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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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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도시의 기억
저자명 : 고종석
서지사항 : 인문|169*219|344쪽|2008년 02월 29일
가 격 : 18,000 원


도서소개

도시 속에 스며든, 지적이고도 몽환적인 사유의 여러 겹

현대 사회에서 도시가 인류 공동체의 생활양식을 빚어내는 가장 보편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전면 부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인류의 절반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고, 도시에서 죽는다. 도시는 인간의 삶과 사고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한 부분이 되어 있다. 반대로 도시에는 인류가 이룩해온 거의 모든 역사와 정신이 담겨 있다. 말하자면 도시는 그 안을 거니는 모든 이들과 교감하고 서로의 흔적을 교환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이나 보들레르가 그랬듯 도시와 도시의 풍경 이면에는 인간을 매혹시키는 뭔가가 깃들어 있으며 이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그 안에 잠시나마 머물렀던 이방에게도 인상적인 기억을 남긴다.
이 책 『도시의 기억』은 저널리스트 고종석이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년 동안 머물렀던 외국의 여러 도시들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다. 그 기억 속에서 저자는 수많은 도시들이 가지고 있는 닮은꼴들 속에서 미세하게나마 각별한 흔적 또는 무늬를 발견한다. 이 흔적이나 무늬란 말은 곧 도시의 ‘영혼’이기도 하다.

영혼은 촌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도 있다. 사람들이 파리에서 무수한 화가들을 떠올리고 빈에서 무수한 음악가들을 떠올리는 것은 상투적인 만큼이나 정당하다. 빈의 영혼은 그 무수한 음악가들의 영혼이고, 파리의 영혼은 그 무수한 화가들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 영혼은 그 도시들의 미술관이나 극장 둘레만 배회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광장에, 지하철에, 아파트에, 카페에, 호텔 객실에, 택시 좌석에, 기차역에, 사람들의 발걸음에 깃들여 있다. 그 영혼은 그 도시를 찾은 이방인의 영혼과 교섭한다. 어떤 도시를 방문한다는 것은 그 도시의 영혼과, 그 도시 사람들의 영혼과 교감한다는 뜻일 테다. (‘들어가기-도시의 영혼들’ 중)

아무리 작은 도시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저마다 겪은 역사와 문화의 무게가 분명히 존재한다. 저자는 하나의 특별한 사건을 통해, 외국인 친구와 나눈 몇 마디 대화를 통해, 또는 몇 자락의 노래를 통해 어떤 도시를 기억해낸다. 고종석 특유의 지적이고도 아름다운 문장이 이러한 사사로운 기억마저도 한 도시의 느낌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다.
강력한 흡인력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해버리고 마는 ‘세계화’란 단어를 비집으며 저자가 떠올리는 도시들의 다양한 무늬는 거대한 전체 속에서 빛나는 각기 다른 우주의 모습을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고종석이란 한 개인이 머물렀던 ‘고시들에 대한 기억’임과 동시에 각각의 도시들이 그 자체로서 지니고 있는 정치적․역사적․문화적 기억, 즉 ‘도시 그 자체가 지닌 기억’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방인, 도시의 영혼을 들여다보다
저자도 앞서 밝히고 있듯, 이 책에서 “어떤 ‘문화예술 탐방’ 같은 것을 기대하는 독자들은 이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도시의 기억』은 외국 여러 도시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도시들을 누비고 다닌 한 이방인이 그 도시의 영혼을 ‘발견’해내려 했던 여정의 한가운데 있다. 도시의 영혼을 찾아가는 여정은, 그 여정의 주인공이 고종석인 만큼, 지적이고 세련되며 이따금씩 몽환적이다.

브뤼셀은 플랑드르 지역 안에 있지만, 네덜란드어(플라망어)와 프랑스어를 함께 쓴다. 방금 예로 든 표지판들만이 아니라, 이 도시의 모든 공적 텍스트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두 가지로 표기된다. 두 언어 가운데 하나로 표기된다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두 언어로 병기된다는 말이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이 도시에서 대등하다는 뜻이다. 브뤼셀은 언어사회학자들이 바일링구얼리즘(2개 언어 병용)이라 부르는 현상을 실현하고 있는 드문 도시다. (‘브뤼셀-언어의 전장(戰場)’)

빈과 파리의 경쟁이 정치 영역에서만 벌어진 것은 아니다. 예술 공간에서도 이 두 도시는 라이벌이었다. 조형예술가들이 주로 파리로 몰렸던 데 비해 빈에는 주로 음악가들이 몰렸으나, 그 갈래를 가로지르며 이 두 도시는 유럽의 가장 뛰어난 창조적 정신들을 유혹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은 빈 출신이 아니었지만, 빈에 데뷔하고나서야 자존감을 누릴 수 있었다. 빈 근처에서 태어난 슈베르트의 가곡 대부분은 빈에서 만들어졌다. (‘빈 제국의 심장, 두 유럽의 경계’ 중)

나는 암스테르담의 모든 것을 내 눈에 담고 싶었다. 그때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정이 든 탓에 아름답다 여기는 편애나 낭만적 상상력에 오염된 선입견을 배제하고 무심한 눈으로 살필 때, 암스테르담은 내가 가본 도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도시 두셋 가운데 든다. 나는 파리를 내가 가본 도시 가운데 가장 수려하다 여기지만, 암스테르담에서 몇 달만 살았더라도 파리 대신 암스테르담을 꼽을지 모른다. (‘암스테르담-렘브란트와 데카르트’)


이 책에 실린 41개의 도시는 역사․문화․예술․언어․인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저자와 교감한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곧 도시들이 지닌 영혼을 탐색하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독자들과 도시들의 교감을 이뤄내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고종석의 기억, 『도시의 기억』
이 책은 세련되고 구성진 문장으로 많은 독자들의 지적 욕망을 충족시켜온 저널리스트 고종석의 스무번째 저서이다. 이 스무번째 저저에서, 저자가 젊은 시절 돌아다녔던 도시들을 다시금 기억 속에서 끌어내고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엔 허전한 감이 없지 않다. 이 책 『도시의 기억』에서도 세 장을 할애해 파리에서의 기억을 더듬고 있는 저자는 “시간의 미화작용에 기대어 뒷날 돌이켜보는 행복 말고 순간순간 겨워했던 행복이 내 삶에 있었다면, 그것은 파리에서의 그 세 계절이었다”고 술회한다. 또 이 책에는 고종석이 젊은 시절 『유럽』지에 직접 쓴 기사나 ‘유럽의 기자들’ 시절에 사귀었던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함께 실려 있어서 저자의 생생한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도시의 기억』은 여행자를 위한 책은 아니지만, 도시를 거니는 만보객의 느림 걸음으로 자유롭게 사유하고 도시의 수많은 모습과도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길을 펼쳐 보여줄 것이다.



저자소개

고종석: 『한국일보』 논설위원 겸 도서출판 개마고원 기획위원이다. 두 직책 다 ‘비상임 객원’이다. 돌아간 정운영 선생을 좇아, 자신의 비-상임(非-常任) 직책을 비상-임(非常-任)으로 여긴다. 객원의 헐거움을 얻은 이태 전까지 스물두 해 동안 『코리아타임스』 『한겨레』 『시사저널』 『한국일보』 등지에서 경제부 기자, 문화부 기자, 파리 주재기자, 편집위원, 논설위원으로 일했다.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과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언어학 석사 박사 과정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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