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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낯선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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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아주 낯선 상식  '호남 없는 개혁'에 대하여
저자명 : 김욱
서지사항 : 정치, 사회|336쪽|신국판|2015년 11월 27일
가 격 : 15,000 원


도서소개

한국 공론장의 금기어
예컨대, 아래와 같은 사건들을 관통하는 배경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 진보정당 ‘민중당’(1990년 창당)의 주요 인사들 대부분이 극우정당 ‘민자당’ 입당.
- 3당합당 때 YS를 따라가지 않은 ‘꼬마민주당’ 세력이 주축이었던 통합민주당은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가 아니라 신한국당으로 합당.
- 2003년 초유의 집권여당(민주당) 분열로, 강령이나 정책상에 별다른 차이가 없는 새 여당 ‘열린우리당’의 창당.
-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온갖 비아냥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는 ‘친노’와 ‘비노’의 갈등.
한국 정치사회에서 이제는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는, 괜히 건드리면 덧나 실제보다 과장되는 역효과만 날 뿐이라는, 아직도 그 얘기냐며 많은 이들이 지긋지긋해하는… 그러나 또 선거만 했다 하면 그 실체가 어김없이 드러나고 마는 ‘지역주의’가 그 답이다. 그간 ‘지역감정’ ‘호남차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지만, 그것의 진짜 이름은 ‘영남패권주의’다. 저자는 이를, 영남인들이 정치권력을 통해 호남을 차별․배제함으로써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확대재생산하고 이러한 지역적 지배관계에 대해 사회문화 차원에서 이데올로기적 동의를 얻어내는 헤게모니로 정의한다.(-본문 33쪽) 그건 그저 허구적 관념일 뿐이라며 손사래를 쳐도, 영남패권주의는 한국 정치사회를 강하게 짓누르는 ‘살아 있는 이데올로기’다. 동시에 우리의 공론장에서는 결코 쉽사리 등장할 수 없는 금기어다. 저자는 “영남패권주의라는 개념 없이 세상을 보는 것과 그것을 인식하며 세상을 보는 것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식민지라는 인식 없이 일제강점기를 이해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의 차이에 버금갈 것”이라고까지 말이다.
이 책은 한국 정치의 특수한 양상들은 영남패권주의라는 개념이 있어야만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역모순에 대한 인식 없이 개혁을 추구하는 정치세력(대표적으로 친노와 진보진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동시에 왜 지역모순에 대한 인식이 개혁에도 필요한지에 대한 강력한 설득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치 둘이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여긴다면 지역모순의 해결도, 개혁도, 나아가 진보도 모두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책이 ‘지역’이라는, 익숙하지만 지금으로선 늘 낯설 수밖에 없는 틀로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이유다.

민주화 이후의 지역주의
저자는 영남패권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80년 광주학살부터라고 본다. 전두환, 노태우 등 영남 출신이 중심이 된 신군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 사람들을 살육했고, 그들이 세운 정권은 호남인들을 차별․배제하며 권력을 공고히 해왔다. 일베에서 나오는 전라도 모욕의 기원도 이때로 잡을 수 있다.
호남은 1980년 이후 줄곧 뚜렷한 반영남패권주의 투표를 해왔다. 호남의 투표 경향은 명백히 그들을 계승하는 정당들(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의 집권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학대받아온 호남 사람들이 이런 학대를 자행한 정당에 집단적으로 반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호남 이외의 민주세력은 군부독재에는 반대했지만, 이를 영남패권의 문제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많은 사람들이 주야장천 김대중만 지지하는 호남의 지역주의가 문제라고 주장했고, 2000년대에는 영남 유권자로부터 표를 받기 위해서는 호남색을 지워야 한다는 논리도 등장했다.
이렇게 영남패권의 질서에 저항하기보다 그에 순응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호남을 배제하는 정치가 세간에서는 그저 주류와 비주류의 주도권 다툼으로만 비춰지고 있다. 여기서 “대통령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남에서 득표력이 있는 영남후보를 내세워 호남몰표로 뒷받침해야 하고, 그렇게 당선된 영남 대통령은 ‘민주성지’ 호남의 정신적 양해 속에서 세속적인 영남을 물질적으로 유혹해 지역주의를 구조적으로 타파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즉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를 따르는 집단이 친노다. 이들은 전국적 득표율, 특히 영남에서의 득표를 위해서는 지역차별이니 하는 이야기는 접어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이런 전략의 파탄을 경험한 호남인들은 이에 반발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친노와 비노 갈등의 진짜 원인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현실에 토대해 살면서도 현실에 토대해 사고하기보다는 현실의 모순이 없는 척하고 말하기를 더 좋아한다. ‘피해자 선도 개혁’과 ‘피해자 없는 개혁’이 대립할 때 사람들은 대체로 후자를 더 편하게 생각한다. 즉 흑인이 선도하는 인종투쟁보다는 백인의 흑인변호를, 여성이 선도하는 페미니즘보다는 남성이 옹호하는 양성평등운동을, 노동자가 선도하는 계급투쟁보다는 빌 게이츠가 앞장서는 기부운동을, 호남의 김대중이 선도하는 반영남패권주의투쟁보다는 영남의 노무현이 주장하는 무지역주의운동을 더 높이,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인종 없는 인종투쟁, 여성 없는 여성투쟁, 계급 없는 계급투쟁, 지역 없는 지역투쟁을 더 높이, 더 편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엄이다. -272~273쪽

