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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헌법과 인권의 역사 (개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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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미국 헌법과 인권의 역사 (개정증보판)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시킨 명판결
저자명 : 장호순
서지사항 : 학술, 법학|576쪽|변형국판(양장)|2016년 5월 9일
가 격 : 23,000 원


도서소개

미국이 강한 이유는 연방대법원에 있다

미국은 독특한 나라다. 미국을 구성하는 52개의 주는 저마다의 제도와 법을 가지고 있으며 마치 각기 별개의 나라처럼 운영된다. 인종의 용광로라는 말이 있듯이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섞여 살고, 사용하는 언어와 믿는 종교도 서로 다르다. 게다가 미국 사회는 계층간 격차도 심각하다. 이렇게 분열의 요소가 많지만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역사도 짧고, 공통의 전통과 문화도 부족한 미국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미국을 하나의 국가로 단단히 묶어주는 것은 바로 연방헌법이다. 다양한 배경의 미국인들은 생각은 다 다를지라도 연방헌법과 그 헌법을 수호하는 연방대법원에 대한 신뢰를 공유하고 있다. 그것이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숨은 힘이다. 미 연방대법원은 헌법에 근거한 판결을 통해 미국 사회의 진로를 인도해왔으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호하고 발전시켜왔다. 그래서 토크빌은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존재 그 자체가 연방대법원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미국을 만든 판결들
이 책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주요 판결 22개 사례를 통해 미국 사회에 법치주의가 뿌리내린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미국은 강대국으로 성장하면서도, 헌법정신을 굳게 지키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판결들은 사실상 미국을 미국답게 만들어온 판결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성결혼 합법화를 가져온 오버거펠 판결
오하이오주에 살던 오버거펠과 아서는 소형 비행기로 인근 메릴랜드주로 날아가 결혼식을 올렸다. 이 둘은 동성커플이었는데 오하이오주는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반면 메릴랜드주는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치병을 앓고 있던 아서는 그 후 100여 일 만에 사망한다. 그러나 오하이오 주정부는 오버거펠을 합법적 미망인으로 등재하길 거부했고, 오버거펠은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연방대법원은 전통적으로 결혼을 기본적 시민권 중의 하나로 인정해왔지만, 동성결혼은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다. 미국의 여러 주들은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고, 연방의회도 결혼방어법을 제정하여 기혼자에게 주는 혜택을 동성결혼자에게는 주지 않는 차별을 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2013년에 결혼방어법을 위헌이라 판결했고, 오버거펠이 낸 소송에서도 주정부의 동성결혼 금지가 위헌이라고 판결한다. 이로써 동성결혼이 미국에서 온전히 인정받게 되었다.

오랜 투표권 논쟁을 다시 촉발시킨 셸비 판결
미국에서 흑인들은 노예해방 이후에도 법적으로 인정받은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백인들이 흑인들의 투표를 막으려고 폭력과 협박을 가했을 뿐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투표권 행사를 막았다. 미국에서는 투표를 하기 전에 유권자등록을 해야 하는데, 남부 주들은 투표세나 문자해독시험 등을 도입해 흑인의 유권자등록을 막았다. 그 결과 1910년 루이지애나주에서는 전체 흑인남성의 0.7%만이 등록했다. 이런 사정이 변한 것은 1966년에 연방의회에서 투표권리법이 제정된 이후다. 이 법안은 흑인들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제도를 주정부가 실행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흑인유권자등록률이 낮은 여러 주들은 특별지역으로 지정해 연방정부가 직접 투표 절차를 감독하도록 했다. 이 투표권리법의 효과로 흑인들의 투표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흑인 당선자도 크게 늘어났다.
그런데 2013년 셸비 카운티가 제소한 위헌소송에서 투표권리법의 특별지역 지정 기준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는다. 이 판결이 내려지자 미국 남부 주정부들은 조기투표, 온라인 유권자등록 등을 폐지하고 유권자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는 등 유색인종과 빈곤층의 투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동등한 투표권을 둘러싼 미국사회의 갈등은 다인종 연방국가인 미국의 헌법체제가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숙제로 남아 있다.

