획담당 상임이사,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 문화사회연구소 부소장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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