왜 개혁진영은 항상 분열하는가?
3당합당 이후 새누리당 계열은 계파간 갈등은 있었지만 당이 깨지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새정연 계열은 여당이었을 때조차 분열했고, 지금도 분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이 분열의 외피가 때론 진보(개혁)/보수(기득)의 탈을 쓰고 진행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근원은 아니다. 실례로 김대중이 김영삼 혹은 이기택보다 훨씬 더 개혁적이긴 했지만 그것이 분열의 이유는 아니었다. 나중에 입증됐듯이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과 분열해 나간 것도 개혁성 때문이라고 우기는 건 대단히 쑥스러운 일이다. (…) 현재 진행 중인 친노/비노 분열도 마찬가지다. 천정배‧정동영을 문재인보다 더 개혁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 분열을 진보/보수 프레임으로 설명하는 건 무리다. -74~75쪽

저자가 보기에 이 갈등의 실체는 “기본적으로 ‘호남/새누리당에 참여하지 않은 영남세력’의 분열이다”. 즉 영남패권주의를 해결과제로 보고 있는 호남세력과 영남패권주의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영남세력 간의 입장차가 정당들이 이합집산하는 근본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영남개혁세력이 얼마나 호남의 ‘인정과 타협’에 인색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1라운드인 1987년 김영삼은 자신이 대선 단일화 후보로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자 김대중의 지분을 인정하는 대권과 당권 분리안을 거부한다. 그 결과는 각자 도생과 ‘3당합당’이었다. 2라운드인 1995년 이기택 역시 김대중의 정계복귀를 막고 자신이 그 열매를 따먹으려 온 힘을 쏟았지 그 지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 결과는 새정치국민회의의 탄생이었다. 3라운드인 2003년 민주당의 법통을 부정하며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노무현도 ‘박상천ㆍ정균환’으로 상징되는 ‘잡초’를 뽑으려고만 했지 그 세력의 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탄핵소추까지 이어졌다. 4라운드인 2015년 한 차례 대선에서 패배한 문재인이 이제 영남개혁세력의 전통을 이어받아 늘 보아오던 독주를 계속하고 있고, 추방당한 천정배가 호남정치를 외치며 창당을 서두르고 있다.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그 결과가 무엇이겠는가? -189~190쪽

진보그룹의 어리석음
사실 호남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특별히 더 진보적이라서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호남인들은 여태껏 호남을 소외시키고, 차별하고, 심지어 학살까지 한 정당에 반대하는 것이다. 호남이 유독 똘똘 뭉쳐서 반새누리당 몰표를 행사하는 것은, 그들이 지역모순의 가장 큰 피해자로서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정당이 영남패권의 해소와 호남의 복권에는 관심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계속 지지해야 할까? 예컨대 오바마가 흑인들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됐는데, ‘인종차별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백인들 표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어도 흑인들은 계속 오바마를 지지해야 하는가?
저자는 친노가 호남의 몰표만 요구할 뿐 호남의 지향을 대표하려 하지 않듯이, 새누리당이나 새정연이 도긴개긴 보수정당이라고 비판하며 호남표를 얻고자 하기는 진보정당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계급적 도식에만 사로잡혀 호남 유권자들이 처한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지역차별을 이야기한다 해도 보편적인 지역차별을 다뤄야지 특정 지역만의 차별을 문제로 삼지 말아야 한단다. 전라도도 차별하면 안 되고, 강원도도 차별하면 안 되고, 경상도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말은 바른 말이지만, 예컨대 남자든 여자든 차별하면 안 된다는 보편타당한 주장이 사실상 여성의 문제제기를 막아버리곤 하지 않던가.