국선변호사제도를 보장한 기드온 판결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변호사에게 조력받을 권리가 처음부터 보장되었던 건 아니다. 알코올중독에 절은 부랑자 기드온이 감옥에서 손으로 서툴게 써서 보낸 몇 장의 짧은 탄원서가 연방대법원으로부터 법정에서는 누구나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판결을 얻어냈다. 기존 판례를 뒤집은 연방대법원은 “피고인의 경제적 형편 때문에 기본권이 유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판결로써 일개 부랑자에 불과했던 기드온은 이후 대부분의 도시와 주에서 가난한 피고인을 위해 정부가 변호사를 선임해주는 ‘공공변호사 제도’가 정착되게 만든 ‘위대한’ 인물이 되었으며, 그의 묘비에는 “각 시대는 인간의 이익을 위한 법의 진보를 이끌어낸다”는 비문이 새겨지게 새겨졌다.

흑백차별을 철폐한 브라운 판결
미국 사회는 과거 노예제를 둘러싸고 북부 주와 남부 주가 갈라져 내전까지 벌였다. 전쟁 후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흑인들은 동등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백인들은 흑인들이 백인사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공공건물, 학교, 교통수단 등 모든 공공시설을 백인용과 흑인용으로 분리했다. 흑인은 흑인용 수도에서 물을 마셔야 하고, 흑인 학교에 다녀야 했고, 흑인용 좌석에만 앉아야 했다. 1896년 연방대법원은 플래시 판결에서 이런 흑백분리가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언했다. 이른바 ‘분리되었지만 동등하다(seperate but equal)’는 논리였다.
흑인들은 그 결과 오랫동안 실제적인 차별을 겪어야 했고, 흑백분리를 철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투쟁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러 1953년, 연방대법원은 공립학교에서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을 분리시키는 것은 평등권을 보장한 수정헌법 제14조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선례를 중시하는 미국 법원의 전통을 깨고 플래시 판결을 번복한 것이다. 그 이후 미국 사회에서 흑백분리는 사라졌으며, 인종간 평등도 크게 진전되었다.

주목받고 있는 연방대법원의 미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연방대법원은 노동자의 생존권보다 자본가의 이익을 보호하는 판결을 내렸고, 국가안보를 위해 인권을 제약하는 것도 허용해주었다. 연방대법원의 방향 전환은 1930년대에 이루어졌다. 대공황을 맞이해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New Deal)정책이라는 정부 주도의 과감한 경제회복 정책을 수립했다. 연방대법원은 처음에는 잇따라 뉴딜정책에 위헌 판결을 내렸지만, 결국 경제개혁 법안을 승인해준다. 그 이후 연방대법원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 대해서는 가급적 의회와 행정부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대신 인종적·정치적 소수자의 기본권 보호에 적극 앞장서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탱하는 확고한 기둥으로서 자리잡게 된다”.
20세기 말부터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면서, 연방대법원 판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단도 법과 원칙보다는 연방대법관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결정되는 양상이다. 그러면서 연방대법원에 대한 여론 지지도 감소하고 있는데, 1980년 후반에 66%에 달했던 지지율은 2000년에는 50%로 감소했고, 2015년 조사에서 연방대법원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45%에 불과했다.
“20세기 초반의 미국 연방대법원이 산업화와 시장경쟁 논리에 기반한 보수적 판결을 통해 미국인들의 불신을 자초했다면, 20세기 후반의 연방대법원은 개인의 기본권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에 중점을 두는 진보적 판결을 통해 신뢰를 다시 회복했다”. 그리고 지금은 정파적 이익을 대변하는 판결 성향을 보이며 신뢰를 다소 잃었다.
이처럼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으며, 그 변화가 역으로 사회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은 연방대법원의 결정적 순간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판결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소개

장호순 경희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언론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회교육원 연구부장, 한국언론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언론의 자유와 책임』『현대 신문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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