나는 우리나라 진보정당이 호남의 반영남패권주의 운동에 대해 예컨대 ‘국제주의적 입장에 있는 제국 일본의 노동운동가로서 볼 때 조선의 독립운동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영남패권주의적 진보이데올로기가 지속되면 통일시대가 오더라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 즉 영남패권주의적 진보이데올로기에 입각해 북한지역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북한의 정당한 지역적 요구를 남한의 진보정당 내에 포섭하려는 공격적 전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논리는 사실상 민족적 주체성을 혐오하는 제국주의적 ‘식민지 근대화론’의 사회주의판에 불과한 것이다. -167쪽

‘정당비례대표제+내각제’ 개헌 투쟁으로!
한국 정치의 개혁‧진보는, 즉 영남패권주의를 타파하여 새누리당을 꺾고 집권하려면 호남의 반영남패권주의라는 절대적 자산을 이용하는 것, 그리하여 ‘호남몰표 + (과반수) 충청 + (친노 중심의) 영남개혁세력 + 소수 진보 + 수도권 중도세력’이 연합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먼저 친노는 결코 호남 정치인을 대권 후보로 내세울 생각이 없다. 반대로 친노 후보가 나섰을 때 그에게 투표하지 않을 소수의 호남 반노 유권자만으로도 벌써 대선 승리는 불가능으로 기운다.
이제는 투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호남과 영남친노, 그리고 다른 진보개혁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너무 달라 하나로 힘을 합치는 일이 이제 불가능하다면, 각자의 몫을 인정하면서 새누리당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게 독일식 정당비례대표제이며, 이로써 정당지지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게 되면 새누리당은 결코 과반을 차지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지금보다 더 의석이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야권 분열 상황이 오히려 더 선거에 유리해지는 변화가 생긴다.

즉 호남/영남 친노가, 보수/진보 야당이, 여타 제세력이 편을 갈라 싸울수록, 그래서 각자의 확고한 지지자들이 뭉칠수록, 이 경향은 결정적으로 선거를 유리하게 만들 것이다. 부질없는 회한이지만, 만약 1987년 선거를 결선투표가 없는 대통령제가 아닌 독일식 비례대표 내각제로 치렀다면 전두환의 민정당은 필패했을 것이다. -307쪽

단, 반드시 내각제와 함께해야 한다. 만약 새정연 등에서 주장하듯이, 현행 대통령제 체제에서 국회의원 선거만 정당비례대표제로 한다면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은 어렵더라도 대통령 자리는 가져갈 수 있다. 그 결과는 국정 마비와 극도의 혼란이다. 내각제가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제는 사실 패권주의를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러니 영남에서 선호하는 건 이해할 수 있어도 호남이 그러는 건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이는 언젠가는 자기 손으로 영남패권을 뒤엎을 대통령을 뽑겠다는 희망의 발로이지만, 현실에선 헛된 희망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더 나은 개혁‧진보적 민주주의를 위해 ‘대통령을 내 손으로’라는 추억 속의 이데올로기는 이제 ‘정당국가적 민주주의’에 길을 양보할 때가 됐다.”



저자소개

김욱: 광주에서 출생했다. 광주일고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남대학교에 재직하며 헌법학 등을 강의한다. 사법시험 출제위원을 역임했으며, 『대한변협신문』, 『한겨레』, 저널룩 『인물과 사상』, 『월간 인물과 사상』, 『오마이뉴스』에 많은 평론을 썼다. 주요 저서로는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 『누가 이순신을 쏘았는가』(소설), 『법을 보는 법』, 『영남민국 잔혹사』,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 『김대중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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